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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신비주의와 정보통제 - <빌 게이츠는 왜 아프리카에 갔을까 ; 거짓 관용의 기술> 리오넬 아스트뤽

by 길찾기91 2022.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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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와 정보통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공익을 위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재단 트러스트 활동을 통해 군수산업과 화석 에너지 분야, 집약식 농업 및 유전자 변형 식품, 패스트푸드 체인, 대형 유통업체 등을 후원한다. 일에는 항상 민첩함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앞으로 이어질 본문 내용처럼 한 점 부족함 없이 민첩하게 대응하는 빌&멜린다 게이츠는 모든 일을 지극히 합법적으로 진행할 뿐아니라 호의적인 언론을 등에 업고 대중의 인기까지 굳건히 지켜낸다. 대중의 공감을 사기 위해 신비주의와 정보통제 전략을 적절히 구사한 덕분이다.

 

물론 기자들에게도 책임은 있으며, 게이츠 재단 역시 비판 여론을 다스리기 위해 온갖 예산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재단이 언론의 공격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자금을 할애하는지는 이 책에서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게이츠 재단의 가장 효율적인 홍보 전략에는 사실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바로 '문어발 전략'으로, 게이츠 재단은 전 세계에 포진한 복잡한 이름의 자회사 점조직을 통해 교육, 농업 분야는 물론이고 보건, 생태 분야에도 발을 담그고 있다. 이로써 재단 활동에 관한 세분화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받으며, 그러면서도 재단 의사 결정 과정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 원칙에 대해선 결코 밝히지 않는다. 즉 빈곤과 보건 문제에 대해 부자들의 선처를 받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해법'을 제시하면 이를 바탕으로 발전이 이뤄진다는 식의 유아기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만 겉으로는 이를 내비치지 않는 것이다. 실로 '자선 자본주의'라는 이름에 걸맞은 시각이다. 초특급 부호들의 이 자선 자본주의는 일견 너그러운 독지가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세금 탈루를 통해 공공 재정을 빈약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따라서 자선 자본주의는 조세 천국을 없애야 하는 이유도, 다국적 기업의 권력을 제한해야 하는 이유도 납득하지 못한다. 쉽게 말해 경제구조를 재편할 생각은 물론 민주주의와 시민의 힘에 대한 믿음도 없는 것이다.

 

이렇듯 왜곡된 기본 원칙을 숨기고 있는 게이츠 재단의 문어발 전략은 일단 먼저 던지고 보는 식으로 변해가는 오늘날 언론계의 상황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사실 요즘은 언론매체든 시민들이든 손에 쥐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정보를 굳이 시간 내어 일관성 있게 끼워 맞추려는 공을 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게이츠 재단과 관련한 끔찍한 퍼즐 조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방치된 상태다. 그리고 이 같은 노력의 부재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나 언론에서 하는 이야기는 모두 빌 게이츠라는 인물을 둘러싼 루머와 환상을 끌어들이며 공허한 메아리로 이어진다. 이렇듯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는 현 언론계의 상황은 게이츠 재단에 호기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게이츠 재단은 '침묵'이라고 하는, 돈이 전혀 들지 않는 수단도 활용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코로나19 시국에서 끊임없이 등장한 음모론에 대한 재단의 대처였다. 항간에는 빌 게이츠가 코로나19를 퍼뜨렸다는 말도 안 되는 루머도 있었고, 그가 RFID 칩을 심어 사람들을 추적할 수 있는 백신을 준비 중이라는 설도 있었다. 이 모든 루머에 대해 게이츠 재단은 적절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는 동안 이 거짓 정보는 계속 확산되었고, 결국 이를 지어낸 사람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갔다. 그러자 주류 언론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발 빠르게 움직이며 진실을 바로잡았고, 빌 게이츠를 음모론의 피해자로 확실히 못 박는다. 모든 언론이 하나같이 게이츠를 지지하고 나서자 몇몇 허황된 사람들의 날조된 의견이 게이츠의 운영 방식에 대한 정확하고 합당한 비판과 서로 뒤섞인다. 특히 게이츠 재단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기만 하면 무조건 의심을 사게 되었다.

 

음모론자들의 반대편에는 빌 게이츠를 찬양하는 세력이 존재한다. 혹자는 빌 게이츠를 앞서가는 천재로 바라보며, 심지어 그를 신격화한다. 서아프리카에 에볼라 사태가 불거진 직후인20153, 빌 게이츠는 온라인 테드TED 강연회 자리를 통해 우리가 미처 대비하지 못한 전 세계적 유행병의 위기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당시 빌 게이츠는 어쩌면 대중에 공개된 CIA 보고서 <2025년의 세계>를 본 직후였을 수도 있고, (그의 강연 3년 전에 발간된) 데이비드 쿼먼의 베스트셀러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읽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 문제에 대한 또 다른 출간물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여느 네티즌이 특정 정보를 '공유'하거나 '리트윗을 하듯이 중간에서 누군가의 정보를 옮겼을 뿐인데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시자를 둘러싼 아우라 덕분에 그의 발언은 '예언'으로 둔갑했고, 빌 게이츠 신봉자들은 그가 몇 년 후 도래할 전 세계적 유행병을 예견했다고 확신한다.

 

경외에 가까운 존경과 가짜 뉴스 사이에서 과연 보다 치밀하고 정확하며 복합적인 정보가 끼어들 계제가 있기는 한 걸까? 물론 이 억만장자가 나름대로 미래를 '예측'하기는 했다. 마이크로컴퓨터라는 물건이 우리 모두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리란 걸 미리 간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30년 전의 오래된 일이다.지금의 빌 게이츠는 어딜 봐도 생물권 전체에 해가 되는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지지하며 시대에 역행하는 인물이다. 비단 이 책에 소개된 내용뿐 아니라 그가 주장하는 코로나19 퇴치 전략에서도 이 같은 부분이 확인된다.

 

나름의 이유에서 소아마비 같은 질병 퇴치 운동을 꽤 열심히 대대적으로 벌였을 때처럼 게이츠 재단은 코로나19 퇴치를 위해서도 175,000만 달러의 투자를 약속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가 지지한 건 검증된 기술인 백신이었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게이츠 재단은 제약 회사의 기술 독점을 열렬히 옹호했다. 대개 돈 없는 사람들이 약을 쓸 수 없게 만들고 공중보건보다 사익을 우선시하는 원흉이 바로 제약회사의 기술독점이다. 그리고 게이츠는 한평생 이 같은 기술 독점을 옹호하며 특허권을 신봉했다. 그가 지금의 재산을 모은 근간도 바로 이 특허권이었다. 1970년대 중엽 게이츠 제국의 설립기는 사실 데이터 독점의 역사로 얼룩져 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컴퓨터 분야에선 미국의 컴퓨터 동호회 사람들이 데이터를 직접 만들어 무상으로 배포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이 데이터를 독차지하면서 당시 유저들의 원성을 샀다. 이러한 게이츠의 방식은 훗날 (생물체에 대한 특허를 점유하는 몬산토의 전략으로 이어진다. 빌 게이츠가 몬산토의 전략을 꾸준히 지지하는 이유다.

 

빌 게이츠가 코로나19는 물론 차후에 발생할 또 다른 질병 퇴치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는 생물다양성의 소실과 세계화의 폭주를 야기한 경제 모델을 지지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인물이다. 어찌 보면 코로나19가 창궐한 것도 모두 이 같은 오늘날의 경제구조 때문인데,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서비스에 관한 정부 간 과학-정책 플랫폼IPBES 소속 전문가들이 펴낸 보고서에서도 생물다양성의 소실이 전염병 위기 요인의 증가와 관련되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코로나19 사태 및 기존의 전 세계적 유행병 창궐에는 '모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간의 활동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빌 게이츠는 이 같은 학술 자료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뿐더러 지구를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드는 성장 기반 경제 모델의 위험성에 대한 다른 여러 연구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생태계가 처참히 무너지는 현 상황에서도 게이츠는 자신의 생각을 바꿀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인다. 반면 라디오나 TV,신문, 인터넷 사이트, 유튜브 인플루언서 등의 언론 주체와 시민들 사이에선 차츰 게이츠 재단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특히 이 책이 프랑스에서 맨 처음 출간되었을 때 언론과 사회 각계에서는 비상한 관심을 표명했다. 이 같은 인식의 전환으로 내일을 위한 희망의 문이 열리길 고대한다.

 

<빌 게이츠는 왜 아프리카에 갔을까 ; 거짓 관용의 기술> 리오넬 아스트뤽, 소소의책, 2021, 16-21. 한국어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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