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연 3시간 40분 흡입설'을 만든 논문 오독과 뉴스 보도
“요즘 서울에서 딱 1시간만 돌아다니면서 미세먼지를 마시면 디젤차 매연을 3시간 40분 동안 흡입하는 것과 똑같다는 연구결과입니다." - JTBC 2014년 2월 27일 보도
JTBC ‘오늘의 숫자' 코너에 '3시간 40분'이란 숫자가 등장했다. 이틀 전인 2014년 2월 25일 서울의 미세먼지(PM10) 농도가 163kg/㎡이었는데, 이런 날 1시간만 외부에서 산책해도 60㎡(약 18평)의 밀폐된 공간에서 배기량 2000cc 디젤차 매연을 3시간 40분 동안 마시는 것과 같다는 보도였다.
강연할 때마다 물어본다. “밀폐된 공간에서 디젤차 매연을 3시간 40분 동안 마시면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청중은 “죽어요”라고 답한다. 맞다. 밀폐된 공간에서 중형 디젤차가 내뿜는 배기가스를 3시간 40분 동안 마시면 의학적 지식을 논할 필요조차 없이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산소부족이나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질식할 것이다. 이게 상식이다.
우리나라 미세먼지 오염이 아무리 심해도 1시간 산책했다고 사망할 수준이라는 주장이 사실일 리가 없다. 그런데 왜 이런 내용이 의심의 여지도 없는 사실처럼 방송됐을까? 보도 내용은 이탈리아 암센터의 연구 결과를 인용한 것이라 했다. 진짜 그런 내용인지 뜯어보자.
잘못된 뉴스의 탄생
인용된 연구는 2004년 <토바코 컨트롤Tobacco Control>이란 학술지에 실린 「담배와 디젤차 배기가스로부터의 입자상물질 비교:교육적 관점 Particulate matter from tobacco versus diesel car exhaust: an educationalperspective」이라는 논문이다. 'Brief Report'로 분류되어 있는데, 이는 비교적 간단한 실험을 할 때 쓰는 표현이다.
실험이 진행된 장소는 작은 환기구가 여섯 개 있는 60m² 용적의 개인 차고였다. JTBC 보도 내용과는 달리 밀폐된 공간이 아니고, 어느 정도 공기 순환이 되는 장소였다. 이탈리아는 개인 차고에도 공기 순환을 위해 환기구를 설치하도록 법으로 정해놓았다. 실험에 사용한 디젤차는 2002년형 2000cc 포드 몬데오였다. 이 자동차의 연료는 실험 목적에 맞춰 미세먼지 배출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품질 좋은 바이오 디젤(콩기름 등 식물성 기름을 주성분으로 하는 저공해 연료)을 썼다. 또한 미세먼지 농도를 짧은 시간 동안 연속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휴대용 간이 측정기를 사용했다.
실험 전 차고 안 미세먼지 농도는 PM10 기준으로 15μg/m㎥이었다. 30분간 엔진을 공회전시키면서 PM10의 변화를 살펴봤더니 오염도가 36μg/m²으로 2배 이상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PM2.5의 측정값은 28μg/m㎥이었다.
본격적인 실험으로 담배 연기로 인한 미세먼지 오염도를 확인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자마자 미세먼지 농도는 급증해서 최고 측정값이 PM10 기준으로 약 700μg/m²이나 됐다. 평균 오염도는 343μg/㎥이었고, PM2.5는 319μg/㎥이었다. 비록 바이오디젤을 사용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담배 연기가 디젤차 배기가스보다 미세먼지 오염도를 10배 가량 높인다는 것이 실험의 내용이다.
그렇다. 이 연구는 담배의 유해성을 청소년들에게 확인시켜주기 위해 설계된 실험이었다. 직접흡연은 말할 것도 없고 간접흡연으로도 실내 환경과 다른 사람들에게 매우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실험이었다.
JTBC는 인용 논문의 진짜 연구 목적, 실험에 사용한 자동차와 연료, 실험 장소 등을 모두 가린 채 보도했다. 미세먼지 농도도 간이 측정기를 사용한 결과여서 이 실험에서 담배 연기와 디젤차 배기가스로 인한 오염도의 상대적인 높낮이를 비교하는 제한적 용도로 사용해야지, 그 수치를 절대적인 값으로 착각하고 서울시 미세먼지 오염도를 측정한 결과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대단히 무모한 시도이다.
더구나 실험 결과 수치까지 바뀌면서 사실이 왜곡됐다. 이 실험에서 담배로 인한 미세먼지 오염도 343μg/m²은 2014년 2월 25일 서울시 미세먼지 오염도(163μg/m²)보다 2배 이상 높았다. 그런데 보도에서는 오히려 서울시 공기를 1시간 마시는 것이 담배 연기를 1시간 24분 간접 흡연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즉 서울시 공기가 1.4배 더 나쁜 것으로 결과를 뒤집어놓았다.
왜 이런 황당한 오류가 발생했을까? 실험 결과 해석이 원래 내용과 정반대로 뒤집어진 이유는 담배로 인한 오염 실험 결과 343μg/m²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3분의 1로 줄인 114μg/㎥으로 바꿔치기해 계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잘못을 했을까? 자동차는 30분 공회전시키고 담배는 3개비를 차례차례 피워서 30분 동안 연기를 발생시키고 오염도를 측정했는데, 담배를 한 번에 3개비 피운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3으로 나눴다는 것 말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런 황당한 실수와 논문의 원래 취지나 실험 내용에 대한 왜곡이 겹쳐져 서울시 미세먼지 오염이 담배 연기는 물론 디젤차 배기가스보다 훨씬 나쁘다는 가짜뉴스가 탄생했다.
<공기 파는 사회에 반대한다> 장재연, 동아시아, 2019,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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