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7세대 원칙
일본 야하바라는 도시의 한 회의실이다. 20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다. 도시의 수도 관로들이 오래되어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문제를 논의 중이었다. 도시 전체의 상수도 시스템을 교체하는 데에는 상당한 재정이 필요하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수도요금의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회의를 한창 진행하던 사람들은 노란색의 전통의상을 나눠 가졌다. 그러곤 회의를 하다 말고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었다. 그러다 다시 방금 전까지 논의하던 상수도 시스템 교체문제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이 옷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40~50년 후에는 야하바의 시민이 되어 그 도시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 옷을 입기 전에 그들은 현세대의 야하바 시민으로서 이 의제를 논의했지만, 옷을 갈아입은 후에는 자신이 40~50년 후의 야하바의 시민으로서 현재 수도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상수도 시스템 교체 의제를 논의하게 되는 것이다. 이 회의는 어떻게 결론이 났을까? 상수도 요금을 6퍼센트 인상하여 상수도 시스템을 교체하기로 했다. 당장 수도요금 인상이 되더라도 교체해야 하는 문제를 뒤로 미루지 않고 현세대가 부담을 안고 가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회의방식을 '7세대 원칙'이라고 한다.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 사회에서 흔히 사용됐다는 이 '7세대 원칙'은 개인이나 정부 혹은 기업이 의사결정을 할 때 그것이 7세대 후 미래의 후손들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서 결정을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미래는 우리가 이미 결정지어 버렸다. 최대 200년 가까이 대기 중에 머무는 이산화탄소는 우리가 당장 이산화탄소 배출을 중단한다고 하더라도 미래의 기후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세상은 여전히 지속가능성보다는 발전이라는 말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논의하는 모든 자리에서 야하바시 의회 회의처럼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동시에 논의를 해야만 제대로 된 지속가능한 발전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석탄 화력발전소를 언제 폐지할 것인지를 결정할 때, 원자력발전소를 유지할 것인지 폐지할 것인지를 논의할때, 화석연료 보조금 철폐나 재생에너지 촉진을 위한 지원 법안을 만들때, 청소년들의 위헌청구소송 판결을 검토할 때 야하바시 의회처럼 두세대가 함께 논의를 해야 한다. 학교에서 기후위기 대응 교육 과정과 내용, 방법을 고민할 때도 이 원칙을 중요하게 지켜야 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은 2050년의 시민들입니다. 채식 급식 2주 1회,1주 1회, 어떤 결정을 내리시겠습니까?”
아주 구체적인 위협,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기획, 동아시아, 2022, 17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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