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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삶의 방식이 흔들리는 사건, 기후위기 - <시민과 함께하면 실패하지 않는다> 박승원

by 길찾기91 2026.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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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방식이 흔들리는 사건, 기후위기

 

여름이 예전 같지 않다. 비는 한 번에 쏟아지고, 바람은 계절의 약속을 어기고 있다. 나는 기후위기를 단순한 '환경 문제'로 부르는 것이 늘 불충분하다고 느낀다. 이것은 인류가 스스로 만든 삶의 방식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이자, 우리 아이들의 세대가 살아갈 미래를 지키는 실존적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명의 탄소중립은 화려한 캠페인이 아니라 예산, 계획, 생활을 전면 재설계하는 도시 운영의 새로운 표준이 되어야 한다. 기상청이 2025년 여름을 정리하면서도 '이른 더위'와 '국지적으로 단시간에 강한 비가 집중’된 양상을 반복해서 설명한다.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 40℃를 넘긴 기록, 전국적으로 200~700mm 수준의 매우 많은 비, 호우 긴급재난문자 발송이 수백 건에 달했다는 표현들. 이런 문장들은 뉴스의 보도문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사건이다.

 

기후위기를 환경 문제로만 생각하면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 환경 문제라고 부르면, 해결책이 분리수거와 캠페인 정도로 생각되기 쉽다. "조금 불편해도 참자"는 관용의 문제로 바뀌기 쉽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은 관용의 영역을 넘어선다. 이건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삶의 방식이 흔들리는 사건이다.

 

여름의 노동시간이 바뀌고, 아이들이 뛰노는 일과가 바뀌고, 노인의 건강이 바뀌고, 도로와 하수관로가 감당해야 할 기준이 바뀌고, 집의 냉난방비가 바뀐다. 기후가 바뀌면 '생활'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면 결국 도시의 질서가 바뀐다. 그러니 기후위기는 '환경'의 위기가 아니라 '실존'의 위기다. 내가 여기서 실존이라고 부르는 건 거창한 철학이 아니다. ‘내일도 오늘처럼 살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다. 우리 아이들의 세대가 '미래'라는 단어를 빚처럼 떠안고 사는 게 당연해지느냐는 질문이다.

 

기후위기를 실존의 위기라고 말하면, 책임이 갑자기 무거워진다. 사람들은 그 무게를 피하려고 "원래 날씨가 그렇지" 같은 말로 자기 마음을 달랜다. 하지만 통계와 관측은 마음을 달래주지 않는다. 정부·연구기관이 정리한 한반도의 미래 시나리오들에는 폭염과 극한강수가 더 잦아지고 더 강해진다는 예측이 반복된다. 심지어 온실가스를 지금처럼 배출하면 세기말 폭염일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기후변화를 다룬 국내 공공 연구 보고서들도 1.5℃와 2℃ 사이에서 폭염 같은 극한현상의 강도와 빈도가 달라진다고 강조한다. 단지 '덥다/덜 덥다'의 문제가 아니라, 재난의 밀도와 피해의 형태가 바뀐다는 뜻이다.

 

도시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 기후위기는 국가만의 의제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국가가 큰 방향을 잡아도, 시민이 매일 살아가는 공간은 결국 도시다. 주차장과 버스정류장, 학교 앞 그늘, 하천 옆 산책로, 아파트 단지의 열섬, 골목의 배수로, 건물의 단열, 지역경제의 이동거리. 기후는 이 모든 것을 통해 사람의 몸에 도착한다. 그렇기에 탄소중립을 '좋은 일' 정도로 취급하면 안 된다. 탄소중립은 선택 가능한 선행일 수 없고, 도시가 무너지지 않도록 반드시 해야 하는 구조조정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절약'으로 보이겠지만, 도시 전체로 보면 '생존'이다.

 

나는 탄소중립을 배에 비유하곤 한다. 도시라는 거대한 배가 기후위기라는 거친 바다를 건너는 중이라고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 하나는 이미 새어 들어오는 물을 퍼내는 일이다. 폭염과 폭우가 일상이 될 때, 도시가 당장 해야 하는 적응의 일들-취약계층보호, 열섬 완화, 물관리, 재난 대응 체계-은 물을 퍼내기다. 다른 하나는 배의 엔진 교체다. 에너지와 건물과 교통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물을 퍼내는 속도보다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엔진을 바꾼다는 말은, '편리함을 조금 줄이자'가 아니라 도시의 기본 설계를 다시 그리자는 말이다.

 

여기서 탄소중립은 계획이고, 계획은 결국 예산이 된다. 예산이 따라오지 않는 탄소중립은 캠페인 구호로 남는다. 나의 결론은 "광명의 탄소중립은 화려한 캠페인이 아니라 예산과 계획과 생활을 전면 재설계하는 도시 운영의 새로운 표준이어야 한다"는 쪽으로 자꾸 돌아오게 된다.

 

광명은 2023년 7월 '2050 탄소중립도시'를 선포하면서 6대 추진전략과 100개 과제를 제시했다. 이건 상징적인 선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도시 운영체제를 바꾸겠다는 선언이어야 했다. 그리고 그 선언을 실천으로 고정시키는 목표도 분명히 했다.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에 해당하는 온실가스 감축 44만 톤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은, 기후위기를 기분이 아니라 계획으로 다루겠다는 뜻이다.

 

여기까지 오면 기후위기의 본질이 더 적나라해진다. "지금 방식으로는 오래 못 간다"는 경고다. 도시가 이 경고를 무시하면, 결국 시민이 몸으로 비용을 치른다. 더운 날은 돈 있는 사람에게는 냉방비의 문제지만, 돈 없는 사람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된다. 큰비는 어떤 동네에는 불편이어도, 어떤 동네에는 집이 잠기는 붕괴가 된다.

 

기후위기는 늘 평균으로 오지 않는다. 불평등의 모양으로 온다. 그래서 나는 기후위기를 이야기할 때마다 환경의식이라는 말보다 권리라는 말을 더 떠올린다. 안전하게 숨 쉴 권리,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 안전하게 잠잘 권리. 그 권리가 기후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이 실존의 위기 앞에서 도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나는 최소한 기후 위기를 개인의 실천으로만 축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실천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수 없다. 도시가 먼저 구조를 바꿔야 한다. 탄소중립은 시민이 덜 고통스럽게 바뀔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하는 행정의 한 부분이어야 한다.

 

아울러 나는 한 가지를 더 확신하게 된다. 기후위기는 결국 학습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 기후를 단지 불쾌한 날씨로만 생각하면, 우리는 대응을 그때그때의 처방으로만 한다. 그러나 기후를 삶의 방식이 흔들리는 사건으로 본다면, 해결책도 바뀐다. 무엇을 줄일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바꿀 것인가로 바뀐다. 생활의 편의를 조금 포기하는 차원보다, 도시의 편의가 어떤 비용 위에 세워졌는지 다시 따져 묻는다. 이 질문을 시민이 함께 품기 시작할 때, 탄소중립은 홍보가 아니라 정치가 된다. 그리고 그 정치가 예산과 계획으로 내려앉을 때, 도시는 비로소 생존 전략을 갖게 된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기후위기를 과장하고 싶지 않다. 반대로 기후위기를 축소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가 겪는 폭염과 폭우의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관측은 이미 충분히 구체적이다. 광명이 2050 탄소중립을 말하며 2030 중간목표와 실행 과제를 붙인 이유도, 이 위기를 표준의 문제로 다루기 위해서다.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너희는 미래를 빌려 써도 되는 삶을 계속 살거냐, 아니면 미래를 담보로 잡지 않는 방식으로 현재를 다시 설계할 거냐.' 나는 후자를 선택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탄소중립은 아름다운 슬로건이 아니다. 도시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약속이다.

 

"우리는 미래 세대의 시간을 빌려 쓰지 않겠다."

 

이 약속이 말로만 남지 않으려면, 이제부터의 도시 운영은 달라져야 한다. 계획이 달라져야 하고, 예산이 달라져야 하며, 건물과 교통과 에너지의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그 변화가 불편을 동반하더라도, 불편보다 더 큰 붕괴를 피하려면 어쩔 수 없다. 실존의 위기 앞에서, 도시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 바로 그 변화다.

 

<시민과 함께하면 실패하지 않는다> 박승원, 더봄, 2026, 1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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