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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농민반란이 일어나는 이유

by 길찾기91 2020.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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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1잉글랜드 농민반란을 살펴보자. 앞에서 지적했듯이 페스트 때문에 유럽의 국가와 교회가 모두 약화됐다. 하지만 별로 유쾌하지 못한 옛 잉글랜드에서는 1351년에 실질임금 상승을 억제하고 구질서를 뒷받침하는 법률이 통과됐다. <노동자법률>이라 불린 이 법률은 보통사람들이 페스트 발발 이전과 같은 임금으로 일할 것을 요구했고, 지주들이 화폐 대신 노동의 형태로 소작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물가가 상승하면서 많은 이가 소득 정체와 생계비 급상승의 이중고에 시달렸다. 한 세대 동안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영주와 농노, 부자와 빈자 사이에 소규모이지만 의미심장하고 다양한 난투극이 벌어졌다.

 

1377년에 잉글랜드의 프랑스 내 군사 활동(백년전쟁) 비용을 대려고 정부가 인두세를 도입했다. 모든 성인 남성이 수확물이 아닌 현금으로 납부할 수 있게 한 이 새로운 조세는 많은 보통사람에게 그야말로 고난으로 다가왔다. 1년도 안 돼 세금 징수관을 피해 숨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세수는 오히려 감소했다. 1381년 봄에 세입 감소를 우려한 어전회의는 세금 전액을 거둬들일 책임을 지닌 징수관을 파견해 한 차례 더 징세를 시도하라는 어명을 내렸다.

 

민중들, 그 중에서도 이전에 이미 납부한 이들은 증오의 대상이 된 세금을 이중 과세하는 데 분노했다. 에식스에서 시작해 켄트에서 농민들이 저항했고 이내 봉기를 일으켰다. 이들 과격파는 반항적 사제 존 볼에게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볼은 흔히 다음과 같이 설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담이 밭 갈고 이브가 길쌈할 때 누가 귀족이었던가?” 볼의 설교 다수는 이후 종교개혁 시기에 유럽에서 출현할 일종의 기독교 공산주의를 고취한 것으로 보인다. 켄터베리 대주교가 볼의 활동을 주시한 뒤에 감옥에 가둔 것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 13816월에 켄트의 반란 농민들이 볼이 갇힌 메이드스톤 성을 점령해서 그를 감옥에서 꺼냈다. 6월 중순에는 에식스와 켄트에서 세를 불린 반란군이 둘로 나뉘어 수도 런던을 향해 진군했다.

 

이런 상황에서 흔히 그렇듯 반란군의 규모를 둘러싼 추계는 둘쭉날쭉 하지만, 흔히 추정되는 여섯 자리 숫자까지는 아니라도 틀림없이 수 만 명은 됐다. 국왕 리처드 3세는 호위 병력도 거의 없이 성난 농민들을 만나는 데 동의했다. 와트 타일러라는 이름의 지도자가 이끈 농민군의 요구는 다음과 같았다. 인두세 폐지 반란 가담자 전원 사면 농민의 권리를 담은 성문 헌장 소작료 인하 모든 역적(예컨대 보통사람들이 특히 억압의 주범으로 지목한 자들)의 처단. 왕은 왕립 법정만이 반역 행위를 심판할 수 있다는 전제를 달고 이 모든 요구에 합의했다. 수많은 농민이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하고 런던을 떠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와트 타일러를 비롯한 반란군의 다른 무리는 더 많은 양보를 압박하려고 재차 국왕 면담을 요구했다, 왕은 동의했지만, 별말 없이 따르는 그의 모습은 실은 덫이었다. 약속된 면담 와중에 타일러는 암살당했다. 당황한 농민들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채기 전에 왕은 요구가 다 승인됐으며 모두 자기를 따라 런던에서 나가야 성문 헌장을 공포할 수 있다고 뻔뻔스럽게 외쳤다. 속아 넘어가거나 혼란에 빠진 수많은 농민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헤매는 동안 군주가 소집한 군대는 반란에 가담했다고 생각되는 이들을 샅샅이 수색해서 도륙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문 권리헌장을 실제로 받은 농민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다. 헌장을 소지한 게 발견될 경우 반란에 가담했다는 증거가 된 것이다. 존 볼은 설교를 통해 농민에게 악영향을 끼쳤다는 혐의로 1381715일에 목 졸린 뒤에 네 갈래로 찢기는 공개 처형을 당했으니, 그 목적은 부자를 안심하게 하고 보통사람들을 겁주는 것이었다.

 

<유럽민중사 보통사람들이 만든 600년의 거대한 변화> 윌리엄 A. 펠츠, 서해문집, 2018. 41-43.

 

 

여러가지를 생각하는 하는 대목이다.

이 책은 유럽민중사를 다룬 것이라 그 내용이 방대하지만 난 이 부분에서 생각이 복잡해졌다.

역사는 늘 그렇게 반복되는 것인지. 시공간이 모두 다른데도 어쩌면 그리 비슷한 일들의 반복이 역사에는 그리 많은지.

전염병으로 인한 어려움 끝에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든 것을 회복하려 하는 강압적 태도를 보이고, 백성들은 안 그래도 어려운데 가중되는 어려움에 지칠대로 지쳐서 이젠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

역사에서 배움을 얻지 못하면 이후로도 반복되는 어려움이 있을 터.

코로나19로 인한 전세계의 동시적 어려움의 상황에서 이후 어떤 대응을 할런지 추정하게 된다.

자본은 더 강화된 행동들을 취할테고, 생존의 어려움에 처한 국민들은 각자의 처지를 호소하며 '함께 살자'는 주장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어느 지점에서 사회적 대타협이 이루어져야 미래를 구상할 수 있을텐데 그 타협이라는 것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하여간 최악의 상황이 되지 않도록 모두가 지혜와 마음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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