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여성'이라는 차별의 이름 앞에 실력으로 맞서다
캐서린 존슨Katherine Coleman Goble Johnson(1918~2020)은 화장실에 갈 때마다 불편함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 물론 그 분노조차 늘 살아온 방식에 익숙해져 스스로 삭였지만, 그렇다고 불쾌한 감정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녀가 근무하는 건물에는 유색인용 화장실이 없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건물에 가야만 했기 때문에 화장실 가는 일이 곤욕이었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일을 보고 자랐으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어서 그게 잘못됐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순응하며 살아왔지만, 멀리 떨어진 다른 동까지 동동걸음으로 화장실에 갈 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화는 어쩔 수 없었다.
캐서린은 어릴 때부터 수학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그린브라이어 카운티에는 대부분의 다른 주와 마찬가지로 흑백 교육이 따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흑인 학생에게는 8학년 이상의 공립학교 교육을 제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캐서린은 집에서 무려 200㎞쯤 떨어져 있는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학 내의 웨스트버지니아 연구소의 부설 고등학교에 다닐 준비를 따로 해야 했다. 그녀 나이 불과 열 살 때였다.
인간 컴퓨터로 불린 수학 천재 캐서린 존슨
캐서린은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학에서 수학 천재 소녀로 통했다. 그녀의 지도교수였고 저명한 수학자였던 윌리엄 클레이터William Schieffelin Claytor(1908~1967) 교수는 열일곱 살인 캐서린 한 사람을 위해 '해석기하학’이라는 과목을 개설해 줄 만큼 그녀의 재능을 아꼈다.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수학 연구원으로 일하고 싶었지만 '흑인 여성'을 받아주는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주어진 최상의 직업은 버지니아주 매리언에 있는 흑인 공립학교의 교사였다.
화학 교사인 남편과 결혼한 캐서린은 대학원에서 고등수학을 공부했지만 임신으로 중간에 포기했다. 그 후 평범하게 살던 그녀는 남편이 병들어 눕자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시 교사로 취업했다가 미국항공자문위원회에서 수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을 고용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 문을 두드렸다.
소련이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은 조급해졌다. 1958년에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세웠다. 그 전신은 1917년에 설립된 미국항공자문위원회NACA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관의 하나였다. NASA로 개칭하고 조직을 개편한 항공우주국은 커다란 압박을 받았다. 무엇보다 소련이 선점한 우주 경쟁에서승리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엄청났다. 막대한 예산과 인원이 동원됐다.
NACA는 엄청난 양의 숫자를 일일이 손으로 처리해야 하는 '남성 엔지니어들의 일손을 덜어주기 위해' 1935년부터 백인 여성 수학 전공자를 고용하기 시작했다가 나중에 흑인 여성 계산원도 모집했다. 그곳에는 계산원으로 수백명의 여성들이 일했는데 여성 계산원들은 남성 과학자들과는 달리 준전문가로 분류됐고, 같은 일을 하는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았다. '당연히' 흑인 여성계산원은 임금도 그보다 더 낮았고, 신분은 비정규직이었으며 일상에서의 차별도 다를 바 없었다.
캐서린은 버지니아주 랭글리 Langley의 거대한 격납고가 있는 비행연구국FRO에 보내졌는데 그녀가 그곳의 유일한 흑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항공기의 공기 역학을 계산하는 일을 돕게 됐다. 캐서린은 수학자·물리학자·천문학자·지리학자·논리학자였던 오일러 Leonhard Euler(1707~1783)의 공식이 행성 및 위성 착륙을 위한 우주선의 타원궤도의 궤적을 계산하는 데 응용할 수 있다는 걸 밝혀냈다.
그녀는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지만, '여성'이고 '흑인'이라는 굴레는 벗지 못했다. 훗날 NASA에서 '인간 컴퓨터'로 불리던 그녀는 NASA 내에서도 최고의 수학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고용자에 불과했다. 유색인종을 배척하고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기 꺼리던 1960년대 미국에서 그나마 열린 사고를 가진 브레인들이 모인 집단인 NASA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모든 문서는 기밀이라며 철저하게 가려져 정보 접근이 아예 불가능했고, 백인들은 자신들과는 함께 커피도 마실 수 없다며 흑인용 커피포트를 따로 설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근무하던 건물에는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이 없었다.
1950년대 미국의 아이젠하워 정부는 소련이 미국 국민의 불만을 활용해 미국 내의 갈등을 유발하고 증폭시킬 것을 우려해 인종 차별과 관련한 사안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런 시도는 냉전기 미국을 강화하려는 목표의 산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민권법Civil Rights Act(또는 투표권법)이라는 1차적 결실이 맺어지는 1964년까지는 요원한 일이었다.
영화 같은 감동, 도러시 본과 메리 잭슨
NASA에는 캐서린 존슨 외에도 상당히 많은 수의 흑인 여성 과학자와 수학자들이 있었다. NASA 전산원의 슈퍼바이저이자 계산팀의 리더였지만, NASA의 '방침상'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임시직인 도러시 본Dorothy Vaughan(1910~2008)은 기계식 컴퓨터의 시대를 간파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IBM 컴퓨터가 NASA에 도입된다는 소식에 IBM 7090과 프로그래밍 언어인 포트란FORTRAN을 흑인 동료들과 함께 분석하고 알아갔다. IBM 컴퓨터를 도입하면 컴퓨터가 이들 전산원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NASA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건 본과 그의 부하 직원들이 IBM 직원들보다 능숙하게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계산원으로 있다가 흑인 여성 최초로 엔지니어팀에 합류한 메리 잭슨Mary Jackson(1921~2005) 등 유능하고 탁월한 흑인 여성조차 NASA에서는 일종의 투명인간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NASA에 있는 흑인 여성들은 다른 흑인 여성들에 비해 최고 엘리트에 속하는 계층이었다. 그러나 그녀들도 화장실을 따로 써야 했고 따로 식사해야 했으며, 고용도 전혀 보장되지 않은 임시직에 머물러야 했다. 그게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아직은 그 빛이 두루 비치지 않았지만 구름을 조금씩 걷어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백인 전용 거부, 클로뎃 콜빈과 로자 파크스
이보다 앞서 1955년 3월 2일,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당시 15세 소녀 클로뎃 콜빈Claudette Colvin(1939~)이 백인 남자에게 좌석을 양보하지 않았다고 수갑이 채워진 채 체포돼 버스에서 쫓겨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몽고메리시에서는 버스 앞 네 줄은 백인 전용으로 설정돼 있었으며, 흑인들은 주로 뒤쪽에 있는 유색인종 칸에 앉을 수 있었다. 버스 이용 인구의 약 75퍼센트는 흑인이었지만 백인이 탈 경우 양보해야 했다.
같은 해 12월 1일 같은 도시 몽고메리에서 백화점 업무를 마친 로자 파크스Rosa Louise McCauley Parks(1913~2005)는 유색인 칸 맨 앞자리에 앉았다. 중간에 백인들이 타자 버스 기사는 유색인 칸 표지를 옮기고 로자를 포함한 네 명의 흑인 승객에게 일어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다른 세 명의 흑인 승객과 달리 로자는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다고 거부했다. 기사는 경찰을 불러 그녀를 체포하도록 했고, 경찰은 그녀를 기소했지만 곧 석방됐다. 그녀는 다음날 버스 보이콧을 선언하는 선전물을 만들었다. 나흘 뒤 그녀는 질서를 어지럽힌 행동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유죄 선고를 받고 벌금 10달러와 법정 비용 4달러를 추징당했다. 로자 파크스는 항소해 인종차별의 법에 정식으로 도전했다.
몽고메리시의 흑인들은 버스 탑승을 거부했다.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Montgomery Bus Boycott'으로 그녀와 남편 모두 직장을 빼앗겼고, 결국 가족 모두가 고향을 떠나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로 이사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1957년부터 그녀는 전국을 돌며 연설하고 투쟁하면서 재봉사일을 계속했다.
<진격의 10년, 1960년대> 김경집, 동아시아, 2022, 7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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