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세상이야기

19세기 프랑스의 주택 상황 - 집 없는 서민의 주거권, 장-마르크 스테베, 황소걸음, 2022

by 길찾기91 2022. 9. 25.
728x90
반응형

19세기 프랑스의 주택 상황

 

18세기 말에는 30%가 넘는 프랑스 인구가 빈곤에 시달렸다. 1000만 명이 비참하게 살았으며, 그중 절반은 끼니를 잇기도 어려웠다. 주거지는 대부분 조잡하고 불결했으며, 세입자의 지위도 불확실해서 언제든 쫓겨날 수 있었다. 그들은 좁고 더러운 집을 가난한 세입자에 임대한 집주인의 횡포에 시달렸다.

 

당대의 날카로운 관찰자 메르시에는 파리 빈민 주거지에 대한 귀중한 묘사를 남겼다. 당시 생마르셀 지구의 상황을 보자. '교외인 생마르소에서 생마르셀로 들어서며 내가 본 것은 더럽고 악취 나는 소로와 흉측한 집, 거지, 불결함과 가난뿐이었다(・・・), 가족 전체가 방 하나에 살았다. 네 벽과 시트조차 없는 침대, 요강과 함께 나뒹구는 주방집기가 보였다. 가구를 합해봐야 20에퀴(19세기 5프랑 은화)도 되지 않았다. 그들은 집세를 내지 못해 석 달마다 방을 옮겨야 했다.' 역사학자 게랑은 18세기 파리 시민이 얼마나 좁은 공간에서 비위생적으로 뒤엉켜 살았는지 지적한다. 노동자 계층은 파리의 어떤 지구에서든 과밀 상태로 지냈다. 예를 들어 테아트르-프랑세 근처에서는 방 6개와 다락 몇 개가 있는 건물에 27명이 살았다. 파리 교외 생앙투안 지구에서는 131세대 중 69세대가 단칸방에 거주했다. 32세대는 방 2, 15세대만 방 3개짜리 집에 살았다. 게랑은 메르시에의 기록을 참조해 비싼 집세와 집주인의 가혹함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사람들은 누구와도 잘 지냈다. 심지어 유대인과도 잘 지냈다. 하지만 자기 세입자와는 그럴 수 없었다. 임대인은 벽돌공에게 들볶이는 건물주에게 늘 시달렸기 때문에 피도 눈물도 없이 가혹했다. 당시에는 집세를 못 내면 끔찍한 범죄처럼 취급했다. 그렇게 파리 교외에서는 집세를 못 낸 3000~4000세대가 석 달마다 누추한 세간을 싣고 허름한 방을 전전했다.' 지방 도시나 시골의 주택 상황도 크게 낫지 않았다.

 

사회적 격변의 시기인 18세기 말, 서민의 주거 조건은 프랑스혁명 당원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주택문제는 프랑스혁명 당시 소집된 삼부회 청원서나 그 후 의회보고서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잘 알려진 대로 1789년 프랑스혁명은 부르주아의 혁명이지, 많은 피를 흘린 '제삼계급(평민층)'이나 '하층민의 혁명이 아니었다. 혁명 후 정국을 장악한 부르주아는 자유주의경제와 산업화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경제체제를 확립한다.

 

1791614, 르샤플리에 법이 선포되면서 기업 활동의 자유, 상품의 자유로운 유통, 노동과 채용의 자유가 보장된다. 역사학자 우드빌이 지적했듯이, 이 모든 자유의 이름으로 노동자가 상품으로 취급되고 기업가는 7세 이상 아동에게 일을 시킬 수 있게 됐다. 급여는 낮아지는데 집세는 올라가고, 산업 프롤레타리아 계층이 노동자 지구의 너절하고 비참한 집으로 몰려들었다.

 

땅임자도 대거 바뀌었다. 교회 부속 영지나 타지로 떠난 귀족의 땅은 국가에 귀속됐다가 다시 팔렸다. 새 땅임자는 부르주아가 대부분이고 일부 부농도 있었다. 배타적인 땅임자 가운데 부유한 이들은 경제·정치·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예를 들어 산업자본주의의 확산을 최대한 저지하려 했다.

 

정치적·사회적 변동의 여파는 복합적이었고, 19세기 내내 천천히 유럽 사회로 퍼졌다. 그렇지만 이 모든 사회적·경제적·문화적 변화의 기원이 단지 1789년 프랑스혁명이라고 볼 순 없다. 루터Martin Luther와 칼뱅Jean Calvin이 가톨릭교회의 몇몇 교리를 문제 삼은 16세기 이래,중대한 사회적·문화적 변동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담한 종교적 비판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가톨릭교회의 속박이 약해지면서 인간은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리·과학·철학 영역에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이 열렸다. 계몽주의 시대,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가 시민의 권리로 인정받으면서 이 변화는 결정적인 것이 됐다.

 

18세기 말은 진정한 전환기였다. 이전의 세계는 농민과 시골, 세습적 군주제, 불평등한 세 계층(귀족, 성직자, 평민), 신학적 형이상학적 우주론이 지배했다. 그러나 이후의 세계는 도시와 산업, 경제적 자유주의와 실증주의가 우선시되며, 정치조직에서는 공화제와 민주주의, 세속적 시민성(무종교성)을 기반으로 했다. 18세기 말부터 프랑스에서 전개된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두 흐름을 살펴보자. 두 현상은 모든 사회계층의 노동과 주거, 삶의 조건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으며, 노동자 계층에게는 더욱 그랬다.

 

집 없는 서민의 주거권, -마르크 스테베, 황소걸음, 2022, 45-49.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