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프레임은 우리에게 어떻게 작동하는가
나는 '미세먼지=중국발 공식이 본격화된 날이 2013년 10월28일이라고 본다. 이날 연합뉴스TV는 국립환경과학원의 예보를 인용하며 중국발 미세먼지가 다음 날 한반도를 습격할것이라고 보도했다. 베이징이 도시 기능이 마비될 정도로 극심한 스모그로 뒤덮였고, 이 스모그가 북서풍을 타고 다음날 한반도로 밀려올 것이라는 보도였다. 이어서 10월 29일에는 거의 모든 언론이 중국발 미세먼지가 서해를 건너 우리나라로 넘어왔다며 ‘비상’, ‘공포’, ‘위험’, ‘치명’ 등의 자극적 단어를 총동원하며 기사를 쏟아냈다.
이에 호응하듯 국립환경과학원은 중국발 미세먼지가 밀려온다는 예보를 재차 발표하고, 언론은 “중국발 미세먼지가 시내를 뒤덮고 있다", "마스크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라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방송에 출연해 미세먼지가 건강에 치명적이라며 이런 분위기에 가담했다. 11월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언론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중국발 미세먼지 보도를 엄청나게 쏟아냈다.
하지만 언론은 그 같은 기사를 쏟아내기 전에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사실을 확인했어야 한다. 실제로 이 기간 미세먼지 오염도가 국립환경과학원 주장대로 급증했는가? 증가한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왔다는 국립환경과학원 주장의 근거는 무엇이며, 믿을 만한가?
국립환경과학원은 자신들의 모델링 결과를 근거로 내세웠다. 언론이 그 과학적 타당성을 검증하기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그대로 믿었다고 양해하더라도 최소한 그 기간에 국립환경과학원의 예보가 맞았는지를 확인함으로써 국립환경과학원의 주장을 검증하려는 태도는 취했어야 했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어마어마하게 몰려온 듯 소란을 피운 2013년 10월 29일의 서울시 미세먼지 오염도는 PM10 60g/m², PM2.5 37g/m² 수준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중국발 미세먼지가 넘어온다는 국립환경과학원 예보를 마치 사실처럼 보도하며 온 국민을 공포에 떨게 만든 11월 초까지의 오염도는 PM10 15~57g/m², PM2.5 8~35g/㎡으로 평범한 수준이었다. 지난해에 강화된 현재 기준으로도 대부분 ‘좋음’이나 ‘보통'에 해당하는 날들이었다.
이처럼 미세먼지 오염도가 평범한 수준이었던 기간에 왜 국립환경과학원과 환경부는 잘못된 예보를 남발하고, 언론은 입을 맞춰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것일까? 그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기반성적 기사나 학자들의 조사연구, 이도 저도 아니면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에 대한 감사원 감사나 검찰 수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때를 기점으로 ‘미세먼지=중국발'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이 급속도로 확산하며 세상을 지배했다. 미세먼지 오염을 줄이기 위한 연료 개선 정책, 오염 발생 규제 정책, 오염물질 저감 대책 등은 모두 대기오염 관리 대책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다. 급기야 국내 미세먼지를 줄어야 한다는 의견에 욕설을 퍼붓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덕분에 미세먼지를 관리하고 줄여야 하는 정부 관계자들은 그 책임에서 벗어났다. 미세먼지의 상당량이 중국에서 오기 때문에 국내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미세먼지 대책은 아예 제목부터 '중국발 미세먼지 대책'으로 바뀌었고, 환경부도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한 대책을 미세먼지 대책의 핵심과제로 제시했다.
'미세먼지=중국발'이라는 프레임이 굳어지니 기업이나 국민도 미세먼지를 저감하기 위한 실천이나 정부 정책에 협조할 일이 없어졌다. 최근 적발된 대기업들과 측정대행업체들이 미세먼지 배출량을 속이는 상상하기 힘든 부정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었던 데에도 '미세먼지는 모두 중국 탓'이라는 분위기가 한몫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미세먼지의 대부분이 중국발이라는 주장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 된 상황에서 언론과 시민이 미세먼지 피해에 대한 대책을 중국 측에 요구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한 정부의 주장이 애초에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있었던 게 아니다 보니 뒤늦게 이를 뒷받침할 연구가 시급해졌다. 대기 모델링을 연구하고 중국발 미세먼지의 영향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역대 최고의 호시절이 온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들은 '미세먼지=중국'이라는 공식을 지키는 선봉장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미세먼지 연구는 미세먼지 오염도를 줄이기 위한 연구여야 한다. 따라서 미세먼지 발생 원인을 찾고 효과적으로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가 돼야 하는데, 남 탓만 하다 보니까 연구가 죄다 모델링하고 추적하고 감시용 인공위성 쏘고 하는 식으로 되어버리고 만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불안감과 분노가 커지고 각자도생하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미세먼지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고 조장하는 전문가들의 언론 인터뷰가 끊이지 않으면서 사람들은 외출만 해도 큰일이 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 마스크 착용과 공기청정기 구입 같은 방법으로 살길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반응은 당연한 귀결이다. 정부와 전문가들의 마스크 착용 권고와 공기청정기 회사들의 판촉이 어우러져 관련 업종은 엄청난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이런 현상은 곧바로 다른 모든 상업 광고나 판촉에서 미세먼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이른바 미세먼지 공포 마케팅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공기 파는 사회에 반대한다> 장재연, 동아시아, 2019. 1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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