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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병에 이르는 과정
무더운 날에 열사병에 이르는 과정은 대체로 이렇다. 우선 무더운 날에는 우리가 집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해가 내뿜는 열기와 활발해진 신진대사가 내는 열로 인해 우리의 피가 점점 더 따뜻해진다. 그러면 이제 체온을 36.5℃로 유지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뇌 시상하부에 자리한 수용체들이 발화를 시작해 순환계의 열이 좀 날아갈 수 있도록 피부 쪽으로 더 많은 피를 보내라고 명령을 내린다. 땀샘은 분비선 아래쪽 자그만 저장소에서 짠 체액을 피부 표면으로 뿜어낸다. 이제 몸에선 땀이 흐른다. 그리고 이 땀이 증발하면서 열도 함께 날아간다.
하지만 우리 몸이 땀을 통해 날려 보낼 수 있는 열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 땀을 낼 때 혈관은 확장해 과열된 피를 최대한 많이 우리 몸의 표면으로 보내려고 한다. 그런데 더위를 식힐 만한 데를 찾지 못할 경우 몸속 온도가 빠른 속도로 올라간다. 이와 함께 우리 몸이 근육을 더 많이 쓰면 쓸수록 체온이 올라가는 속도도 더 빨라진다. 그러면 심장은 정신없이 펌프질해서 최대한 많은 피를 피부 쪽으로 밀어내려 하지만 그 양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한다. 우리 몸의 심부에 있어야 할 피가 다른 데로 몰리면서 간, 신장, 두뇌에는 피와 산소가 턱없이 모자라게 된다. 그러면 머리가 멍해진다. 시야도 흐려지고 좁아진다. 체온이 38.3℃, 38.8℃, 39.4℃로 점차 오르면 세상이 핑 도는 느낌이 든다. 두뇌의 혈압도 떨어져 졸도할 가능성이 커진다. 사실 이는 우리 몸의 불수의적 생존 기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라도 몸을 수평으로 눕히면 얼마간이라도 피가 머리 쪽으로 가기 때문이다.
만일 이 단계까지 왔을 때 우리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재빨리 몸을 찬물에 푹 담글 수 있다면 별다른 영구 손상 없이 회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햇빛이 쨍하게 내리쬐는 맨땅에 고꾸라져 그대로 거기 누워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건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 고꾸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지면 온도는 기온보다 20~30℃ 높을 수 있다. 우리의 심장은 어떻게든 피를 돌려서 몸의 열을 식히려 필사적으로 애쓸 것이다. 하지만 심장이 빨리 뛰면 뛸수록 신진대사도 더 빨라지고, 그러면 더 많은 열이 발생해 심장은 훨씬 더 빠르게 뛴다. 치명적인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점점 체온이 올라가면, 우리 몸의 에어컨은 더는 켜지지 못하고 아궁이의 불길만 더욱 거세진다. 심장이 약한 사람이라면, 바로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
체온이 40.5~41.1℃에 달하면, 발작이 일어나 팔다리가 사정없이 떨린다. 체온이 41.6℃를 넘으면, 말 그대로 우리 몸의 세포 자체가 망가지거나 "제 모습을 잃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세포막(세포의 내부 활동을 보호해주는 얇은 지방질 벽)이 말 그대로 녹아내리는 것이다. 우리 세포 안에는 생존에 꼭 필요한 단백질들(음식이나 햇빛에서 에너지를 뽑아내고, 침략자들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노폐물을 처리하는 등의 일을 한다)이 있고, 이 단백질들은 아름다울 만큼 정교한 형태를 띤 경우가 많다. 이들 단백질은 처음엔 기다란 실로 시작해 나중에는 나선형, 머리핀 모양 등 복잡한 배열로 꼬이는데, 이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성분의 순서에 좌우된다. 그리고 이들 모양에 따라 다양한 단백질의 기능이 정의된다. 그런데 열이 올라갈수록 단백질의 꼬임이 풀어지는 동시에 일정한 구조를 유지해주는 매듭도 끊어진다. 처음엔 약한 것들만 끓어지지만 나중에 체온이 더 올라가면 강한 것마저도 끊어진다. 그러다 결국에는 우리 몸 자체가 허물어진다.
이 지경에 이르면, 제 아무리 강하고 건강한 사람도 생존 확률이 미미해진다. 혈액 속의 노폐물과 불순물을 거르는 신장의 미세한 관들도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근육조직들도 무너져내린다. 장에는 구멍이 뚫리고 소화관에서 생성되는 위험한 독소들이 혈액 안으로 흘러든다. 이런 식으로 몸이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와중에도 우리 몸의 순환계는 혈액 응고에 반응해 신체 중요 기관들로 가는 혈액의 흐름을 차단한다. 이렇게 되면 이른바 응고 연쇄 반응이 일어나 혈액 안에서 응고 단백질들이 전부 소진된다. 그러면 역설적이게도 다른 데서도 걷잡을 수 없이 피가 흘러나온다. 한마디로 몸의 내부가 녹아내리며 해체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온몸 구석구석에서 출혈이 일어난다.
<폭염 살인> 제프 구델, 웅진지식하우스, 2024, 7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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