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과 틀니
“여자들은 댈꾸(자꾸) 뭘 잊아 묵는댜?”
“왜요?”
“아니, 왜 앵경(안경)은 쓰구서 온천에 들어가 들어가길?”
“안보이니까 그랬겠죠.”
빨개벗구 탕에 들어가는디 뭐 보구 말구 할 게 있간디?“...
“아버지는 안경을 안 쓰시니까 잘 몰라서 그러는거죠. 안경쓰는 사람들 다 쓰고 들어가요.”
“아니, 그라믄 쓰구 갔으믄 쓰구 나오야지! 안 그려?”
“안경을 잃어버리셨나 봐요?“
“기맥혀 진짜루! 아니 다 빨개벗구 딸랑 앵경 하나 입은 거 아냐? 근디 그거 하나 못 챙기구 벗어 놓구 온다는 게 말이나 되는겨?”
“젊은 사람들도 자주 잃어버려요, 안경.“
“나두 죄다 입구 있을 적에는 그럴 수 있다고 봐! 근디 빨개벗구 그거 하난디 그걸 놓구 오냔 말여?”
할머니들 흉이 과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여자들, 작년에는 배 타구 놀러 갔다가 속 미식거린다구 갑판 위에서 뒹굴더라구.“
“젊은 사람들은 안 그런가요 뭐.”
“거그까진 나두 이해가 가는디, 비닐 봉다리(봉지)에 게우다가 틀니까지 빠져 갖구....
“틀니가요?”
“그려! 월매나 씨게 게웠으면 틀니가 다 빠져!”
“어우......”
“그런디 틀니가 빠졌으믄 허전해야 정상 아녀? 그런디 그걸 그냥 봉다리째 버리믄 워쩌자는 겨, 잉?”
“아이고 그런 일이......”
“정신이 나가두 보통 나가야지. 지 이빨 빠지는 것두 모르믄서 춤은 또 어지간히들 흔들어 대두만!”
속으로 흐느끼며 웃었다. 틀니가 빠진 줄도 모르고 신 나게, 그야말로 흔들면 ‘톡’처지기 일보 직전까지 흥겨웠을 모습이라니.
“맨날 댕기믄 일만 터지구...... 인자는(이제는) 그만 댕기야 쓰겄어! 넘세(남세)스러워서!!”
이백 프로 확신하건데 장인어른은 다음에도 반드시 관광버스에 탑승하고 무사히 귀환할 것이다.
‘넘세스러운’ 맛이야말로 여행의 참맛이 아니던가.
-남덕현, <충청도의 힘> 양철북, 2013,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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