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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공중에 뿌려지는 살균·소독제의 위험 - 햇빛도 때로는 독이다

by 길찾기91 2022.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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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의 진실 - 공중에 뿌려지는 살균·소독제의 위험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되면서 4가 암모늄 계열 성분이 함유된 살균·소독제가 공중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성분은 다르지만, 하루가 멀다고 방역을 위한 신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그 중에는 무독성'을 표시한 제품도 있었다. 문득 소비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노출 시나리오를 고려하여 제대로 된 안전성 평가가 이루어졌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그것이 과연 가능했다는 말인가?

 

나는 두렵고 불안했다. 혹여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대규모로 확장되면 어쩌나 눈앞이 캄캄했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조직된 경희 K-방역 팀에 참여하는 많은 전문가가 이에 공감하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 덕분에 더 큰 재앙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난생처음 인터넷 신문사에 기고문도 썼다.

 

그런데 아무도 읽지 않았는지 반응이 없었다. 바로 그때 DDAC의 독성 기전을 연구한 논문이 통과되었다. 다시 용기를 내어 보도자료를 냈다. 그러자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며 전혀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물론 오보도 있었다. 나는 “COVID-19를 위한 분무소독제 일부에 4가 암모늄 계열 성분이 함유되어 있고, DDAC는 대표적인 4가 암모늄 계열 성분이다."라고 발표했으나, 일부 언론에서 손 소독제에 주로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사진을 첨부하여 보도했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기자 인터뷰에 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보로 인한 혼란은 잦아들었고, 모두들 DDAC를 비롯한 4가 암모늄 계열에 대한 호흡기 노출의 위험성을 인지하며 주의를 기울였다. 특히 여러 행정 기관이 동참해 변화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20217,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 내용에서 염화벤잘코늄이 들어 있는 외용소독제는 뿌리는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4가 암모늄 계열 이외의 살균·소독제 성분의 유해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 ’살균·소독제'로 쓰일 수 있다는 말은 결국 해로운 생물체를 죽이거나 증식을 억제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제품이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이 제품이 해로운 생물체인지, 해가 없는 생물체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따라서 '살균·소독제'는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를 비롯해 모든 세포에 평등하게 그 기능을 발휘한다.

 

해가 없는데 효과는 우수한 살균·소독제는 근본적으로 있을 수 없다. 해가 없으면서 효과가 없거나, 몸에 해로우면서 효과가 뛰어난 두 종류만이 있을 뿐이다. 그 독성은 얼마나 정확하게 용법과 용량을 준수하였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더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공기 중 분무 대신 닦아내는 방식을 취해야 하며, 불가피한 경우 분무를 하더라도 분무 후에는 반드시 멸균된 천으로 닦아야 한다.

 

효율적인 살균 및 소독을 위해 제조사에서 권장하는 시간이 경과한 후 멸균된 천으로 한 번 더 닦는다면 더욱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아울러 가능하다면 손 소독제를 사용하기보다 손을 물로 자주 씻는 것이 좋다. 물이 없어 불가능한 경우에는 손 소독제를 이용하되, 물을 사용할 수 있는 장소로 옮겼을 때 씻는 것이 바람직하다. 판매 승인된 살균·소독제들의 작용 기전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지만, '살균·소독'이라는 최종 목적은 같다. 따라서 그 종류와 상관없이 눈과 입에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2016년부터 꾸준히 가습기살균제 성분과 관련된 연구 결과를 발표하던 나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분무소독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독성학자로서 이러한 주장을 언론에 공개할 수 없었다. 당시는 전문가들조차 원인 모를 감염병으로 혼돈에 빠져 있었고 국민은 공포에 휩싸인 시기였다. 나의 주장이 과학적으로 100% 옳다고 하더라도 공감대가 이루어져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혼란만 가중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DDAC의 독성 기전 논문이 통과되면서 한 인터뷰들 덕분에 내가 미처 챙기지 못했던 많은 암울한 상황을 전해 듣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인공방제 관련 사건으로, 4가 암모늄 계열 성분이 함유된 살균·소독제가 임진강 일대와 접경지역에 2,000L나 공중 살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임진강에 직접 뿌리지 않았다는 농림부의 발표와는 달리, 환경부에서 시료를 검사하자 살포 후 석 달이 지났음에도 소량의 4가 암모늄 계열 성분이 검출됐다. 4가 암모늄 계열이 위험한 이유 중 하나가 물, 토양, 생체 등에서 분해가 매우 느리고, 세포막에 대한 결합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토양 또는 물중 4가 암모늄 계열의 반감기는 250일 정도에 이른다. 접경지역의 방역은 멧돼지가 옮기는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바이러스)을 차단하기 위한 일이었지만 상공에서 분사하게 되면 호흡기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고, 물과 토양에 축적돼 인체에 간접 영향을 줄 수 있다.

 

간혹 인간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방역이 무지와 실수로 인해 오히려 인간에게 위협이 되곤 한다. 또 누군가는 빠르고 간편하게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모르는 척, 혹은 실수인 척 독성물질을 사용하여 발각되고 법의 심판을 받기도 한다.

 

정말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안전한 세상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독성학자인 나로서는 의구심이 들고 책임감이 막중해진다.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사건이 또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햇빛도 때로는 독이다, 박은정,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 2022, 5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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