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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나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by 길찾기91 2020.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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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요즘 인터넷이나 페이스북을 보며 발견한 현상 가운데 하나는 아주 강력한 입장 표명들이다.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바를 알리는 것이 무엇이 문제일까 싶다가도 강력한 주장을 위해 누군가를 강력하게 규탄하고 의심하고 대단한 적으로 몰아가는 그런 분위기가 난 무섭다.

나로서는 사안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도 하고, 내 생각을 정리해서 내놓기에는 식견이 부족하기에 지켜볼 뿐이다. 나름 생각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나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려는 마음도 있다. 그래서 지켜보며 배워가려는데 가까운 지인들 간에도 너무도 다른 입장으로 인해 불편해지는 모습을 보는 건 참 힘든 일이다.

 

그러다가 페미니즘이라는게 뭘까를 생각하게 됐다. 정답을 아는 것은 아니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의 페미니즘을 모르는 바 아니고, 여러 책을 통해 배운 바도 있지만 남성인 나로서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 할 자신이 없다. 한 때는 페미니스트라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생각을 버렸다. 사안에 따라 가지는 부분적인 내 생각들이, 운동을 하는 분들의 시각에 아주 몹쓸 정도의 수준인 것으로 규정되는 것을 발견한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자신감 상실이다. 그저 비교적 친절한(?), 그리고 의식적 노력을 하는 중인 정도의 사람일 뿐.

 

페미니즘 - 여성주의, feminism, 여권주의

여성 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기술하고 여성 해방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운동 또는 이론을 페미니즘이라고 한다. 페미니즘은 19세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여성 참정권 운동에서 시작되었는데, 오늘날 페미니즘 운동은 모든 나라들에 존재한다. 페미니스트들은 모두 사회에서 여성의 불평등한 위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만 설명 방식은 자유주의 페미니즘, 급진주의 페미니즘, 흑인 페미니즘 등에 따라 다양하다.
페미니즘의 시초는 자유주의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에 의하면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은 여성의 사회 진출과 성공을 가로막는 관습적, 법적 제한이 원인이다.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현대 사회는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이며, 여성은 억압받고 있다고 비판한다.
남자와 여자는 선천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오랫동안 믿어져 왔으나, 많은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유전적인 결과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라고 주장한다. 남자와 여자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재생산되고 문화적으로 재창조된다는 것이다.  - 학습용어사전

 

세상을 보는 그 어떤 일에서도 각자의 입장은 있는 것이고 생각이 다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안에 따라 너무도 심하게 갈라지는 그 어떤 모습들을 보면서 꼭 그래야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입장이라는 것은 스펙트럼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을 강변하다보면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페미니즘에서도 그렇다. 얼마나 다양한 시각과 판단의 정도가 있는지를 왜 생각하지 않을까. 아주 물러터진 보수적 시각에서부터 아주 급진적인 시각까지 페미니즘에 대한 시각도 다양하다. 여성이 가진 스펙트럼도 있고, 남성들이 가진 스펙트럼도 있다. 그 어느 지점인가에 있을 사람들이 각자 다른 이의 시각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아주 나쁜 사람 대하듯 판단하는 것을 보는 건 괴로운 일이다.

 

각자 더 배워가며 살아가야 한다는 전제 아래 이런 생각을 한다. 노력 중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든 한계가 있는 이에 대해 더 급진적인 시각에서 보면 부족하거나 모자람이 보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아주 적으로 돌리는 일은 안했으면 좋겠다. 그야말로 성평등 지수가 최악인 세상을 사는 시기에는 혁명적이고 전투적인 시도들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이런 시각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니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난 존중한다.) 나같이 아직 부족할 수밖에 없지만 배워가며 애쓰는 이들에 대해서까지 척을 지며 싸우려들지는 않았으면 한다는 말이다.

 

상호간의 작용에 따라 함께 성숙해가는 것이 세상살이의 이치가 아닐까.

답답한 마음에 책을 보다가 발견한 글이 있어 옮겨 본다.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교사 · 교수 · 종교인 · 국회의원 등이 저지르는 성폭력·성추행·성희롱이 한국사회의 구석구석에서 불거지고 있다. 새로운 일이라기보다 오래 전부터 관행처럼 되어왔던 일들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다양한 인터넷 매체에서 확산하고 있는 여성 혐오와 여성 비하는 극도에 이르렀다. '개똥녀’ ‘강사녀' '신상녀' '루저녀' '지하철 반말녀' '명품녀’·‘패륜녀' 등 다양한 녀'들은 물론, 삼일한(여자는 3일에 한 번씩 때려야 한다) 등과 같이 여성 혐오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신조어들이 광범위하게 회자되고 있다.

지난 20151'이슬람국가'에 가입했다고 알려진 '김군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라는 말을 남겼다. 역설적이게도 '이슬람국가'를 악마화하는 이들 사이에서조차 김군의 페미니스트 혐오 진술에는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성 혐오성 논의들에서 사용되고 있는 페미니스트란, 종종 '남성 혐오자''남성 역차별주의자'로 왜곡되어있다. 이러한 현상들의 저변에는 여성의 존재 이유를 성적 도구와 출산 도구로만 보는 가부장제적 여성 혐오가 다양한 얼굴로 작동하고 있다. 여성을 온전한 인격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생물학적 기능의 대상으로만 보는 왜곡된 시각은, 사적 또는 공적 공간에서 여성혐오를 확산시키고 있다. 여성이 차별받는 사회를 넘어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사회로 전이되기는커녕 여성이 혐오받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이 현상은, 페미니즘의 담론과 실천의 측면에서 한국사회의 인식론적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한다.

여성 혐오는 여성을 두 가지 차원으로 이해한다. 여성은 '위험한 존재'임과 동시에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라는 것이다. 성적 도구로서의 여성은 언제나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라는 이해는, 강간과 같은 극도의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피해자 여성에게 먼저 의혹의 눈길을 보내게 한다. 지도자 역할을 하는 주요한 직위에는 여성보다는 어쨌든 우월한 남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여성 혐오의 또 다른 얼굴이다. 상충적인 것 같은 여성의 이상화나 혐오화 모두 사실상 가부장제적 남성중심주의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러한 가부장제사회에서 살아온 남성과 여성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남성중심주의의 성차별적 가치를 내면화하고 자연화함으로써, 결국은 각기 다른 종류의 피해자들이 되어버린다. 특히 여성 혐오를 내면화한 여성은 종종 가부장제적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공모함으로써, 결국 자신의 해방과 평등에 등돌리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그러한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이론이자 운동이다. 페미니즘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는 페미니스트 이론가들 사이에서도 통일된 바가 없다. 자유주의 · 마르크스주의 · 급진주의 · 사회주의 · 페미니즘 등의 입장에서 각기 규정하는 바가 다르다. 여성중심주의 페미니즘과 휴머니스트 페미니즘에서 제시하는 정의 또한 서로 다르다. 그처럼 페미니즘은 특정한 역사·문화적 정황과 사회정치적 정황에 따라서 다양하게 규정되어 왔다. 그럼에도 여성도 인간이다"라는 말은 페미니즘의 핵심 정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현대 페미니즘은 여성만이 아니라 인종·계층· 나이 신체적 능력·성적 지향 등에 근거한 차별에 반대하며 다양한 소수자들도 인간이라는 이해를 담고 있다. 그렇기에 페미니스트란 성차별주의적 구조들을 우선적으로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여타의 차별과 배제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이들의 정치적 입장을 나타내는 개념이 되어야 한다.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보는 그 성차별적 가치와 제도에 반대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정의가 실현되기 위한 변화를 모색하고자 하는 이들이 바로 '페미니스트'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본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에 관한 것이며, 페미니스트란 '생물학적 표지가 아닌 '정치적 표지'이다.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누구에게 묻는가에 따라서 '''아니오'라는 답변이 모두 가능하다. 질문을 받은 사람이 여성의 생물학적 조건을 변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으로 설정하는 여성중심주의적 페미니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생물학적 남성은 결단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이 입장에서 봤을 때, 남성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면 그 남성 페미니스트의 페미니즘은 얼핏 보면 진짜 그릇 같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진짜의 모조품인 플라스틱 그릇처럼 형태만 그럴듯한 '플라스틱 페미니즘'일 뿐이다. 반면 이 질문을 남성과 여성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를 본질적인 요소로 보지 않고 인간이라는 공통적 요소들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는 휴머니스트 페미니즘의 입장을 지닌 이에게 묻는다면 그 대답은 예이다. 다양한 종류의 배제와 차별에 반대하고 더욱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페미니스트는 생물학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되어가는 것이다. 차별과 배제의 문화와 가치에 저항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사회적 소수자들과의 생물학적 동질성'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동료 인간에 대한 책임과 연대라는 '정치적 입장'과 소신에 근거해야 한다.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나는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페미니스트가 되어가야만 한다.' 페미니즘은 자신의 생물학적 본질성에 근거해서, 또는 여성들을 위하여라는 시혜적 의미에서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19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영국의 철학자이며 정치가 중의 하나였던 존 스튜어트 밀은, 1869년에 나온 <여성의 종속>이라는 책에서 여성과 남성의 평등이 법과 교육을 통해서 가정과 사회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함으로써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초석을 놓는데 이바지한다. 그는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남성 페미니스트' 중의 한 사람이다. 여성을 향한 고질적인 성차별과 성폭력이 사라져 더는 '페미니스트'라는 언어가 필요 없을 때까지, 생물학적 성에 상관없이 더욱 많은 이들이 페미니스트가 되어가야만 한다.

한 특정 집단의 헌신과 기여는 한 사회의 진정한 변화를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곳곳에 퍼져갈 때, 한국사회 구석구석의 성차별·성폭력·성희롱·여성 혐오 여성비하의 질병을 넘어 모든 이들이 인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평등하게 존중받는 성숙한 민주사회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정의를 위하여, 강남순, 동녘, 2016. 93-97

조만간 이 책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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