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질은 건강에 좋다!
면역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구역질은 질병을 막아주는 경고 시스템이다. 그래서 구역질은 가장 원초적인 청결 안내자이자 청결 도우미다.
그렇다면 역겨움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어째서 모든 문화의 사람들이 혐오감을 주는 뭔가를 떠올리기만 해도 똑같은 표정으로 코를 찡그릴까? 영국의 위생학자 발레리 커티스 Valerie Curtis는 다양한 나라를 대상으로 이 문제를 연구했고, 구역질을 일으키는 물체에 대한 이미지가 아주 비슷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축축하고, 끈적거리고, 악취가 나는 물건, 토사물과 대소변처럼 몸에서 배출된 배설물과 관련된 물체, 벌레와 쥐, 병자와 시체들이 있는 환경, 이 모든 것이 “최대한 빨리 여기서 도망쳐!” 혹은 “어서 치워버려!”라는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구역질은 대단히 중요하다. 구역질 대부분은 위협에 대처하는 영리한 행동 방식이며, 이 사실은 수천 년 뒤 미생물학자들이 증명하였다. 인간은 본능적인 역겨움 덕분에, 병균이 잠복해 있는 물건을 만지지 않으며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먼저 끔찍한 악취가 조심하라고 알려준다. 연구에 따르면, 가장 격렬하게 역겨움을 유발하는 똥에는 감염성 질환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20종 넘게 들어 있다. 살모넬라를 비롯하여, A형과 E형 간염, 여러 기생충, 콜레라, 파상풍을 일으키는 균들이 들어 있다. 동물들도 자신을 병들게 할 수 있는 사물과 상황을 피하지만, 일종의 심사 기관으로서 구역질을 발달시킨 종은 인간뿐이다. 이 심사 기관은 처음에는 전의식preconscious(비교적 쉽게 의식이나 기억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현재는 억압된 잠재의식: 옮긴이)으로 나타나지만, 장기적으로는 의식적인 행동이 된다. 전의식은 아직 의식이 깨어나지 않았지만 빨리 의식을 깨워야 한다는 것을 아는 상태를 뜻한다. 내적 경고 신호가 울리면 몸이 반응한다. 몸이 가려우면 긁어서 오물을 제거하고, 악취가 나면 다른 곳으로 피한 뒤에 파리가 들끓는 죽은 동물을 멀리 떨어져서 바라본다.
길게 놓고 봤을 때 역겨움은 바디 케어 욕구와 역겨움을 유발하는 모든 사물을 말끔하게 없애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고대 의사들은 이런 지식을 주의 사항에 담아 사람들에게 전했다. 고대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0)는 위험한 연기가 나는 장소와 물을 멀리하라고 권했다. 그는 이런 연기를 '미아즈마Miasma'라고 불렀다. 기원전 1200년에서 600년 사이에 생겨난 인도의 《베다》 경전에서도 불결한 열두 가지를 피하라고 조언했다. 정액, 혈액, 소변, 대변뿐 아니라 귀지와 눈물도 여기에 포함시켰다.
청결 추구의 근원에는 역겨움이 숨어 있다. 청결 교육은 정신문화 수준을 높여주었다. 인간이 삶의 의미에 대해 파고든 이후, 청결 규율과 정결 의식은 종교와 문화의 주요 구성요소가 되었다. 내적 순결과 죄의 회개에 대한 영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신체에 대한 실질적인 지침이 되었다.
우리는 얼마나 깨끗한가, 한네 튀겔, 반니, 2020. 1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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