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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보이지 않는 지휘관, AI가 전투를 결정하다 - 인간 없는 전쟁, 최재운, 북트리거, 2026

by 길찾기91 2026.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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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지휘관, AI가 전투를 결정하다

 

2022년 7월,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드네프르강을 가로지르는 안토노프스키 다리가 정확한 포격을 받고 무너져 내렸다. 러시아군의 유일한 보급로였던 이 다리가 파괴되자 러시아군은 고립되고 만다. 그리고 이내 헤르손에서 물러났다. 공격을 수행한 건 미국제 고속기동보병 로켓 시스템인 하이마스HIMARS였지만, 진짜 주역은 따로 있었다. 바로 '델타'라 불리는 소프트웨어다. 델타는 나토가 개발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 상황인식 시스템인 델타는 단순한 지도 앱이 아니었다. 군사위성, 드론, 심지어 시민들이 스마트폰으로 제보한 정보까지 모두 한 화면에 통합했다. 러시아군 전차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탄약고가 어느 건물에 있는지, 보급 트럭이 언제 다리를 건너는지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됐다. 우크라이나군은 이 디지털 지도를 보며 하이마스의 로켓 여섯 발을 어디에 쏠지 결정했다. 결과는 완벽했다. 러시아군 핵심 보급선 위치만 정확히 타격해 최소한의 포탄으로 최대 효과를 거뒀다.

 

더 극적인 사례는 2023년 8월 말 벌어진 로보티네 전투다. 러시아군은 15~25킬로미터에 걸쳐 지뢰밭과 참호, 콘크리트 장애물을 겹겹이 설치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연상시키는 이 철벽 방어선 앞에서 우크라이나군은 고전하고 있었다. 500미터를 전진하는 데도 막대한 희생이 필요했고 수십 명의 병사들이 수 킬로미터의 지뢰밭을 기어서 진격해야 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우크라이나군이 지리멸렬하게 대치 중이던 상황을 타개하고 마침내 돌파에 성공한 것이다. 비결은 AI였다. 먼저 소규모 정찰대가 반복적으로 러시아군 진지를 정찰했다. 러시아군이 대응 사격을 하면 그 위치가 노출된다. 이 정보는 즉시 AI 시스템으로 전송됐다. AI는 수백 개의 표적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어느 포대를 먼저 제압할지, 어느 지휘소를 먼저 노릴지, 보급로는 어디를 끊을지를 결정했다. 그리고 지휘관이 공격 버튼을 누르는 순간, 동시다발적 타격이 시작됐다. AI는 인접 부대와 상급 부대의 지상, 해상, 공중전력까지 실시간으로 조율했다. 러시아군은 무엇에 맞았는지도 모른이 무너졌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군 주력 부대는 로보티네를 탈환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가 개발한 또 다른 혁신적 시스템이 있다. 포병의 우버라 부리는 'GIS 아르타'다. 이 시스템을 우버라고 부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버가 승객과 가장 가까운 택시를 연결하듯, 아르타는 표적에 가장 적합한 화력을 연결한다. 작동 방식은 이렇다. 정찰 드론이나 전방관측병이 적을 발견하면 스마트폰 앱으로 좌표를 입력한다. AI 알고리즘은 즉시 주변의 모든 화력 자산을 스캔한다. 박격포, 곡사포, 미사일 공격 드론 중에서 가장 가깝고 적합한 무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자동으로 사격 명령을 전송한다. 기존 방식이라면 표적 발견부터 타격까지 20분 이상 걸렸을 일이다. 보고서 작성, 상급 부대 보고, 화력 배정, 사격 준비. 복잡한 절차 때문에 적이 도망갈 시간이 충분했다. 하지만 GIS 아르타는 수십 초에서 수분이면 충분하다.

 

2022년 5월 세베르스키도네츠강 전투에서 이 시스템은 진가를 발휘한다. 러시아군이 부교를 놓고 강을 건너려는 순간 우크라이나군은 GIS 아르타로 여러 포대를 동시에 지휘했다. 포병을 분산 배치한 뒤 여러 방향에서 동시 공격을 가했다. 러시아군은 포탄이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알 수 없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러시아군 전차 70여 대와 1,000명 이상의 병력이 전멸했다. 이 시스템의 진짜 핵심은 분권화다. 야전 지휘관들은 상부 허락 없이 '선 조치 후 보고' 방식으로 직접 화력을 운용할 수 있다. 관료주의에 찌든 군은 따라올 수 없는 속도다.

 

이런 놀라운 성과의 배경에는 새로운 전쟁 개념이 있다. 바로 '네트워크 중심전network-centric warfare'이다. 과거 전쟁에서는 각 부대가 자기 구역만 담당했다. 포병은 포병대로, 항공기는 항공기대로 따로 움직였다. 하지만 네트워크 전쟁에서는 모든 전력이 하나로 연결된다. 마치 우버가 승객과 운전자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듯, 전장의 모든 센서와 무기가 네트워크로 묶인다. 드론이 적을 발견하면 가장 가까운 포대가 자동으로 배정돼 사격한다. 위성이 적 함대를 포착하면 즉시 미사일부대에 좌표가 전송된다. 이 모든 과정을 AI가 조율한다.

 

미군은 이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모자이크전 mosaic warfare'이라는 개념을 구체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군대는 직소 퍼즐 같았다. 각 부대가 정해진 위치에 정확히 맞아야만 전체 그림이 완성됐다. 하나라도 빠지면 구멍이 생겼다. 하지만 모자이크는 다르다. 작은 조각 하나가 빠져도 다른 조각으로 대체할 수 있다. 드론이 격추되면 다른 드론이, 포대가 파괴되면 미사일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수천 개의 저렴한 센서와 무기가 유연하게 재조합되며 임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이 모든 조각을 실시간으로 연결하고 조율하는 두뇌가 바로 AI다. AI는 어떤 조각이 사라졌고 어떤 조각이 사용 가능한지 파악해, 즉시 새로운 전투모자이크를 만들어 낸다.

 

우크라이나는 이 개념을 실전에서 구현하고 있다. 수만 대의 드론이 전장을 감시하고, 스타링크가 통신을 연결하며, AI가 정보를 분석한다. 개별 드론 하나는 보잘것없지만, 네트워크로 연결되면 러시아의 거대한 전쟁 기계를 압도한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의 21세기 버전인 셈이다.

 

인간 없는 전쟁, 최재운, 북트리거, 2026, 148-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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