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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년 만에 오보 수정한파이낸셜타임스
"여러분의 조국이 펀드를 원한다.”
2017년 8월 초, 영란은행Bank of England (우리나라의 한국은행) 블로그에 재미난 글이 하나 올라왔다. 제1차세계대전(1914~1918)당시 영국이 어떻게 자금을 조달했는지에 대한 글이다. 니얼 퍼거슨의 책을 읽을 필요까지 없이, 강대국들이 어째서 강대국들인지 아는 사람은 안다. 바로 '자금 조달 능력' 때문이다.
즉 채권 시장을 만들고 조성한 나라만이 열강에 올랐다는 의미일 테고, 영국은 그 선두 주자였다. 다만 채권은 그 발행자가 국가(정확히 말하면 그 나라의 정부)로 대체로 영구채다.(영국 정부의 영구채는 콘솔consol이라 부른다. 언제 원리금을 갚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럭저럭 이자나 갚고 원금 상환은 하지 않는 식이다. 그렇다면 세계대전이 발발했는데 어떻게 당시 GDP를 뛰어넘을 전쟁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까.
영국 정부는 10년 만기 전쟁채권을 발행하기로 한다. 이른바 워 본드war bond인데, 수익률이 2.5퍼센트대였던 여느 정부 채권과 달리 워 본드는 수익률이 4.1퍼센트대였다. 여기에 애국 마케팅을 좀 끼얹으면 되려나? 당연히 정부는 이 채권이 '완판'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정작 판매된 비중은 목표 액수의 3분의 1에 그쳤다. 잠재적인 투자자들의 10퍼센트 정도만 워 본드를 구매했기 때문으로, 영국 부자들이 이미지와 달리 특별한 애국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들은 자국 정부의 채권보다 본토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발행되는 채권에 더 관심이 있었다.
1914년 11월 23일 <파이낸셜타임스>가 이른바 '가짜 뉴스'를 대대적으로 내보낸다. 워 본드가 완판됐으며 지금도 투자자들이 나서고 있다고 말이다. 특히 당시 적성국인 독일에 영국 정부의 자금 조달이 실패했음이 알려지면 큰일 날 일이었다.
그렇다면 부족분은 어떻게 메웠을까? 워 본드의 부족분 구매에는 영란은행이 직접 나선다. 이 사태의 실상은 영란은행 최고 임원 3명만 아는 비밀 중의 비밀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파이낸셜타임스>에 나온 완판 기사를 믿었다. 영란은행의 조폐국장과 부국장 이름으로 '개인 투자자'처럼 부족분을 구매한 다음, 영란은행의 장부에 '기타 채권 매입'으로 기입한 것이다.
당시 영국 정부는 자유방임주의를 중단하고 정부 개입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부동산 임대료를 동결시키고, 투자자들이 구매한 해외 채권까지 '징발'했다. 게다가 전쟁이 한창이던 1915년에는 국채 말고 다른 채권은 아예 발행과 매입을 금지했다. 물론 당근도 없지 않았다. 워 본드 수익률이 5퍼센트까지 상승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1920년대 영국 재정의 40퍼센트는 빚 갚는 데 쓰였지만.
경제학자로 유명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당시 영국 재무성 관료로 일하고 있었다. 케인스는 채권 판매를 잘 숨겼다면서, 1915년 존 브래드버리 재무부 장관에게 '기밀'을 붙인 메모를 하나 보낸다. 다만 영란은행의 개입을 지속시켜서는 안 되며, 자금원을 다른 곳에서도 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영란은행 블로그는 이 사건 덕분에 여태껏 사인(민영)이었던 영란은행이 진정한 중앙은행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영란은행이 정부 채권을 대량으로 사들였기에 중앙은행으로서 영란은행의 기능을 의회가 통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모아졌고 그 결과 종전 이후 영란은행에 대한 의회의 심사가 생겼기 때문이다.
영란은행 블로그를 본 <파이낸셜타임스>는 다급히 103년 만에 오보 수정 기사를 내보냈다. 1914년 11월 23일 내용에 대한103 년 만의 오보 알림이었다.
<남의 나라 흑역사> 위민복, 글항아리, 2021, 15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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