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로값
우리가 75억 개의 구슬이라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감염가능자이고 안정적인 상태이다. 갑자기 감염된 구슬 하나가 전속력으로 우리를 향해 굴러온다. 감염된 구슬은 첫 환자이고, 멈추기 전 적당한 시점에 다른 두 구슬과 부딪힌다. 두 구슬은 튕겨 나가 다른 두 개와 거듭 부딪친다. 이후 또 부딪치고, 또, 또….….
이렇게 전염은 연쇄 반응처럼 시작된다. 첫 단계부터 수학자들이 '기하급수적'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증가한다. 감염자가 많을수록 전파력은 더 빨라진다. 얼마나 빠른지는 모든 전염병이 숨기고 있는 숫자에 달렸다. 그 수치는 'RO'*라는 기호로 표시되고, '알제로'라고 읽는다. 질병은 그만의 RO값이 있다. 구슬의 예시에서 RO값은 정확히 2였다. 모든 감염자는 평균 두 명의 추가 감염자를 만들어낸다. 코로나 19의 RO값은 약 2.5이다.
그 수치가 높은지 낮은지는 말하기 어렵다. 큰 의미가 있지도 않다. 홍역의 RO값은 약 15였다. 한편 지난 세기에 유행한 스페인 독감의 RO값은 약 2.1 가량이었지만 건 세계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RO값이 1 미만으로 줄어들어 모든 감염자가 한 사람을 채 감염시키지 않아야 상황이 나아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확산이 저절로 멈추고, 질병은 종식된다. 그와 반대로 만약 RO값이 조금이라도 1을 넘는다면 유행병은 계속된다.
좋은 소식은 RO값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순전히 우리 손에 달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감염 가능성을 낮춘다면, 바이러스가 이 사람에서 저사람으로 옮겨가지 못하게 행동한다면, RO값은 내려가고 전염 속도는 줄어들 것이다. 우리가 영화관이나 밀집된 장소에 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필요한 기간만이라도 단호하게 사회적 거리를 둔다면 마침내 RO값은 임계점 아래로 내려가 전염병의 기세는 수그러들 것이다. RO값을 낮추는 것은 우리가 코로나19에 저항한다는 수학적 의미다.
* '기초감염재생산수'라고도 말한다. 한 명의 감염자가 몇 사람을 전염시킬 수있는지를 수치화한 것이다.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파올로 조르다노, 은행나무, 202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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