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들은 어째서 뾰족한 모자를 썼을까 : 중세의 주모와 마녀
마녀의 모습을 보면 대개 특징이 있다. 길고 뾰족한 모자와 빗자루 그리고 검은 고양이다. 물론 뭔가를 열심히 끓이는 커다란 냄비도 있어야겠는데, 도대체 어째서 이런 스테레오타입이 생겼을까? 그 해답은 주모alewife 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단어에서 보듯이 에일 + 와이프다. 즉 에일을 만드는 부인들이라는 의미인데, 이 그림을 보시면 알 수 있다. 사진은 루이즈 어머니Mother Louise 혹은 루이즈라 불린 당시 유명한 주모로 17세기경의 그림이다. 뾰족 모자를 쓴 당시 유명했던 주모의 모습인데, 그렇다면 마녀는 왜 주모의 모습을 했을까?
맥주 양조는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됐다.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 《람세스》시리즈를 봐도 알 수 있는데, 실제 맥주는 이집트보다 더 오래전,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된다. 수메르의 여신 중 맥주의 여신 닌카시Ninkasi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고대 이집트에서도 역시 맥주의 여신인 테네넷Tenenet으로 연결된다. 남신이 아니고 여신임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발굴된 이집트 상형문자 판에서도 맥주를 따라 마시는 여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는 중근동 지방만이 아니라 북유럽도 마찬가지다. 발트와 슬라브족 신화에도 라우구티에네 Raugutiene라는 맥주의 여신이 있다고 한다. 핀란드에서는 칼레바타르Kalevatar라는 여인이 곰의 침과 꿀을 섞어서 맥주를 양조했다는 전설이 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현대사회를 빼면 대체로 집안일은 여자들이 담당했으니, 여자들이 술을 제조한 것이 자연스럽다. 게다가 도시의 물은 별로 위생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맥주를 제조해서 마시는 일은 생활의 필수적 요청에 따라 생겨난 것이었다. 이는 수도원의 맥주 제조로 이어진다. 유럽 대륙 국가들에서도 여자들이 주로 맥주를 만들기는 했는데, 맥주 길드가 생기면서 점차 여자들은 뒤로 빠지고, 마녀 열풍으로 더더욱 그렇게 된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대륙의 경우 흑사병이 퍼지면서 위생 문제 때문에 맥주 수요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맥주 생산 및 판매의 대형화로 이어지고 이는 길드의 탄생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즉 바깥일을 하는 남자들이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의 경우, 1500년 이전까지는 가정 내 거의 모든 여자가 맥주 양조법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에일을 만드는 부인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이다. 이때 점차 노하우를 쌓고 이웃과 같이 만들고 하면서 잉여 맥주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걸 팔아보자!
바로 주막의 탄생이다. 주모들은 '마케팅'을 위해서 뾰족한 모자를 썼다. 대체로 여자들이 남자보다 키가 작으니 거리나 술집에서 누구에게 주문해야 할지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주막임을 표시하기 위해 이들은 문 앞에다가 맥주 만들 때 휘젓는 빗자루 비슷한 막대기를 걸어놓았다.
당연히 고양이는 필수다. 귀중한 곡물을 쥐에게 뺏기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교회는 주모를 악마화시켰다. 일단 교회부터 이들을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주막에서 술만 파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맥주에 물을 많이 섞는다든지, 양을 속인다든지 하는 비난도 쇄도한다. 더군다나 순진한 남자들을 음주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부류가 주모들이었다. 이들을 이미지로 한 마녀 재판이 이어지는 것도 자연스럽다. 게다가 흑사병 이후로 영국에서도 위생 문제 때문에 에일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산업화가 이뤄진다. 주막은 물론이거니와 산업혁명 이후 맥주 회사를 세운 사람들은 대체로 '아재'들이었다. 이때부터 맥주 산업의 남성화가 시작됐고, 당연히 현대의 하이네켄 광고는 남자를 위주로 편성됐다. 사실 오늘날엔 맥주 하면 아무래도 남자들을 떠올리는데 이렇게 된 건 대략 150년 정도뿐이다. 이전의 맥주는 주로 여자들 세상이었다. 여자들이 술 잘 마시는 것도 다 이런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
<남의 나라 흑역사> 위민복, 글항아리, 2021, 170-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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