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덜터덜 배낭여행 14 - 5/7(월) 세계문화유산 호이안에서의 여유
어제 심야에 도착한 호이안은 어두운 시간이라 전혀 감을 못잡고 도착한 곳이다. 그래서 숙소가 이쁘다고 생각한 것 말고는 아무 생각 없었다. 많이 자고 싶었다. 하지만 아침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나를 깨우는 동행이라니. 쩝. 고맙다 친구야.
이왕 일어난거 잘 먹고 잘 살자는 생각으로 잔뜩 먹었다. 지금까지의 호텔조식 중 가장 많이. 그래야 이 더위를 견뎌내지 않겠는가. 근데 너무 많이 먹은 모양이다. 점심이 되어도 배가 안고프다. ㅋ
호텔에 있는 야외 카페 그늘에 앉아 있어도 땀이 난다. 어쩌다 땀돌이끼리 모여서 같이 육수를 빼고 있는건지 원. 놀면 뭐해 동네라도 둘러봐야지. 진짜 시골이다.
근처에 나갔더니 바레시장이 있다. 세련된 느낌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런 곳. 익숙한 아낙들의 모습이 정겹다. 땀 흘렸으니 또 음료가 필요하다. 사탕수수 쥐어짠 주스를 주문하여 작은 의자에 앉아 흡입하는 여유를 부렸으나 그래도 덥다.
슬슬 걸어서 길거리 반미집 도착. 기어이 또 반미 흡입. 반미도 가는 데마다 다르더라고. 오늘은 이 인간이 주문하면서 칠리 소스를 넣는걸 제지하지 않는 바람에 매워서 혼났네. 나 같이 여린 사람은 매운거 잘 못먹는다니깐!
호이안 타운에는 절대 더울 때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바 일단 호텔에서 게으름. 생각해 보니 아주 잘 한 일이다. 호텔에서 운행하는 셔틀이 5시에 있어서 그걸 타러 나왔더니 다들 우리와 같은 전략이었나보다. 많다.
호이안 타운은 아직 해가 저물지 않은 상태라 불빛이 엄청 많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무척 이뻤다. 전주 한옥마을이나 종로의 익선동 같은 분위기의 확대판이라는 느낌. 한나절이면 걸어 다닐만한 크기지만 문화유산이 있고, 각양각색 등으로 이쁘게 꾸며두고 상품들을 판다. 이쁘긴 하더라.
투본강을 노 젓는 작은 배로 다니며 운치를 즐기기도 하고, 사진들 찍기에 바쁘다. 온갖 국적의 외국인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한다. 그 중에 한국 사람의 포즈가 가장 멋지다. 내 눈에만 그런지도. 난 애국자인거 같다. ㅋ 우리나라가 점점 커져가는 것 같다. 분명히 베트남인데 우리 말이 엄청 들린다.
또 배고프다.
외국까지 와서 한식만 찾는다고 누가 그러기에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번엔 중국식을 먹었다. 교동짬뽕이라고.
저녁 먹고 나오니 불빛이 더욱 환상적이다. 이렇게 이쁜걸 아자씨 둘이서만 보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문득. 다음엔 최소한 둘이 오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확신헌다. 아니면 소망한다.
내 기억엔 베트남 전쟁 당시 파병된 한국군 주둔지 가운데 하나가 이 호이안이다.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일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 가운데는 해서는 안 될 반인륜적 행위도 있었을 터. 그럼 생각을 하며 형형색색 등을 보노라니 기분이 참 묘했다.
이왕 호이안에 왔으니 호이안에 대해 알아보는 게 예의일 것 같이 찾아봤다.
호이안은 다낭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과거 무역상들의 도시였다. 16세기 중엽부터 인도, 포르투갈, 프랑스,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의 상선이 기항하였으며 무역도시로 번성했던 곳이다. 그런 연유로 일본식 중국식 건축물들이 존재한다. 역사의 어느 지역이나 그렇듯이 무역항의 번성은 다국적인들의 유입을 낳았고 문화나 건축 등의 유산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것이 오늘날 관광지로 개발될 것이라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호이안 지역은 발견된 도자기 파편으로 추정하자면 22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이고, 2세기부터 10세기까지는 참파 왕국의 중심지였다. 영화로운 역사를 가진 지역이지만 현재에는 주요 영역을 다낭으로 넘긴 채 한적한 시골마을로 남게 됐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호이안의 구시가지는 199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바로 그 문화유산이 지금은 인공 불빛 반짝이는 관광지라니. 이쁘고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나 상업적 요소가 너무 많이 들어온 건 아닌가 하는 혼자만의 생각. 하지만 프랑스 문물이 깃들여 있어 거리마다 유럽풍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많고, 등으로 유명한 도시답게 상점들마다 화려한 형형색색의 등이 달려있어서 옛 것과 유럽풍의 아름다운 이국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건 사실이다.
어설프게나마 베트남 역사를 살펴보면서 재미있다는 생각을 한다.
베트남을 지리적 편의상 북부, 중부, 남부로 구분하는데 이 중 북부만 11세기까지 베트남이었고 중부에는 오스트로네시안어계의 참족을 중심으로 하는 참파라는 인종과 종교가 다른 국가가 있었다. 남부 역시 베트남과는 인종과 문화가 다른 크메르인이 세운 캄보디아의 영토였다. 전쟁 등의 온갖 풍파를 겪으면서 식민지에서 벗어나고, 결국은 남북통일을 이뤄 하나의 국가로 지낸다는 것. 아마도 내부적인 갈등도 있지 않을까. 재미있는 것은 같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이 베트남의 통일 이후 침략한 일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막아냈지만.
이념의 동일성으로도 자국이기주의는 극복할 수 없었나보다. 아니면 중국이 오랜 세월 그랬듯이 베트남을 속국으로 보았거나. 북베트남 지역은 오랜 세월 중국에 조공을 바치면서 견뎌내거나 기회만 되면 독립적인 언사로 중국을 불편하게 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번 긴 기간의 여행은 길고 긴 베트남 영토를 가로질러 올라오면서 하는 여행이었다. 호치민에서 시작해서 무이네, 나트랑, 호이안, 다낭, 하노이까지. 긴 역사를 공부했다는 생각이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내겐 좋은 경험이었던.
* 이 글은 2018년 4월 26일부터 5월 10일까지 베트남 자유여행을 다녀온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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