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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제1, 2차 발칸전쟁이 발칸유럽의 민족들에게 남긴 역사적 유산 -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 발칸 : 역사적 함의와 진실> 김철민

by 길찾기91 2022.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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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차 발칸전쟁이 발칸유럽의 민족들에게 남긴 역사적 유산

 

1, 2차 발칸전쟁이 발칸유럽의 민족들에게 남긴 역사적 유산은 매우 컸다. 전쟁 이후 터키는 발칸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거의 대부분 상실하게 된 반면, 발칸지역의 민족들은 이 전쟁을 통해 터키 영향력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과 독자적인 민족 국가 수립이 가능케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발칸전쟁은 이 지역 각 민족들에게 잠재되어 있던 영토적, 문화적 민족주의 성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이것은 당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등 주변 열강의 개입과 맞물려 더욱 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게 된다. 발칸전쟁을 통해 영토와 민족 구성 그리고 문화와 역사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발칸 유럽 내 민족 갈등이 본격적으로 표면화되는 가운데,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19146월의 사라예보 총격사건을 계기로 마침내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1914628, 오스트리아 제국의 페르디난드(Franz Ferdinand, 1863-1914) 황태자 부처가 세르비아인들의 성령축일이자 1389년 코소보 전투기념일인 '비도브단(St. Vitus's Day/ Vidovdan)' 당일에 사라예보에서 열린 군 열병식에 참관하였다가 '젊은 보스니아(Young Bosnia/ Mlada Bosna)' 비밀 요원이었던 세르비아 청년 프린찌프(1894-1918)에게 저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발칸 유럽의 세력 확대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갈등 관계에 있어 왔던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의 관계를 급속히 냉각시켰으며, 이후 독일의 원조약속을 받아낸 오스트리아가 1914728일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하고, 러시아 및 서유럽 국가들의 참전함으로써 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은 연합국 측의 승리로 끝을 맺게 된다. 세계 대전의 불씨가 발칸 유럽에서 시작된 만큼, 대전의 결과가 동유럽은 물론 발칸 유럽의 민족들에게 남긴 의미 또한 매우 컸다. 비록 패전국에게만 적용되었지만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 질서 수립 과정 속에서, 미국의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 재직 1913-1921)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적용됨으로써 오랜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아왔던 동유럽 및 발칸 유럽의 민족들은 해체 및 연합이라는 다양한 과정을 거치며 자신들의 독립 국가를 수립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중부유럽과 발칸 유럽의 상당 지역을 오랜동안 지배하여 왔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패전과 영토 해체는 이들 지역의 민족들에게 커다란 변화를 불러오게 하였다.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던 슬로베니아인들은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던 크로아티아 그리고 19세기 말 근대 왕국 수립 이후 영토적 팽창을 거듭해 왔던 세르비아 민족과 함께, 최초의 남슬라브족 통합 국가를 수립하게 된다(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 오스트리아 지배 하의 체코인들 또한 헝가리 지배를 벗어난 슬로바키아인들과 함께 연합하여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을 수립하였으며, 폴란드는 120년간 이어진 삼국분할(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의 아픔을 극복하고 단일 국가를 수립하게 되었다. 1916년 연합국으로 돌아선 루마니아의 경우는 헝가리 하에 있던 트란실바니아 지역을 기존의 루마니아 공국과 합쳐 통일 루마니아를 수립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반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접해 있던 불가리아는 제 2차 발칸전쟁 때 상실한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구축군 편에 가담한 결과, 구축군의 패전과 수 차례 발생한 내부 쿠데타로 인하여 남부 도부르쟈 등 일부 지역을 상실해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 발칸 : 역사적 함의와 진실>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14, 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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