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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조용한 살인자 석면 - 햇빛도 때로는 독이다, 박은정 책

by 길찾기91 2022.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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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살인자, 석면

석면Asbestos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섬유 모양의 규산광물을 통틀어 이르는 것이다. 크게 사문석 계열과 각섬석 계열로 나뉘는데, 사문석 계열에서는 백석면이, 각섬석 계열에서는 갈석면과 청석면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석면의 큰 형태학적 특징은 강도가 매우 높고, 가늘고 길다는 것이다. 면비가 3:1 이상인 입자상 물질이며, 굵기는 대략 머리카락의 5,000분의 1 정도이다.

영어명인 'Asbestos'에는 석면의 놀라운 능력이 감춰져 있다. 이는 그리스어 합성어로 '불멸의'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무려 400℃가 넘는 온도에서도 불에 타지 않는 내열성과 산이나 알칼리 등 약품에도 잘 손상되지 않는 내구성을 갖고 있다. 게다가 전기 절연성이 뛰어나다.

이런 장점 덕분에 이보다 좋을 수 없을 것 같은 별명도 있다. 신의 선물', '기적의 물질’,  '마법의 물질'이라니… 석면이 가진 양면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최고의 별명이지 않은가. 그러나 WHO의 국제암연구소는 늦게나마 석면을 1군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석면이 함유된 활석도 1급 발암물질이다. 잠복기가 무려 20년에서 40년이라 '조용한 살인자'로 불린다. 이외에도 '죽음의 섬유', '불타지 않는 돌'이라는 악명이 새로 붙었다.

문제는 석면이 이렇게 위험한 물질인 줄 모르고 너무도 오랫동안 많은 분야에서 활용되었다는 사실이다. 건축용 자재를 비롯해 자동차 부품의 재료, 기계, 화학 설비, 수도, 선박, 산업기계 관계 등 쓰이지 않은 곳이 없다. 아마 6080세대는 아침저녁으로 확성기를 통해 나오던 '새마을운동'을 기억할 것이다. 1970년대 초, 대한민국의 농어촌 현대화를 위해 시작된 새마을운동의 일환 중 하나가 농어촌의 초가지붕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내구성, 내열성, 전기 절연성이 뛰어나고 가격이 싸서 연료를 절약하며 집 안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데 이보다 좋은 자재가 없었다. 내가 처음 실험실에 입문했을 때만 해도 세포실험에 필수 기자재인 세포배양기의 뒷면에 석면이 들어 있었다. 37℃로 온도를 유지하는 데 가장 저렴한 재료였을 것이다.

석면은 사용한 지 약 8년이 지나면 분진을 방출한다. 스스로 알아서 나올 리는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외부의 충격이 있으면 공기 중으로 새어나오니 그럴 수도 없다. 낡은 집을 수리하느라 망치질하고, 에어컨을 배관하거나 벽에 구멍을 뚫는 것도 외부 충격을 주는 것이다. 결국 낡은 건물을 철거할 때 석면 해체 업체를 따로 선정할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아무나 해서도, 함부로 해서도 안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석면 자재를 넣어 지은 집을 8년 만에 허무는 경우가 있던가?

언제부터 석면이 사용되었는지 역사를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최초의 사용 기록은 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의 신전에서는 램프의 심지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점차 사용처가 확대되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헬멧, 방독면, 총열 덮개, 전차, 군용기 등 군수품에 널리 사용되기도 했다.

약이라면 만병통치약'쯤으로 보이는 '석면'의 위험성.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 게다가 하루아침에 사용을 금지할수 없었던 현실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까? 석면이 수상하다는 소문은 1960년대부터 있었지만, 1974년 프랑스의 공장 근로자들이 폐암으로 사망하면서 그 민낯이 드러났다.

세계는 지금 신의 선물인 줄 알고 사용한 석면이 사실은 침묵의 살인자였음을 인정하고 있다. 현재 미국과 유럽 등 많은 나라가 석면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우리나라는 2009년부터 건축물에 대한 사용을 금지하고, 2011년에는 석면피해구제법을 시행했다.

햇빛도 때로는 독이다, 박은정,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 2022, 11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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