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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집 없는 서민의 주거권 - 프랑스 사회주택의 역사

by 길찾기91 2022.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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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에 산업화와 경제성장, 탈농촌과 도시화를 이룬 많은 나라가 그렇듯이, 한국은 높은 가계 부채와 주택 부족 외에 가족적·사회적 유대의 약화도 겪고 있습니다. 도시적 삶의 외로움과 업무 스트레스, 그에 따른 우울증과 각종 중독 현상, 높은 자살률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특징입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여러 대도시에서 똑같이 발견되는 문제입니다.

 

한국의 도시화는 프랑스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됐으며, 특히 1965~1985년에 집중됐습니다. 20년 사이에 전주, 부산, 인천, 광주를 비롯한 주요 대도시 인구는 연간 5%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현재 한국의 도시화율은 90%가 넘습니다. 특히 서울은 최소한 1990년대까지 '인구를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였고, 1970~1979년에는 시골과 지방에서 300만 명 가까운 인구가 상경했습니다.

 

이렇게 한국도 1960년대부터 여러 가지 도시문제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교통수단 부족과 환경오염, 각종 주거 문제(주택의 부족과 노후화,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주택 내부 시설, 과밀 주거 등)는 서울에서 두드러졌지만, 지방 대도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전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합니다. 1960년대에 시작한 이 정책은 1970년대 말부터 가속합니다.

 

아파트 단지 조성은 무엇보다 도시지역 주택 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그래서 한정된 주거 공간에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고층 아파트 단지를 밀집 개발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아파트 단지를 이 책에서 자세히 소개한 프랑스의 '복합 단지형' 사회임대주택에 빗대기도 합니다. 이 비교는 프랑스 사회주택의 정의(공공 재원을 지원받아 저소득층을 입주시킬 목적으로 지은 주택)를 떠올리면 온당치 않습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1960년대 저소득층을 위해 서울에 처음 조성한 아파트 단지(실내 약 60m규모) 정도가 프랑스 사회주택과 유사합니다. 도시학자이자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한국의 아파트단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한국의 '공공 주택'은 분명 '사회주택'의 형태를 띠지만 아직 한국에 '사회주택'이란 용어는 없으며, logement social(프랑스 사회주택)의 번역어인 '사회주택’ ‘사회복지주택'은 여전히 널리 통용되지 않는다.”

 

1970년대부터 한국의 아파트는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중산층 이상을 위한 주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파트단지는 모더니티와 서구 문화의 상징이었고, 한국인은 아파트를 한옥보다 훨씬 현대적이며 세련된 주거지로 인식했습니다. 프랑스의 '복합 단지'와 달리,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주변에서 거의 모든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반자족적 공간입니다. 관리 사무소는 물론 수영장, 농구장, 유치원, 경로당, 슈퍼마켓, 어린이 놀이터 등 다양한 시설이 아파트 단지 내에 있고, 훌륭한 교통망 덕에 접근성도 좋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아파트는 근교에 위치해도 도심이나 기타 도시 공간의 편의에서 소외되지 않습니다.

 

끝으로 봉인식 박사는 한국의 도시계획을 다룬 논문에서 아파트 단지 건설이 부동산 투기와 깊이 맞물려 있음을 지적합니다. 주택 가격과 취득 요건을 규제해 서민층 주택 공급을 보장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도, 목표와 달리 집값 폭등 현상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프랑스 '복합 단지'와 한국 아파트 단지의 위상은 거의 정반대로 변화해왔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아파트 거주는 일종의 사회적·경제적 지위 상승을 의미하지만, 프랑스에서 '복합 단지거주는 기피와 수치의 대상입니다. 한국의 아파트 거주 가구는 주택 소유주지만, 프랑스 복합 단지 거주자는 대부분 세입자라는 차이도 있습니다.

 

20228월 뇌이쉬르센Neuilly-sur-Seine에서 장-마르크 스테베

 

집 없는 서민의 주거권, -마르크 스테베, 황소걸음, 2022, 9-13. 한국어판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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