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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죽고 나 죽자
인간의 공격성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혹시 포식자를 피하기 위한 반격에서 기원한 것은 아닐까?
아이러니하게도 포식자에 대한 반격은 포식 행위보다 더 공격적이다. 영양의 일종인 '누'는 사자가 천적이다. 하지만 무력하게 당하지만은 않는다. 강력한 힘과 빠른 속도로 대항한다. 하지만 반격에 성공한 누가 사자를 먹는 일은 없다. 방어를 위한 공격은 포식을 위한 공격보다 더 본질적인 공격성에 가깝다.
많은 동물 종이 포식자를 상대로 무리공격을 한다. 속된 말로 '다구리'다. 까마귀 떼는 고양이를 보면 집단 공격에 나서곤 하는데 이러한 행동이 주는 이득은 명백하다. 흩어지면 약하지만 뭉치면 강하다. 누 떼도 마치 물고기 떼처럼 한 무리가 되어 우르르 몰려다니는데 거대한 육식동물이라고 해도 좀처럼 공격하기 어렵다. 무리에서 이탈한 약한 녀석이나 슬금슬금 노릴 뿐이다.
무리 공격은 초식동물의 타고난 공격성을 강화하는 효과도 있다. 집단 학습이다. 어린 시절부터 적개심을 가져야 할 대상이 누군지 배우고 효과적인 공격 방법을 학습한다. 포식자는 배가 고플 때만 먹잇감을 사냥하지만 잡아 먹히는 입장에서는 포식자의 '내적 허기'를 판별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종종 '먹잇감'의 공격성은 아주 끈질기다. 사바나에서 사자를 만나도 운 좋게 배를 잔뜩 채운 사자라면 안심이다. 그러나 누 떼를 만나면 무조건 피해야 한다. 배가 고파 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위험하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약한 개체가 모여 선체적 집단 반격에 나서는 일이 흔하다. 선제적 반격이라는 말은 화용론적 모순 같지만 공격은 최선의 방어다. 미리미리 위험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상대를 멀리 쫓아내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약한 자들의 집단적 공격은 종종 아주 잔혹하다. 사실 포식자의 공격에는 '합리적 목적'이 있다. 목적을 달성하면 공격성은 급격히 감소한다. 그러나 선제적 반격의 목적은 잠재적 위협의 확실한 제거다.
반격은 무리공격으로만 나타날까? 단독 반격은 무리다. 도망치는 편이 유리하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다.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이다. 분노나 적개심이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가 촉발한다. 말 그대로 '미친 쥐처럼 달려든다. 상대는 한 끼 식량을 바라는 정도의 절박함이지만 반대쪽은 적합도 전부를 건 필사적 도박이다. 그래서 가끔은 이러한 '죽자 살자' 전략이 성공하기도 한다.
인간사회에도 이런 너 죽고 나 죽자 전략이 자주 활용된다. 더 이상 가까이 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은장도를 꺼내는 것이다. 손가락 길이의 은장도로는 상대를 제압하기 어렵다. 그래도 심각한 손해를 끼칠 수는 있다. 물론 상대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자해 공격이다. 살인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은 공격자라면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결사적 반격이 가끔 성공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진짜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리> 박한선, 바다출판사, 2023, 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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