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조약
‘한일회담이 지향하는 바는 원래 식민지 지배의 청산과 새로운 국가간 관계수립에 있었다’. 한일조약 타결을 통해 한국이 얻고자 한 것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청산과 독립국 대 독립국으로서 국교수립을 하자는 것이었는데, 일본은 기본적인 입장이 달랐다. 1951년 미국의 주선에 의해 시작되어 14년간 진행된 회담은 과거청산이라는 본질적이고 역사적인 임무를 다하지 않은 채 돈 문제로 변질되고 봉합되어버렸다. 이미 알다시피 한일기본조약 제2조에 식민지 지배청산에 관한 조항을 마련했지만, 일본은 식민지 지배의 불법, 부당성에 끝까지 동의하지 않고, already라는 말을 넣어 한일 양국이 각자의 편의대로 해석하기로 함으로서 역사적 식민지청산은 물 건너간 것이다.
1949년에 한국외무부에서 작성된 “대일배상요구조서” 서문, ‘대일배상요구의 근거와 요강’에서는 ‘1910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의 일본의 한국지배는 한국국민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일본의 일방적인 강제행위이며, 정의, 공평, 호혜의 원칙이 배제된 폭력과 탐욕의 지배’였다고 원칙적이고 정당한 지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이 교전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상 대상에서 배제했으며, 요시다 시게루 일본총리는 한국정부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회의에 참여하는 것을 완강히 반대했다.
일본정부가 ‘한국병합조약 유효론’을 주장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국의 구 식민지가 ‘이번 전쟁과 관계없이 제국이 정당하게 취득했고, 게다가 제국의 주권행사에 대해 종래 다툼이 없었던 영토’이며, ‘일한병합조약, 한국병합선언에 대해서 오늘까지 미, 영, 소의 어느 나라로부터도 이의 제기된 바가 없다’, 즉 ‘국제법, 국제관례상 보통으로 인정된 방식’에 의해 ‘정당하게 취득’되었다는 인식이다. 둘째, 일본은 조선식민지 지배에 있어서 ‘국가로부터 다액의 보조금이나 민간 자금을 주입하여 “적자”였으며, 조선인의 소득 및 생활수준은 향상되었다’는 인식이었다.
원래 식민지 지배를 청산하여, 독립된 주권국가 대 주권국가로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려는 한일회담의 역사적인 사명은 애당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과제였다. 일본은 식민지 지배의 불법, 부당성을 시종일관 인정하지 않았으며,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경제개발을 서둘렀던 한국정부는 대일청구권을 포기하고, 일본의 “독립축하금”이라는 경제협력자금을 받아들였으며, 명분과 논리, 정의를 모두 포기해버렸으며, 게다가 미국이 자국의 이익의 관점에서 처음부터 한일관계를 강제 중재하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한일조약은 역사청산이라는 과제에 대해서 제대로 응답할 수도 없고 응당하지도 않았고, 전혀 그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일간의 식민지 지배에 관한 역사적인 청산 문제는 여전히 미제 상태이며, 1990년대 이래 전후보상 요구가 쏟아져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동아시아의 우흐가지> 서승, 진인진. 2016. 8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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