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NCCK 성탄메시지
“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눅 2:35)
다시 성탄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과 소통 없는 교회만의 축제로 이 날을 보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세상의 시선이 두렵습니다. 더욱이 올해는 온 인류가 코로나로 고통을 당했고 그 고통은 끝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재난을 두고 국가 간에 탓만 하고 있으니, 아직도 탐욕의 성장에 매달린 우리 모두의 죄악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누굴 탓할 때가 아니라 병든 세상에 대한 공동의 참회와 절제를 위해 연대할 때입니다. 아기 예수의 성탄이 우리의 거듭난 성탄이 되어 이 어둔 세상을 비출 때 비로소 세상은 교회에게 희망의 눈길을 보낼 것입니다.
성탄의 캐롤 사이로 우리 이웃의 신음소리가 들려옵니다. 누구보다도 세월호 가족들의 슬픈 흐느낌입니다. 참사 후 일곱 번째 맞이하는 성탄절, 공소시효는 이제 넉 달밖에 남지 않았고 그 긴 시간 동안 어떤 진상규명도 어떤 책임자 처벌도 없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또 하나의 5.18이었고, 또 하나의 용산참사였습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피해자만 남고 가해자는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그렇게 한만 남긴 채 잊지 말자는 다짐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나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외침과 함께 산화한 청년노동자 전태일, 무려 5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외침은 플랫폼 노동자들을 통해 우리의 귓전에 울리고 있습니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에서 열 아홉 살 소년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4살 청년이 위험의 외주화 속에 방치되었고, 지금도 과로와 과중한 업무량에 짓눌린 택배노동자들의 숨 가쁜 호흡이 도로 위에 있습니다. 그 아픔과 고통과 희생에 같이 탄식하며 분노하며 눈물 흘리는 것 역시 잠시 그때 뿐이요, 어느덧 일상 속으로 흘러들어 잊혀지고 있습니다. 전태일 3법의 시급한 제정만이 그의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게 하는 참된 길일 것입니다.
2천 년 전 성탄의 시대도 지금처럼 암울했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려온 시므온은 그를 향한 십자가의 칼을 보았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 처형에 이르게 한,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경건이 위선임이 드러났고 권력자들의 정의가 불의임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2천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계속 진행 중에 있습니다. 성장주의, 황금만능주의에 자신을 내어준 한국교회는 결국 그 무게에 휘청거립니다. 성직자는 교회를 사유화하고 세습하며 주님의 보좌를 차지하기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특별히 오늘날 교회는 바울이 복음 안으로 받아들이려 했던 낯선 이방인들을 배척한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교 의식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반동성애, 반이슬람은 낯선 이방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반평화와 배타의 불신앙입니다. 교회는 유대지방과 이방지역을 넘나들며 선교하셨던 주님의 포용과 사랑의 발자취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차별금지법에 대한 교회의 태도는 과거와 미래, 차별과 포용, 혐오와 사랑의 갈림길에서 어느 쪽에 서 있는가를 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가장 심각한 현안은 검찰개혁입니다. 우리는 지금 검찰을 통해 정의가 아니라 불의가 드러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검찰은 더 이상 정의를 말할 자격조차 없습니다. 검찰은 그간 검찰이 자행해온 만행을 잘 알 것입니다. 무소불위의 검찰 조직의 폐해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뿌리깊은 이기적 조직주의로 불의의 정점을 찍었고, 기득권 수호를 작정하고 나섰습니다. 검찰은 지속적으로 특권층을 비호하여 왔고, 사회적 약자들을 내팽개쳐왔을 뿐 아니라 고통을 가해왔습니다. 이러한 검찰의 독립권 주장은 사실상 검찰권 남용의 합법화 주장입니다. 그들이 휘두른 칼이 그들의 불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명령입니다.
“여러분은 그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거절하고, 살인자를 놓아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죽였습니다.”(행3:14~15a) 힘의 메시아 ‘바라바’를 놓아달라(막 15:11)고 청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메시아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마 25:40)을 위한 고난 받은 종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처벌이 이루어지는 날이 성탄입니다. 플렛폼 노동자들에게 전태일법이 적용되는 날이 성탄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사유화, 세습화를 내려놓고 참회하는 날이 성탄입니다. 온갖 차별과 혐오를 넘어서 낯선 이방인들을 맞이하는 날이 성탄입니다. 검찰이 그 간의 권력 남용의 조직주의를 청산하고 심판의 대상이 되는 개혁의 날이 성탄입니다.
세례 요한의 목을 친 헤롯의 생일이 성탄일 수 없습니다. 적어도 모두가 나누어 먹고도 남은, 생명을 살리는 오병이어의 날이 성탄입니다. 진정한 성탄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입니다. 2020년 성탄절은 코로나를 비롯하여 이 사회의 모든 일그러진 모습들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거룩한 날, 성탄(聖誕)이기를 기도합니다.
2020년 성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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