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 책을 읽었다.
하나는 배우 정우성이 쓴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정우성, 원더박스, 2019. 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인 연구자가 쓴 <아프리카인, 신실한 기독교인, 채식주의자, 맨유 열혈 팬, 그리고 난민> 오마타 나오히코, 원더박스, 2020. 이다.
이 책은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 중인 배우 정우성이 2014년부터 매해 한 차례 이상 해외 난민촌을 찾아 난민을 직접 만나면서 그들의 소식을 전해왔었던 것을 정리하여 낸 책이다. 그가 그동안 난민 보호 활동을 하며 만난 이들의 이야기와 난민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일반인들의 관심이 그리 많지 않은 영역이고, 익히 알려진 배우라 조심스러울만도 한데 그는 그 상황을 이미 넘어선 결심과 실천을 해오고 있는 이다.
‘난민의 경제 활동’을 연구 주제로 하는 인류학자 오마타 나오히코(옥스퍼드 대학 난민연구센터 부교수)는 장기화된 난민 캠프에서의 경제 활동을 연구하기 위해 아프리카 가나에 있는 부두부람 난민 캠프(라이베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들의 가나 지역 캠프)로 향했고, 그곳에서의 401일을 근거로 주목받는 논문을 썼지만, 논문에는 다 담지 못한 에피소드가 많았다. 이런 에피소드들이 우리가 ‘난민’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이야기임을 깨달은 그가 뒤늦게 이 책을 낸 것이다. 자신이 만난 난민 친구들을 ‘있는 그대로’ 세상에 소개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그대로 실현됐다. 책 내용이 그렇다.
난민에 대한 이 두 책을 읽으며 그간 난민에 대해 막연하게 알고 있었거나, 오해하고 있었던 수 많은 사실들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그간의 무관심에 대한 반성의 마음이 일기도 했다. 가까이에서 벌어지는 눈 앞의 일에만 관심을 가질 뿐, 물리적 거리가 있고 주변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의 정도가 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일을 위해 몇 가지 정리해 두려 한다.
난민의 정의부터 확인해 보자.
난민을 둘러싼 개념도 조금 복잡하다. 기본적으로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받는 박해를 피해 자신의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나 분쟁 혹은 일반화된 폭력 사태로 인해 고국을 떠나 돌아갈 수 없는 사람'으로, 일정한 기준에 따라 '난민'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위와 같은 이유로 자신의 터전을 떠나기는 했는데, 아직 국경을 넘지 못하고 자국 내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난민이 아닌 '국내 실향민'으로 분류한다. 또한 국경을 넘었다고 해도 일정한 절차를 거쳐 난민 신분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아직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난민지위신청자' 혹은 '난민비호신청자'라고 불린다. 앞서 말한 7,000만 명에 이르는 보호 대상자 중 4,000만 명 가량이 국내 실향민이고, 엄격한 의미의 난민은 2,000만 명 정도다.
이 세 분류 외에도 고국이나 고향으로 돌아간 난민 혹은 국내 실향민을 뜻하는 ‘귀환민'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바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미 파괴된 터전이라 여전히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 어떤 나라에서도 국적을 인정받지 못한 ‘무국적자', 그리고 위 분류에 속하지는 않지만 보호가 필요한 ‘기타 보호 대상자'도 유엔난민기구의 보호 대상자에 포함된다. (정우성, 28)
오마타는 20세기를 난민의 시대라 일컫는다.
20세기는 난민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러시아 혁명, 오스만 제국의 붕괴, 거기나 두 차례나 발생한 세계 대전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떠나야만 했다. 특히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는 4000만 명이 넘는 유럽인이 난민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막대한 규모의 난민을 귀환시키기 위해 1950년에 설립된 조직이 바로 유엔난민기구(UNHCR)다. 그 다음 해인 1951년에는 UN에서 난민의 정의와 기본 권리를 규정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이 채택되었다.(오마타 나오히코. 32)
정우성은 우리에게 난민 문제가 그리 낯선 일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난민 문제가 낯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부터가 난민의 후손임을 알 수 있다. 6·25전쟁으로 600만 명이 넘는 피란민이 발생했다.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거리로 내쳐진 아이들은 앞서 말한 기준으로 정확히 '국내 실향민'에 해당한다. 실제로 6·25전쟁 당시 유엔군은 우리나라에 유엔군을 파견하였고, 한국의 재건이 외부의 도움 없이는 힘들어 보이자 유엔한국재건단(UN Korea Reconstruction Agency, UNKRA)을 설립해 우리를 도왔다. 유엔한국재건단은 현재 유엔난민기구가 난민과 국내 실향민을 위해 펼치는 활동과 비슷한 일을 이곳에서 행했다. 교통, 통신, 주택, 의료, 교육 시설 재건과 복구 등 다양한 일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전쟁으로 집을 잃은 실향민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정우성, 29)
정우성은 또한 우리가 익숙하지 않을 뿐 우리나라는 이미 독립된 난민법을 가진 따뜻한 나라임을 알린다.
우리나라는 이미 1992년 유엔난민협약 가입국이 되어 1994년부터 난민 신청을 받아 왔다. 2013년에는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자체 난민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까지 누적 총 3만 2,733명의 난민 신청자가 있었고, 2017년 말 기준으로 1만 9,424명을 심사 완료하여, 이중 792명을 난민으로 인정하고 1,474명에게 인도적 체류를 허가했다. 예멘인들이 제주 땅을 찾기 전에도 이미 우리는 2,000명 이상의 난민에게 환대의 인사를 건네 왔다.
2018년 6월을 기점으로 난민 수용 반대 여론이 높아지지 않았냐며 걱정하는 분들도 많지만,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에 대한 개인 후원은 그러한 논란 속에서 오히려 늘어났다고 한다. 따뜻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소식이다.(정우성. 30-31)
오마타가 소개하는 난민 해결 방안
'난민이 된 사람을 난민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단'으로 UNHCR이 정한 세 가지 '영구적 해결 방안'이 있다. 첫 번째가 내전 등이 종료됨에 따라 난민이 자발적으로 출신국에 돌아가는 '자발적 귀환(voluntary repatriation)', 두 번째가 피난처인 수용국에서 정착할 길을 찾아 그 후에도 그 나라에 계속 살게 되는 '지역 통합(local integration)', 그리고 마지막이 출신국도 수용국도 아닌 제3국으로 가 그곳에서 정착하게 되는 '재정착(resettlement)'이다. 이 세 가지 영구적 해결 방안 중에 원조 기관들이 '최선'이라고 여기는 것이 '본국 귀환'이다.(오마타. 249-250)
오마타의 말처럼 자기가 원해서 난민이 된 사람은 없다.
다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과 가족의 목숨, 존엄성, 그리고 미래를 지키기 위해 정든 조국을 떠난 것이다. 난민들에게 '난민이 되기 전'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 대부분이 모국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생업에 종사하며 가족을 돌보고, 세금을 내고, 선거 때에는 투표를 하며 모국의 사회를 이어 갔다. 그리고 '난민이 된 후'에도 낯선 땅에서 불편한 환경을 마주하면서도, 새로운 생활을 개척하고 자신들의 세상을 보다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난민들의 진정한 모습을 모르고 있다.(오마타.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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