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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사진 속 세 소년 -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창비, 2022

by 길찾기91 2022.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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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세 소년

 

어머니가 떠나자마자 황사장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지팡이가 먼저 보였다. 어제의 상이용사였다.

 

"아따 성님, 여개서 계속 잡수랑게 거개는 뭐 할라고라?" 언제 왔는지 상이용사의 얼굴이 벌써 시뻘겠다. 식전부터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 하기야 술꾼에게 시간이 대수랴. 술꾼은 시간을 뛰어넘은 자, 아니 어쩌면 어느 시간에 못 박혀 끊임없이 그 시간으로 회귀하는 자일지 모른다. 작은아버지가 그랬다.

 

"조문한당게!"

 

월남전에서 다리를 잃었다고 했으니 아마도 육십년대 후반이나 칠십년대 초반, 원래의 다리보다 더 오래 다리 노릇을 해온 때문인지 노인은 지팡이를 능숙하게 움직여 비틀거리지도 않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따 조문은 무신・・・・・・ 나랑 쐬주나 마시장게."

 

다리 불편한 노인네를 확 낚아챌 수도 없는 노릇, 황사장이 어쩌지도 못하고 졸졸 뒤를 따르며 다그쳤다.

 

"? 나는 베트콩 때려잡던 사램잉게 뽈갱이 조문하면 안 된다는 것이여! 나가 고상욱이 때려잡았간디?"

 

"들어가세요. 가서 조문도 하시고 식사도 하세요.”

 

분기탱천했던 노인이 순순히 내 뒤를 따랐다. 노인은 절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아무 데나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짚고 조문실로 들어온 노인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물끄러미 아버지 영정을 바라보던 그가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는데 눈을 쓱 비볐다. 이제는 밖으로 러 넘칠 눈물조차 남아 있지 않을 성싶기도 했다.

 

노인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오래된 사진이었다. 내게 보여주려 가져온 모양이었다.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사진을 집어 들었다. 누르스름하게 변색된 사진 속에서 세 명의 남자가 팬티 차림으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섬진강 문척 나루터였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직전까지 나도 그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아버지를 따라 읍내 나들이를 하곤 했었다. 아버지가 하동댁 궁둥이를 두드린 날도 나는 입이 댓발이나 나온 채 이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집에 돌아갔다.

 

맨 오른쪽, 수건을 머리에 늘어뜨린 남자를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열대여섯쯤 됐을까? 젊디젊은 아버지였다. 아니 아직 젊음을 꽃 피우기 전, 수염도 나지 않은 소년 아버지였다. 내가 본 아버지의 사진 중에서 가장 젊은 모습이었다(할머니가 무명천에 꿰매 놓은 국민학교 졸업 사진이 더 어릴 때이긴 하나 단체사진이라 얼굴이 콩알만하여 나는 이날 입때껏 아버지를 찾아내지 못했다).

 

가운데가 우리 성이여. 상욱이 성이랑 둘이 엄청시리 친했어. 만날 붙어 다녔응게. 나도 만날 성들을 쫓아 댕겼는디 ・・・・・・ 근디 인자 성 얼굴이 생각이 안 나 사진을 봐도이, 요 사람이 우리 성인갑다, 모리는 넘 보디끼 본당게.”

 

사진 속의 아버지는 딴 사람인 듯 낯설었다. 아버지는 어릴 때의 얼굴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낮선 건 본 적 없는 싱싱한 젊음과 정면을 제대로 응시한, 사팔뜨기 아닌 눈이었다. 사진 속 문척 모래사장은 지금과 달리 곱고 넓었고, 빛바랜 흑백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 열기마저 식힐 듯 아버지의 청춘은 싱그러웠다. 아직 사회주의를 모를 때의 아버지, 열댓의 아버지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질곡의 인생을 알지 못한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사진 속 소년 둘은 입산해 빨치산이 되었고, 그중 한 사람은 산에서 목숨을 잃었다. 형들을 쫓아다니던 동생은 형을 잃고 남의 나라에서 제 다리도 잃었다. 사진과 오늘 사이에 놓인 시간이 무겁게 압축되어 가슴을 짓눌렀다.

 

"나는이, 상욱이 성만 보면 성이 나드라고. 감옥에 가고 고생은 했겄제만 그래도 지는 살아 있응게. 살아서 겔혼도 허고 새끼도 보고 희컨 머리도 남시로 늙어가게. 나는 우리 성 늙어가는 것도 못 봤는디, 지는 자꼬 내 앞에서 늙어강게......"

 

내 부모는 평등한 세상이 곧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산에서 기꺼이 죽은 사람들을 늘 부러워했다. 쭉정이들만 남아서 겨우겨우 살고 있노라,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런 삶이 부러워 미웁기도 했던 것이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마음을 짐작은 할 것 같았다.

 

나는 전혀 알지 못했던 내 아버지의 청춘이 담긴 사진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짚었다. 사진은 바닥에 남겨둔 채.

 

자네 줄라고 인자 우리 성 얼굴도 잊어불라고.”

 

그는 아침이라도 먹고 가라는 내 말을 들은 척도 않고 아무 데나 짚었던 지팡이로 힘주어 조문실 바닥을 짚으며 걸음을 옮겼다. 출입문 앞에서 나를 돌아본 그가 무슨 말을 할 듯 달싹거리다 말했다.

 

"또 올라네.”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술이 불콰한 상태로도 지팡이를 다리처럼 자유롭게 쓰는 그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미련 없이 잘 가라는 듯 오늘도 날은 화창했고, 도로변에는 핏빛 연산홍이 불타오르고 있었고, 허벅지 아래로 끊어진 그의 다리에서 새살이 돋아 쑥쑥 자라더니 어느 순간 그는 사진 속 그의 형보다 어린 소년이 되어 달음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창비, 2022, 193-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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