伯樂教其所憎者相千里之馬,教其所愛者相駑馬。
千里之馬時一,其利緩,駑馬日售,其利急。
此《周書》所謂「下言而上用者惑也。
백락(伯樂)은 그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천리마(千里馬)를 알아보는 방법을 가르쳤고, 그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평범한 말을 알아보는 방법을 가르쳤다. 천리마는 때가 되어야만 한 마리 나올까 말까 해서 이익을 챙기는 것이 아주 늦었고, 보통 말은 매일 나오기 때문에 팔아서 그 이익을 아주 빨리 챙길 수 있었다. 이것이 이른 바 周書(주서)에서 “아래 사람이 하는 말을 윗사람이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채용(받아들이면)하면 미혹(迷惑-혼란)의 도가니에 빠진다.”는 말이다.
백락은 싫어하는 사람에게 아주 귀한(?) 기술을 전수해 주어 일반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사람에게 일확천금(一攫千金)을 노리게 만들어 그의 인생을 파탄으로 몰고 갔고, 좋아하는 사람에겐 평범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으로 보답을 했다.
백락이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에게 한 일에 대해 한비자는 상서(尙書) 중 주서(周書)의 “下言而上用者 惑也(하언이 상용자 혹야-아래 사람이 하는 말을 윗사람이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채용(받아들이면)하면 미혹(迷惑-혼란)의 도가니에 빠진다)”라는 말로 결론을 맺는데, 이는 천리마를 고르는 방법을 배운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들어 일확천금을 노리다 패가망신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이다.
“下言而上用者 惑也(하언이 상용자 혹야)”라는 문장은 한비자가 백락의 고사에 써먹은 것과 별개로 나에게는 여러모로 읽히는 문장이다. ‘하언(下言)’이라 함은 어떤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가 아니라 밑바닥에서 마음대로 지어낸 소문이나 이야기, 다시 말해 어떻게 하든 자기들에게 불리한 현 정부를 흔들거나 클릭수 한 방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돈의 노예들인 요즘의 기레기 언론들의 논조나 비슷하다고 할까? ‘상용자(上用者)’는 일반 사람들이나 정책을 집행할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가공의 이야기를 선별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채용(採用)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惑也(혹야), 뒤죽박죽,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다행히 토인비 선생이 말한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처럼 가짜뉴스를 판별해 주는 민언련이나 알릴레오 등 유튜브 방송들 덕에 하언(下言)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잘 선별하는 상용자(上用者)가 되니 난 미혹(迷惑-혼란)에 빠지지 않고 미혹(未惑)의 상태를 잘 유지해 나갈 수 있다.
“道雖邇,不行不至;事雖小,不為不成”(길이 아무리 가까워도 가지 않으면 닿을 수 없고, 비록 일이 적어도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오늘의 혼란을 하루 빨리 극복하는 길은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심은 버리고, 기레기들의 선동에 놀아나지 않으며, 나 하나라도 투명한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마스크 사재기 않기. 손 자주 씻기. 사람과의 거리두기 등.
惑(혹):혹시
聲符(성부)가 或(혹시 혹)인 형성자(形聲字).
或(혹시 혹)은 囗(에워쌀 위)와 戈(창 과)로 이루어진 회의자(會意字).
囗(에워쌀 위)는 城郭(성곽)의 모습이다. 창을 가지고 성곽을 지킨다는 뜻이기 때문에 國(나라 국)의 초기 글자다.
그러므로 或(혹시 혹)은 원래 國(나라 국)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후에 或을 혹시, 혹은 같이 부사로 사용함에 그 처음의 의미를 표시하는 國(나라 국)의 글자가 만들어졌다. ‘或(혹)’字의 밖에 다시 外郭(외곽)인 囗(에워쌀 위)을 첨가한 글자다. 或(혹시 혹)이 한정(限定)의 뜻이 있으므로 거기서 의혹(疑惑)의 뜻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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