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의 역할
지구의 반지름이 약 6,400킬로미터인 것에 비하여, 지구 대기는 지상에서 100킬로미터 내외밖에 안 된다. 지구 대기의 공기 밀도는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빠르게 감소한다. 공기의 80% 정도는 지상에서 10킬로미터 이내(대류권)에 존재한다. 구름이 만들어지고 비가 내리는 고도는 태풍이나 토네이도와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지상 3킬로미터 이내이다.
인간 활동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대기의 두께는 이처럼 극히 얇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짧은 순간들을 제외하곤 사람들은 땅 위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인간을 지구 대기의 멘토스 (심해져 바닥 생물) 같은 존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기는 지구를 아주 얇게 감싸고 있는 셈이고, 이 얇은 공기층이 지구에서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적절한 조건이 되도록 지구 온도를 조절하고 있다. 대기층은 태양복사에너지를 흡수하여 가열되고 적외선 복사에너지를 우주로 방출함으로써 냉각된다. 지구 대기는 태양복사에너지를 흡수하는 양과 적외선 복사에너지를 방출하는 양이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연평균 온도는 거의 같은 상태를 유지한다.
지구 대기에는 아주 많은 종류의 기체가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질소 분자(약 78%)와 산소 분자(약 21%), 그리고 아르곤(약 0.9%)이다. 그런데 이들 기체들은 태양복사에너지를 흡수하지도 않고 적외선 복사에너지를 방출하지도 않는다. 이들을 제외한 0.1% 내외의 아주 미량의 기체들만이 복사에너지의 흡수와 방출에 관여하여 지구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데에 기여한다. 이 미량의 기체들을 '온실가스'라고 부른다. 이들 기체를 '온실(효과)가스'(Greenhouse effect gas, GHG)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들의 역할이 식물을 기르는 온실과 역할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온실은 유리나 비닐로 덮여 있는데, 태양빛은 그 막을 통과하여 온실 내부로 들어간다. 그 빛이 온실 내부의 토양에 흡수되어 열로 바뀌고 그 열이 공기를 데운다. 온실 내부의 토양과 공기도 자신의 온도에 걸맞은 복사에너지를 방출하지만, 적외선으로 방출되는 그 복사에너지는 막을 통과하지 못한다. 유리나 비닐은 파장이 짧은 태양복사에너지는 투과시키지만 파장이 긴 적외선은 투과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온실 내부의 온도가 외부보다 높아져서 채소 등 식물의 생육에 유리한 열 환경이 조성된다.
지구 대기에서도 대기 중 온실가스가 파장이 짧은 태양복사 에너지는 지표로 투과시키지만, 지표가 방출하는 파장이 긴 적외선은 흡수하여 지표로 다시 방출하고 일부만 우주로 방출한다. 결과적으로 온실가스가 온실의 비닐이나 유리 막의 역할을 해서 지구 대기가 온실 내부와 비슷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런데 온실가스에 의한 온실효과는 엄밀하게는 비닐하우스의 역할과는 다르다. 비닐하우스는 하우스 안의 토양에서 방출되는 장파복사(적외선)에너지를 투과시키지 않고 다시 바닥으로 반사하여 바닥에서 장파복사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변하도록 한다. 즉 비닐하우스는 하우스 안에서 외부로 장파복사에너지가 나가지 못하도록 차단한다.
반면에 지구 대기에 존재한 온실가스는 지표에서 우주로 나가는 장파복사에너지를 흡수한 후에 절반 정도는 지표 방향으로 그리고 나머지는 우주로 방출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된다. 결과적으로, 대기 중에 온실가스가 증가하여도 지표에 도달하는 태양복사에너지의 양과 대기를 뚫고 우주로 나가는 (장파복사에너지의 양에는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온실가스와 지표 사이에서 장파복사에너지의 흡수와 방출이 반복되므로, 대기 층 안에 장파복사에너지의 양이 증가하여 지구 온도가 상승하는 것이다.
지구 대기에 존재하는 주요 온실가스로는 수증기, 이산화탄소, 메탄, 오존, 아산화질소 등을 들 수 있다. 지구 대기에서 가장 큰 온실효과를 발휘하는 기체는 이산화탄소가 아니라 수증기이다. 하지만 수증기와 오존은 자연에서 발생되므로 기후변화 억제를 위해서 감축해야 할 온실가스로 언급되지 않는다.
지구 대기에 온실가스가 없다면 지구의 평균기온은 -18℃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실제 지구 평균기온은 15℃ 내외이므로, 오늘날 지구 대기에 포함된 온실가스가 발휘하고 있는 온난화 효과는 33℃나 된다. 온난화 효과 덕분에 자연의 동식물과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지구 대기의 온실가스는 지구 생명체를 지켜 주는 중요한 물질이다. 그러나 소중한 온실가스도 그 양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지구 온도를 너무 많이 높여서 오히려 지구 생명체에 위협으로 작용하게 된다.
오늘날 대기에 적체되어 있는 온실가스는 적정 양을 많이 초과하고 있는데, 그것이 기후위기의 본질이다. 아무리 고귀한 것이라도 과함은 부족함만 못한 법이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애틋한 마음조차도 그러하지 않은가.
기후위기 과학특강 : "도와줘요, 기후박사!" 김해동, 한티재, 202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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