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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공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 <풋워크 ; 242억 켤레의 욕망과 그 뒤에 숨겨진 것들>

by 길찾기91 2022.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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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셰브넴은 1주일에 6일은 혼자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머리카락을 말총머리로 모아 묶고 레깅스와 점퍼를 입는다. 630분에 오는 공장 버스에 늦지 않도록 아침 625분에 집을 나선다. 버스를 놓쳤다가는 3킬로미터를 꼬박 걸어가거나 택시비를 내야 한다. 버스들은 적막에 싸인 거리를 일렬로 달려 졸음에 겨운 수백 명의 노동자를 시 외곽의 공장으로 실어 나른다.

 

셰브넴은 층계를 올라 자신의 작업장에 도착한다. 근무는 7시 정각에 시작되지만 몇 시에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앞에 놓인 새 부츠 더미를 세제로 닦는다. 화학약품 방울이 튀자 피부가 타는 듯 따갑다. 눈이 따갑고 입 안은 역겨운 맛으로 가득하다.

 

몇 해 전 겨울, 공장 주인이 겨우 30분간 온열기를 튼 후 온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창을 모두 가리라고 했다. 바람이 들어오는 곳은 공장의 문두 개가 전부다. 오전 내내, 흐릿한 공장 안은 접착제와 염료에서 나오는 연기로 자욱하다. 이따금 감사관이 공장을 방문할 때마다 셰브넴은 마스크를 지급받아 착용한다. 하지만 통풍구조차 없는 곳에서 마스크를 쓰려니 질식할 것만 같다.

 

"진실을 보지 못한다면 그냥 멍청한 거죠." 공장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감사관을 볼 때마다 셰브넴은 그런 생각을 한다. 감사관은 구석구석 확인하고 메모를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25분짜리 휴식 시간이 곧 점심시간이다. 직원 식당이나 휴게실이 있을 리 없으니, 셰브넴은 일하던 작업대 앞에 그대로 앉아 집에서 직접 싸온 음식을 먹는다. 벌써 15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데도 상처투성이인 손을 보면 여전히 마음이 좋지 않다. 씻고 싶지만 화장실까지 가려면 거의 15분은 걸리고, 그 후에는 세면대에 줄을 서서 기다려 물통에 물을 받아야 한다. 그때쯤이면 쉬는 시간이 거의 끝났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면 부츠에 광을 내야 한다. 한 짝 한 짝 손을 팔꿈치까지 깊숙이 집어넣고 번쩍번쩍 광이 날 때까지 문지른다. 그러다 보면 팔이 새까매진다. 주머니에는 작업이 끝나면 광택제를 씻어내려고 집에서 가져온 비누가 들어 있다. 그때는 오후 230분일 것이다. 셰브넴이 생각하기엔 분명히 공장에 들어올 때 그렇게 정한 것 같다. 하지만 셰브의 계약서에는 근무시간 조항이 없다. 모든 직원이 시간제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공장 전체에 돌고 있다. 어떤 노동자들은 자신이 합법적으로 고용되었는지 아닌지조차 모른다.

 

언제 퇴근할지 아무도 모르는 게 정상이 되었다. 공장에서 가장 힘든 철은 겨울용 부츠와 신발을 만드는 여름이다. 납기를 맞추라는 압박은 더한층 심해지고, 지글지글 끓는 듯한 공장에서 셰브넴은 오후 5시까지 강제 무보수 노동을 해야 한다. 매니저들은 더 열심히 일하라며 고함치고 욕설을 한다. 그래서 셰브넴은 뇌를 아예 꺼버리려고 한다. 무감각해지라고 자신에게 말한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상상하는 거야.

 

공장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셰브넴은 곧 새신랑과 함께 다른 도시로, 심지어 타국으로 이민을 갈 작정이었다. 당시에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고, 노조를 결성하자는 말도 나왔다. 이제 셰브넴은 하루가 더 빨리 지나가게 라디오가 있었으면 하는 꿈을 꾼다.

 

셰브넴은 산책을 하거나 가족과 어울리며 토요일을 보내는 꿈도 꾸지만, 토요일에 출근하기를 거부했다가 해고당한 친구가 있다. 작업량이 많은 사람을 항상 도와주던 착한 남자였다. 며칠 연속으로 휴가를 내는 것도 셰브넴의 꿈 중 하나다. 하지만 법적으로 정해진 21일의 연차 대신 셰브넴이 쉴 수 있는 것은 겨우 5일이 전부다. 매니저가 공장에 일이 적은 날로 알아서 결정한다.

 

몇 시간을 근무하건 셰브넴의 월급명세서에는 변화가 없다. 어느 때는 시간당 보수라고 하고, 어느 때는 공장에서 생산한 신발 켤레당 보수라고 하고, 또 어느 때는 정해진 할당량을 맞추지 못해서 보수가 삭감되었다고 한다. 잔업을 얼마나 많이 했든 상관없이 셰브넴은 매달 197유로를 받는다.

 

때로는 상품에 가격표 붙이는 일을 한다. 셰브넴이 광을 낸 부츠는 서유럽에서 200유로에 팔릴 것이다. 셰브넴이 한 달 꼬박 주 6일 근무를 해서 받는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이다.

 

공장에는 주문 생산을 감독하러 온 이탈리아인들이 있다. 셰브넴은 그 이탈리아인들이 지역 매니저들보다 더 좋다. 노동자들에게 고함을 치지 않기 때문이다. 값비싼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가진 그 사람들은 이탈리아에서 이런 일을 시키려면 한 달에 1,600~2,000유로는 줘야 할 거라고 말한다.

 

복잡한 가죽 신발 주문 생산이 중단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탈리아인들이 염료의 색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왜 여기로 와요?' 셰브넴은 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가 일을 잘해서? 아니면 그냥 싼 맛에? 그 사람들은 이 많은 일을 다 감당할 수 있느냐고 결코 묻지 않는다.

 

퇴근 버스에서 내리면 열한 살 된 아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몇 시간쯤 같이 있어 줄 수 있다. 환한 웃음을 가진 다정한 아이다. 숙제가 뭐냐고 물으면 아이는 늘 없다고 말한다. 아이 아버지, 즉 셰브넴의 전남편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외국으로 떠났다. 여름까지 돈을 좀 모을 수 있다면 아버지에게 다녀오라고 아이를 보내줄 것이다.

 

아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자 셰브넴은 전 시부모의 집까지 걸어서 아이를 데려다준다. 아이는 거기서 자는데, 셰브넴이 일하러 간 오전 중에 아이를 봐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혼자 걸어가기엔 겁이 너무 많다. 셰브넴은 부모님 댁에 얹혀산다. 식구들 중에 집에서 노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모님은 셰브넴에게 월세를 받지 않을뿐더러 공공요금까지 내준다. 셰브넴의 월급은 가족의 식비, 그리고 아들의 옷과 신발, 학비와 학교 활동비에 들어간다. 아이는 애플 로고가 박힌 노트북을 몹시 갖고 싶어 한다. 셰브넴은 아들에게 외국어 교습도 시켜주고 싶지만, 수업료와 차비가 너무 비싸다.

 

예전에는, 결혼하기 전에는 공장에 돈을 더 달라고 따지곤 했다. 이제는 오랜 세월 공장에 다닌 후 호흡기에 문제가 생겨 밤새 기침을 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뭔가를 바꿀 수 있다는 걸 믿지 않게 된다. 셰브넴은 친구들에게 말한다.

 

"이탈리아인들은 부자야. 공장주는 부자야. 하지만 회사가 우리한테 뭘 주지? 아무것도 안 줘. 심지어 공짜 신발 한 켤레도, 흠집이 난 건 차라리 폐기 처분하고, 남는 게 생기면 갖다 버리고 말아. 흠집이 있어도 나같으면 좋다고 신을텐데, 그 사람들은 그냥 갖다 버린다니까."

 

<풋워크 ; 242억 켤레의 욕망과 그 뒤에 숨겨진 것들> 텐시 E. 호스킨스, 소소의책, 2022, 6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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