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배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한가롭게 쉬는 여가, 즉 '무위無爲,idleness'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책이다. 한가하게 지내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 중 하나다. 이 활동에 관한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런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근로시간 증가가 전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고 시중에 나온 모든 시간관리에 관련된 책이 독자에게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기존의 주장과는 대척점에 위치한다. 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적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인간은 한가하게 지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가 바로 지금 당장 쉬어야 한다는 점을 암시하는 신경과학적 증거가 있다. 인간의 두뇌는 격렬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진화했지만, 두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한가하게 쉬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신경과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두뇌는 장시간 쉴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삶의 목적을 의식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유사 이래로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던 적이 없는 우리는 많은 시간을 쉼보다는 일에 투자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늘 어떤 일을 수행해야만 하는 피로감에 시달려왔다. 뇌를 쉬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로 나는 오토파일럿이라는 시스템을 소개하려고 한다.
두뇌는 자주 이 '오토파일럿autopilot, 자동항법장치’이라는 시스템에 맡겨야 한다. 항공기에 설치된 오토파일럿은 조종사가 신경 쓰지 않아도 계속 날아갈 수 있도록 자동으로 항공기를 조종하는 시스템이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부터 착륙할 때까지 모든 과정을 이 오토파일럿 없이 조종사가 수동으로 조작해야 한다면, 조종사는 오랜 비행시간 동안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해야 한다. 더 높은 고도를, 더 빠른 속도로, 더 장시간 비행할수록 수동조종은 조종사에게 심각하고 위험한 수준의 피로를 안긴다. 오토파일럿의 도입 덕분에 조종사들은 항공 과정에서 특히 위험한 이륙과 착륙 구간에 정신력을 집중할 수 있도록 쉴 수 있게 됐다. 오늘날 오토파일럿은 항공기를 안전하게 운항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로 사용한다.
오토파일럿의 단점도 있다. 가끔 조종사들은 본인이 직접 항공기를 조종하는 건지, 이 오토파일럿 시스템이 항공기를 조종하는 건지 혼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는 '모드 혼란mode confusion'이라 불리며 지금까지 심각한 항공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두뇌에도 항공기 시스템인 오토파일럿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휴식 상태resting state'에 들어설 때, 두뇌는 '수동 제어 manual control' 모드에서 이 오토파일럿 모드로 전환된다. 두뇌에 있는 오토파일럿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오토파일럿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보려면, 우리는 수동 제어를 중단하고 오토파일럿에 조종을 넘겨주는 수밖에 없다.
항공기 조종사들이 피로한 상태에서 수동으로 항공기를 조종하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에 이런 유용한 오토파일럿을 이용할 필요가 있듯, 모든 인간은 더 오랫동안 휴식을 취하고 본인의 두뇌 활동을 오토파일럿에 맡길 필요가 있다. 인간은 두뇌를 이 오토파일럿에 맡기는 동안 '모드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업무는 쉬엄쉬엄 처리하고, 일정은 보류하고, 중요한 일은 맡지 않는다.
이 분야의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특히 미국 사람들이 한가롭게 지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이 동일한 연구에 따르면,사람들은 바쁘게 일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없을 경우 한가롭게 빈둥거리는 편을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와 함께 때론 게으름을 원하는 것은 인류 진화 과정이 낳은 모순일지모른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인류는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였기 때문에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 생존의 최우선 과제였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생존은 더 이상 물리적으로 힘겨운 과제가 아니다. 생존을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지자 이들은 쓸데없이 바쁘게 지낼 이유들을 만든다. 어떤 일을 할 아주 사소한 이유나 그럴듯한 이유를 하나만 제시해도 사람들은 바쁘게 일할 것이다. 상대적으로시간이 너무 많이 생긴 사람들은 오히려 불행한 감정을 느끼거나 지루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가롭게 지내는 것이 진정한 '자기이해self knowledge'로 향하는 유일한 길일 수도 있다.
한가로이 지낼 때 의식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은 무의식의 자아가 보내는 메시지일 수 있고 이 정보는 유쾌할 수도 있고, 때론 불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뇌가 이러한 정보를 의식의 수면 위로 보내는 이유가 나름대로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두뇌를 오토파일럿에 맡기고 한가롭게 지내는 시기에 무의식에 묻혀 있던 위대한 아이디어들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를 기회를 잡는다.
인간이 오랜 세월 품은 '무위에 대한 공포' 때문에 현대인들은 바쁜 생활에 가혹할 정도로 집착하게 된다. 브루스 찰턴Bruce Charlton은 2006년 <의학 가설Medical Hypotheses〉이라는 학술지 사설을 통해 현대사회가 '바쁘다'는 특징이 있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했다. 바쁜 일은 멀티태스킹multitasking, 다중 작업과 연관이 있다. 바쁜 일이란 타인이 부여한 일정에 따라 여러 가지 연속적 과제들을 처리하고, 각 과제 사이를 오가며 처리해야 하는 일을 일컫는다. 대부분의 직업 세계에서는 이러한 바쁜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겨진다. 생명 기능에 있어서 유전적 조절을 담당하는 화학물질인 DNA를 발견해 1962년 노벨 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영국의 생물물리학자 프랜시스 크릭Francls Crick은 관리직을 수행할 때 따르는 '바쁜 생활을 싫어해 학계에서 고위 행정직에 오르는 것을 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무위'는 다른 사람도 아닌 본인이 스스로 정한 일정에 따라 하루에 한두 가지 일을 처리하는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다망多忙, busyness과는 대조적인 개념이다. 만성적으로 바쁜 생활은 두뇌에 해로우며, 오랫동안 바쁘게 지내면 건강 또한 심각하게 해칠 수 있다. 단기적으로 볼 때 다망은 창의성, 자기이해, 정서적 안락, 사회적 관계 유지 능력을 저해하고, 물리적으로는 심혈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있다.
사람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두뇌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연구실에서 신경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실 이 놀라운 활동은 두뇌영상촬영 피험자들이 영상촬영 기기 안에 누워서 공상할 때, 과학자들이 우연히 관찰하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려는 '한가한 상태'는 이처럼 실험실에 누워서 공상하는 상태뿐만이 아니다. 일과 시간에 남이 부여한 일정을 처리하지 않고 정말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상태, 바쁘지 않을 때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서 정신이 방황하도록 내버려두는 상태도 포함한다. 예술적·과학적 통찰이든, 감정적 혹은 사회적 통찰이든, 진정한 통찰은 이처럼 극히 드문 한가로운 상태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뇌의 배신, 앤드류 스마트, 미데어윌, 2014,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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