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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흑인해방신학 -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거라고 했지만> 제임스 콘

by 길찾기91 2022.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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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해방신학

 

백인신학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내가 이에 대해 길게 생각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나를 흥분시키고, 돌아서게 하고, 내 영혼을 휘젓고, 영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나 스스로와 내가 어른이 되기까지 나를 키우고 보살핀 사람들을 되새기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맬컴이 가진 흑인성의 정신이었다. 난 흑인성 안에 존재하는 나 자신에게 젖어들었다. 나는 흑인성을 나면서 주어진 것으로 끌어안았고, 흑인성이 나를 내 교수들조차 깨닫지 못한 누군가로 재창조하게 해주었다. 흑인성은 내게 단념하지 않고 <흑인해방신학, A Black Theology of Liberation>을 쓸 수 있도록 통찰과 힘을 불어넣어주었다.

 

하지만 흑인 자유 운동을 위한 흑인해방신학을 쓰기 위해서 나는 나 자신을 신학교에서 배운 조직신학으로부터 해방시켜야만 했다. 백인 유럽 신학자들의 방법론과 사상의 노예로 있으면서 어떻게 흑인 해방에 대해 쓸 수 있겠는가? 거칠고 자유로운 영혼을 표현해 음악적 보물을 남긴 위대한 음악가 프린스는 강력한 정신은 규범을 초월한다고 선언했다. 죽든 살든 백인 남성의 신학은 흑인성의 영혼을 통제할 수 없었다. 흑인해방신학은 아픔과 고난, 기쁨, 승리와 씨름하며, “자유롭게 태어난 영이 자유롭게 말하는 것과 흑인의 경험이 요구하는 것을 말하였다. 나는 흑인 뮤지션들의 노래와 악기 연주를 듣고, 이들의 몸이 움직이고 춤추는 것을 관찰하며, 이들이 펑크가 스타일이 아닌 것처럼" 평키하게 노래하고, 연주하고, 몸을 흔들 듯, 조직신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글을 쓰도록 영감을 받았다. 나는 이들의 운율과 비트, 사운드, 톤을 듣고 이것을 어휘로 포착하려 했다. 유럽 신학자들은 너무나 이성적이고 추상적이라 흑인 경험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유럽 신학자들은 펑크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나는 흑인해방신학에서 맬컴 엑스가 즉흥적이고 공격적인 스타일로 날 건들지 마!”라고 한 태도를 통해 흑인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만들어 표현해낸 것처럼, 흑인들의 펑크를 담아내고자 애썼다. 따라서 나는 백인 신학자들이 흑인해방신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신경쓰지 않았다. 백인 신학자들은 흑인들에게 무엇 하나 해준 게 없었다. 우리는 그들의 글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언급할 가치조차 없었다. 그런데 내가 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난 백인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흑인들을 노예로 삼고 분리시킨 역사 속에서 백인 신학자들이 만들어냈고 반복해 온 근원와 규범을 통해 의도적으로 그들이 여태껏 사용해 온 조직신학의 방식들을 붕괴시키려 했다. 블루스나 재즈 아티스트가 즉흥적이고 변형적으로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내듯이, 백인 신학자들이 만든 모든 신학적 규율을 뻔뻔스럽게 파괴할 때, 그들은 분노했고, 난 이를 지켜보며 큰 기쁨을 느꼈다. 흑인해방신학은 흑인들이 비어든에서 썩 꺼져!”, “비켜서라”, “분수에 맞게 행동해라!”는 말을 들으며 형성한 자기 안의 속박을 깨는 것으로, 맬컴 엑스의 장이었다.

 

난 볼드윈처럼 글을 쓰거나 마틴이나 맬컴처럼 연설하진 못했지만, 제임스 콘처럼 흑인해방신학을 쓸 순 있었다. 난 흑인들에게 백인신학으로 위장해 부유한 백인교회들을 섬기는 백인 우월주의 종교를 거부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길 희망했다. 나는 흑인의 문화적 아름다움, 흑인의 시와 극의 역동적인 목소리속에 담긴 예술적 훌륭함, 누군가 물었던 혁명적인 질문을 사용했다.

 

그 백인 남자를 총으로 쏴 죽여야 할까 그의 머릿속에서 그 검둥이(nigger)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흑인해방신학은 흑인의 문화와 종교에서 나왔고, 재즈 모드, 블루스 스타일 속에, 흑인영가의 소리와 함께 하는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해 말할 새로운 자유를 기린다. 이것이 그 힘의 근원이며, 마법이다. 나는 보통의 흑인들에겐 따분하지만 백인 신학자들에게 인상을 남길 새로운 신학적 통찰을 만들어내기보다 흑인 마법에 대해 더 관심했다. 난 흑인들을 깨우고 백인 그리스도의 날은 끝났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새로운 흑인 메시아가 이곳에 임하셨다.

 

위대한 아프리칸 작가이며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Things Fall Apari, 1958>의 저자이기도 한 치누아 아체베(Chinua Achebe)의 말처럼, "예술은 압제자의 편에 설 수 없다.” 그는 이어서 시인은 노예상인이될 수 없다고 말했다. 난 예술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지만 기독교 신학자가 노예상인이나 노예주인과 같은 압제자들의 편에 설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기독교 신학은 모든 인류의 해방을 위한 것이며, 압제에 맞선 싸움에서 결코 중립일 수 없다. 난 이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마틴, 맬컴, 지미, 1960년대 흑인 시인들의 영혼과 함께 <흑인해방신학, A Black Theology of Liberation>을 태어나게 한 것이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관해서 그 어떤 흑인 종교학자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나는 에릭 링컨 교수들 제외하곤 그들 중 누구도 알지 못했고, 그는 사회학자였기에 내게 조언해주지 못했다. 나는 찰스 롱(Charles Long)과는 친분이 있었지만, 그는 종교 역사학자였고 그는 내가 쓰고 있는 글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난 혼자 알아서 해야만 했다. 나는 글을 쓰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내 글쓰기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진 못했다고 생각했다. 날 이끌었던 것은 나보다 커다란 어떤 힘이었다.

 

자유를 외치며 내 안에서 울부짖던 이 흑인의 영(Black Spirit)은 흑인해방신학을 뒷받침할 그 어떤 이성적인 주장보다 중요했다. <흑인해방신학, A Black Theology of Liberation>의 대부분은 내가 아드리안 대학에서 한 주에 12 시간씩 강의를 하며 써내려간 것이다. 하루 종일 가르치고 학생 상담까지 하고 나면, 블루스, 흑인영가, 재즈가 조용히 흐르는 내 집의 지하실인 블루룸에 돌아와, 내 존재가 흑인성의 영성의 심연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글을 썼다. 글을 쓸 때면, 내 안에서 어휘들이 흘러나와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재즈 뮤지션들이 피아노, 색소폰, 드럼을 연주하듯, 종이 위에 자유롭게 나 자신을 표현하고, 나 홀로 어휘들을 연주하며, 내 음악, 방해하는 음성과 씨름했다. 나는 단어들이 종이 위에서 춤을 추듯, 내 글이 나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거의 다 들을 수 있었다. 글쓰기는 나를 놀라게 만들었고, 나는 항상 이 어휘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잘 알 수 없었다. 단어들은 나를 초월한 자유를 지니고 있었다. 내가 쓴 첫 문장은 스스로를 놀라게 했다. “기독교 신학은 해방신학이다. (Christian theology is a theology of liberation).” 누구도 이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이 말은 내 신학의 핵심이 되었다. 난 내가 옳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이 말이 진실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이라고 느껴지는 종교적 주장이 곧 진실인 것은 아니다. 나는 무엇을 근거로 기독교 신학은 해방으로 정의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을까? 내게 흑인의 경험과 성서는 기독교 신학의 의미를 정의하기 위한 핵심 자료이다. 이 둘은 본질적이며 분리될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흑인의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내가 흑인의 경험과 성서를 탐구하자, 해방이야말로 기독교 신학의 심장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출애굽, 예언자들, 그리고 나사렛 예수라는 중심 주제들은 흑인의 경험과 성서를 규정하였다.

 

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에 있을 적에, 내 백성을 보내주어라, 눌린 자들이 너무 힘들어 설 수조차 없을 때, 내 백성을 보내주어라, 내려가라, 모세야, 이집트 땅으로 내려가, 파라오에게 말해라내 백성을 보내주어라.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출애굽기 3:7-8)

 

출애굽은 해방 사건으로서, 이스라엘 노예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구원받은 사건이며, 또한 미국 아프리칸 노예들의 구원 사건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를 강조한 예언자들 역시도 흑인의 경험과 성서의 핵심이다. 흑인의 종교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아모스의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5:24)보다 더 빈번하게 인용된 성서 구절은 없다.

 

나사렛 예수는 가난한 이들을 해방하는 하느님의 약속을 정의하는데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하다. 그는 해방자로서, 그의 삶은 모두를 위해 도래할 하느님의 정의, 그 중에서도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하느님의 정의로 이루어졌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느님의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누가 6:20), 예수는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난한 이들처럼 살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출애굽, 예언자들, 예수, 이 셋은 흑인신학에서 해방의 의미를 규정한다. 나는 이 핵심적인 통찰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 내 조상들의 영은 오래 전에 죽고 끝난 것 같지만, 지금도 내 조상을 죽인 백인의 후손들은 우릴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살아있었다. 내가 흑인해방신학을 쓴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나는 그 어떤 흑인도 이전에 해본 적이 없는, 이전에는 누구도 걸어본 적 없는 길을 여행하는, 흑인의 경험에서 나온, 그리고 흑인을 위한 신학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에릭 링컨 교수가 내게 확신을 주었기에 이것이 출간될 거란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신의 심장에서 나온 것을 쓰세요.” 그가 내게 말해주었다.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쓰세요. 내가 도와줄게요.” 나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신학교에서 가르쳐왔던 모든 걸 가져왔다. 바르트, 브루너, 니버, 틸리히, 본회퍼, 불트만, 그들은 신학에서 유럽의 거인들이었다. 하지만 난 이들을 비틀었다. 그들의 진리가 아닌 나의 진리를 말하기 위해 모든 방식으로 그들의 언어를 꼬았다. 나는 글쓰기를 사랑했다. 글쓰기는 신학적으로 나를 해방시켰다. 나는 춤추거나 노래를 부르진 못하지만 어휘들과 춤을 추고, 강력한 톤으로 노래를 불렀으며, 이때의 리듬이란 내가 이전에 신학에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해방의 의미는 흑인스타일로 내가 글을 쓰는 것이었다. 나는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썼지만, 내 책이 도서관에서의 연구를 통해 나온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은 내가 살았던 흑인 공동체, 그 종교, 문화, 정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 책은 흑인들이 백인 우월주의 아래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며 자신들의 자유를 외치기 위해 실천한 것들에서 나왔다. 흑인해방신학은 백인의 지배에 맞선 흑인의 종교적 저항을 증언한 것이다. 나는 내 생각이 백인 신학자들에 의해 통제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백인 얼간이들에게 한 방 먹여줄 흑인해방신학을 써야만 했다.

 

해방의 의미는 어디에서 왔는가? 내 두 번째 책 제목을 처음엔 <흑인혁명신학, A Black Theology of Revolution>이라고 지었다. “흑인혁명이란 말은 1960년대 흑인 자유 투쟁의 중심이 되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아 이 표현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 출애굽, 예언자들, 예수를 성찰하면서, 나는 해방은 혁명 그 이상이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의할 최선임을 알게 되었다. 출애굽은 구원이자, 한 민족을 노예제에서 탈출시킨 해방이었고, 해방은 흑인들이 미국에서 투쟁하는 목적이었다.

 

우리가 무얼 원하는가?” 민권운동의 지도자들이 청중들에게 자주 묻던 질문으로, 그 대답은 자유!”였다. 자유와 해방은 민권운동에서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고, 보다 젊은 블랙파워 지지자들은 해방이란 단어를 선호했다. “해방의 정치학(The Politics of Liberation)”은 스토클리 카마이클(Stokely Carmichael)의 책 블랙파워, Black Power>의 부제목으로서, 그는 흑인해방을 향하여(Toward Black Liberation)”라고 부르는 몇 편의 연설을 하기도 했다. 젊은 블랙파워 지지자들은 자유라는 말에 질렸고, 이 말은 불을 붙이거나 블랙파워를 가리킬 만한 힘을 갖지 못하였다. 그러나 자유와 해방이라는 두 단어는 모두 흑인의 역사, 종교, 문화 전반에서 발견된다. 두 단어는 우리의 노래와 설교, 이야기와 말에서 발견된다.

 

자유와 해방은 정치적, 종교적 의미로 특별히 흑인해방신학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종교적 의미에서 해방은 노예제와 인종분리의 사슬, 사회, 정치, 경제적 억압의 모든 형태로부터의 구원을 뜻한다. 그러나 보다 깊은 의미로 해방과 자유는 그 어떤 압제자도 결코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자유하다는 것은 그 누구라도 백인들이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하더라도, 흑인이 될 권리와 자유, 당신의 존엄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얻게 되는 초월적인 자유란 노예들이 천국을 가리키며 노예주인들이 지배할 수 없는 종교적 상상 속의 세계를 노래했던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마세도니아 AME 교회에서 그러한 해방과 조우한 것을 기억한다. 흑인들은 해방에 대해 설교하고, 노래하고, 해방을 위해 기도하며 증언했다. 이와 같은 자유는 민권운동과 블랙 파워 운동에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스토클리 카마이클에게서도 나타났다. 이것이 내가 <흑인해방신학>에서 쓴 해방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거라고 했지만> 제임스 콘 지음, 홍신 옮김, 2021, 한국기독교연구소, 84-92.

 

- 흑인해방신학을 창시한 제임스 콘(1938-2018)의 자서전이다. 그는 이 자서전을 탈고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느님 품에 안겼다. 그는 이 자서전에서 어떻게 주님께서 자신의 삶을 인도하셨는지를 고백하면서, 억눌린 사람들이 피눈물을 삼키며 고백하는 복음의 기쁨, 그리고 어둠 속에서 누룩처럼 변화시키는 복음의 희망을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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