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뜨거운 가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크 샌델)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소개된 이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정당한 대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당 부분 ‘자기 것’이 아닌 요소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개인의 능력과 의지는 그 사람 개인의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샌델이 말하듯 결코 그렇지 않다. 첫째로 태어난 것이 성공에 크게 영향을 주는가 하면, 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성공할 확률이 명백히 더 높다.
첫째로 태어나거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은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아버지 잘 만난 게 죄는 아니다. 다만 그 덕에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능력주의’만 강조하면, 그 덕이 없었던 사람은 도대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겉으로는 동일한 출발선인 것 같아 보여도, 이렇게 여러 상황과 조건에 따라 기회는 균등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도 가족구조에 따라서 차이가 나며, 부모의 독서습관조차 자녀의 학업성적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다. 집안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 가정 분위기가 나빠지면 자녀의 심리가 불안해지면서 학업성적이 하락하기도 한다. 하고자 하는 열정조차도 마찬가지다.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을 누린 선수와,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조건에 처했던 선수는 같은 출발선에 섰다 하더라도 결코 동등한 상태에 있는 게 아니다. 긍정이나 희망이 마음대로 생기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희망이 개인 의지의 영역이 아님을 증명하는 자료는 많다. 서울 지역 56개 초중고교 재학생 3만7258명의 장래희망을 분석한 <소득에 따라 꿈도 다르다: 소득별 학교별 장래희망조사보고서>를 보면, 외국어고의 경우 장래희망이 고소득 전문직인 학생이 76%에 이른다. 하지만 실업계의 경우 3%에 불과하다. 반대로 중하위 직종을 꿈꾸는 경우가 외고는 11%에 불과하지만 실업계는 79%에 이른다.
이런 차이는 아버지의 직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서울 지역의 6개 외고(2216명), 6개 일반고(2885명), 5개 실업계고(1577명)을 분석한 <외고 자사고 학생 부모 직업분석보고서>를 보면 외고 학생들은 아버지 직업이 전문직이거나 경영/관리직인 경우가 45%에 이르지만, 실업계의 경우는 4%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아버지가 기술직이나 비숙련 노동자인 경우가 외고는 1%에 불과하지만 실업계는 37%에 이른다. 정리하면, 희망은 ‘뜨거운 가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돈이 있어야지만 가슴도 뜨거워질 수 있단 얘기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오찬호 지음, 개마고원, 2013. 2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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