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노인들이 열사병으로 죽어간다
정상적인 여건에서라면 인체는 이상고온을 잘 처리할 수 있다. 피부 속 모세혈관에 피가 많이 공급되면서 정상 이상의 열을 대기 중으로 발산하게 하는 것이다. 땀샘은 땀의 형태로 수분을 증발시키는데, 이때 열도 배출한다. 심장운동을 통해서도 열은 빠져나간다. 운동을 하면 정상 체온인 37℃에서 38~39℃까지 별 무리 없이 체온을 올릴 수 있다.
그런데 2003년 유럽에 닥친 여름 더위는 상식 밖의 수준이었다. 6월에서 8월까지 3개월 동안 엄청난 열파가 유럽을 강타했고, 그로 인해 유럽의 기후는 정상적인 범위를 완전히 벗어났다. 스위스에서는 6월 4일 이미 온도계의 수은주가 30℃까지 올라갔으며, 8월 2일에는 남동부 기온이 41.1℃를 기록했다. 이는 아라비아 사막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고온이었다. 대륙 곳곳에서 기존 기록을 경신했다. 영국의 경우 최초로 38℃를 기록했다. 해변에는 여름 햇볕을 즐기려는 휴가 인파로 붐볐지만, 파리와 같은 도시에서는 재앙이 시작되고 있었다.
고온 스트레스의 첫 증상은 하찮아 보일 수 있다. 약한 어지럼증과 구토 그리고 짜증이 생긴다. 그 정도면 응급 상황이라고 하기 어렵다. 초기 열사병은 시원한 곳에서 한 시간 정도 쉬면서 물을 마시면 낫는다. 하지만 2003년 8월의 파리에는 시원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특히 환기가 안 되는 좁은 아파트에 갇혀 사는 노인에게는 더욱 그랬다. 낮 기온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러나 밤에도 열이 충분히 식지 않아 체온이 회복될 여유가 없었다. 그런 날이 이어지자 증상이 누적되어 갔고, 결국 가장 위험한 단계의 고온 스트레스인 이상고열과 열사병이 발생했다.
인간의 체온은 41℃를 넘으면 체온조절 시스템이 붕괴되기 시작한다. 그러면 땀 분비가 멈추고 호흡이 약해지면서 가빠진다. 맥박이 빨라지면서 환자는 금세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이때 신체 중심부의 체온을 떨어뜨리기 위해 완벽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뇌의 산소 공급량이 부족해져 핵심적인 신체기관의 기능이 마비된다. 이런 환자는 중환자실로 당장 옮기지 않으면 불과 몇 분 만에 목숨을 잃고 만다.
2003년 파리에서는 응급 서비스가 원활하게 제공되지 않은 탓에 1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열사병에 희생되었다. 주로 노인과 소외계층의 사람들이 쓰러졌고, 이들의 시신 수백 구는 마땅한 시체안치소를 찾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시민의 목숨을 구하기보다는 8월 장기 휴가를 즐기는데 정신이 팔렸던 정치인과 공무원 들이 있었고, 그들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시민들의 격렬한 반발로 이어졌다. 당시 유럽 전역의 사망자 수는 2만 2,000명에서 3만 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여름의 열파와 가뭄은 농업에도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다. 작황의 손실액은 120억 달러에 달했고, 포르투갈에서는 산불이 나서 15억 달러 정도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탈리아의 포 강, 독일의 라인 강, 프랑스의 루아르 강 같은 큰 강들의 수심도 기록적으로 낮아져 화물선 운항이 중단되었고, 관개와 수력발전용 수량도 부족해졌다. 물이 너무 줄어들자강과 호수에서는 유독한 조류가 번성하는 녹조현상이 나타났다. 알프스 산악의 빙하도 상당 부분 녹았는데, 그 정도가 1998년 기록의 두 배나 되었다. 또 해빙률이 10퍼센트가 넘는 빙하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마터호른 같은 산악지대에서는 심각한 낙석 현상이 나타났다.
이 폭염의 원인으로 온난화를 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상학자들은 2003년의 열파가 수천 년 만에 찾아온, 통계 범위를 벗어나는 수준이었음을 밝혀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기상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20세기 온난화로 그런 열파가 발생할 위험이 이미 두 배나 높아졌다고 한다. 2007년의 연구에서도 지난 한 세기 동안 유럽 전역에서 이상고온의 발생 빈도가 세 배나 증가했으며, 열파가 지속되는 기간도 두 배가 길어졌다고 말한다. 결론은 분명했다. 2003년의 여름 폭염은 자연재해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해 여름 대륙 전체의 평균 기온은 평소보다 2.3℃ 높았다. 그렇다면 지구 기온이 2℃ 상승했을 때 세계는 2003년과 같은 재난을 연례행사처럼 맞게 될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한 영국의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기상청의 해들리 센터 기후 모델을 이용하여 온실가스 배출량의 변화에 따른 미래의 기후변화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모델 상으로 평균 기온이 2℃ 이상 상승하지 않았을 때인 2040년에도 여름의 절반 이상이 2003년 여름보다 더 더워질 것이라고 예측되었다.
이는 2040년의 여름 더위에 수십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노인들은 몇 달씩 에어컨이 있는 거처로 대피해야 할 것이며, 하루 중 제일 더운 시간에는 바깥 활동을 일체 하지 못할 것이다. 대륙 전역에서 강과 호수가 마르고 식물들이 시들면서 기온은 지금 북아프리카에서나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치솟을 수 있다. 여름비가 필요한 작물들은 들에서 죽어가기 시작하고, 보다 서늘한 기후에 사는 식물군들도 불탈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03년 여름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럽 전역을 모니터링한 결과, 높은 기온과 심한 가뭄의 이중 스트레스 때문에 광합성 작용이 약화되면서 대륙 전역의 식물 성장 속도가 30퍼센트나 떨어졌다고 한다. 북유럽의 너도밤나무 숲에서 지중해 연안의 소나무와 참나무 숲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의 식물 성장은 더뎌지거나 중단되었다. 스트레스를 받은 식물들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신, 그것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유럽의 식물들이 추가로 약 5억 톤의 탄소를 내뿜기 시작했는데, 이는 지구의 화석연료 전체 배출량의 12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 중요한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현상'이다. 기온이 올라감으로써 — 특히 폭염으로 인한 재난 발생 시에 — 숲과 토양의 탄소 배출량도 늘어나 온난화를 더욱 부추기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유럽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장기간 지속될 경우 지구온난화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처한다.
어쩌면 우리는 1998~2002년 북반구 중위도권의 가뭄 때 이미 그 지점에 도달했는지 모른다. 그 기간 동안 미국 서부와 남유럽, 동아시아 곳곳에서 많은 식물들이 가뭄에 시들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원래는 식물에 흡수되어야 할 탄소 배출물이 대기에 축적되었기 때문에 갈수록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증할 것이라고 한다(이 증가량은 급격한 양의 되먹임이 이미 시작되었는지를 지켜봐왔던 기후변화 연구자들을 몹시 불안하게 한다). 가뭄과 더위 때문에 식물과 토양에서 추가로 배출된 탄소가 10억 톤이 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현재, 2003년의 열파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있다. 이후 연이은 두 번의 여름에는 '정상적인' 기후가 나타나면서 이전에 배출된 과다한 탄소량도 어느 정도는 흡수되었다. 그러나 그런 망각의 대가는 매우 클 것이다. 2003년 여름은 아주 신중히 따져봐야 할 '자연의 실험'이었다. 그것은 단지 기후 모델에 따른 시뮬레이션이 아니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더욱이 2006년에는 2003년과 거의 비슷한 형태의 여름이 찾아왔다. 그러니 오히려 미래에 닥칠 열파의 빈도와 강도에 대해 기후 모델들이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경고를 받은 것이다!
6도의 멸종, 마크 라이너스, 세종서적, 2014. 9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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