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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따분함이 창의적으로 만든다 - <편안함의 습격> 마이클 이스터

by 길찾기91 2026.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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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함이 창의적으로 만든다

 

1950년대의 한 연구는 따분함과 창의성의 상관관계를 보여준 소킨의 사례를 뒷받침한다. 영국의 한 연구팀이 사람들에게 15분 동안 전화번호부를 읽게 했다. 이렇게 해서 따분해진 사람들에게 일률적인 창의력 테스트를 실시했다. 하나는 스티로폼 컵을 색다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내도록 하는 실험이었고, 또 하나는 세 가지 낱말을 보여주면서 공통점을 찾아내는 원격연상단어검사(Remote Associates Test, RAT)였다. (예: call + pay + line = phone, motion + poke + down = slow)

 

그 결과, 따분함을 느낀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두 가지 실험에서 훨씬 많은 답을 내놓았고, 훨씬 창의적이었다. 이 밖에도 여러 실험에서 동일한 현상이 관찰되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따분함이 우리를 더 창의적으로 '만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댄커트는 말한다.

 

"제가 보기에는 다 헛소리예요. 따분함은 우리를 더 창의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한테 '뭔가를 해!' 하고 말하죠."

 

그 '뭔가'가 우리 마음을 비집중 모드로 이끌어준다면, (예를 들어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자리에 앉는 것과 같은 일) 다른 사람들처럼

 

미디어로 머릿속을 덮어버리는 대신 우리는 말 그대로 다른 파장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게 사실 창의성이 살아나는 방식이다. 1950년대 미국의 심리학자 엘리스 폴 토런스Ellis Paul Torrance는 미국의 교실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교사들은 주로 얌전하고 독서량이 많아 아는 것이 많은 학생을 선호했고, 에너지가 넘쳐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아이들, 가령 예문을 읽고 엉뚱한 해석을 내놓거나, 숙제를 안 한 이유를 발명해내며, 과학 실험을 하는 날이면 괴짜 과학자처럼 행동하는 학생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교육 시스템은 이런 아이들을 '문제아'로 여겼지만 토런스는 이런 학생들이 오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현실 세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해답을 책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답이 책에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럴 때 창의력이 필요하다.

 

토런스는 일생을 바쳐서 창의력과 그 유용성을 연구했다. 그가 1958년에 창안한 '토런스창의력테스트 Torrance Test of Creative'Thinking'는 창의력을 측정하는 표준이 되었다. 토런스는 이 테스트로 미네소타주의 공교육 시스템에 속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시험을 실시했다. 시험 문항 중에는 장난감을 보여주면서 "이걸 더 재미있게 만들려면 어떻게 바꿔야 할까?" 하는 질문이 들어 있었다. 모든 아이들의 점수를 분석한 뒤 추적 조사를 계속하며 생애업적을 조사했다. 2003년에 토런스가 사망한 이후에도 연구는 지속됐다. 아이들 중 누군가 책을 썼거나 사업을 시작했거나 특허를 출원했다면 그 사실을 기록했다. 모든 성취를 꼼꼼히 기록한 후 이 거대한 추적 조사가 발견한 것은 기존의 지능에 관한 고정관념에 주요한 의문을 제시했다.

 

초기 테스트에서 더 많은 아이디어와 더 나은 아이디어를 낸 아이들이 가장 성취를 많이 한 성인이 되었다. 이들은 뛰어난 발명가, 건축가, CEO, 대학 총장, 작가, 외교관 등등으로 성장했다. 사실 토런스의 테스트는 IQ 테스트를 훨씬 능가하는 결과를 보여준다. 연구에 참여했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창의력은 IQ 점수보다 학생들의 성취를 예측하는 데 세 배 더 정확한 지표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는 창의력의 주요 동력 중 하나였던 '마음의 유랑mindwanderering'을 사실상 없애버렸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월리엄앤메리대학교의 한 연구자는 1950년대 이후 실시한 30만 건의 토런스창의력테스트를 분석한 결과, 1990년부터 창의력 점수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음을 발견했다. 그러곤 인류가 현재 '창의력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원인으로 '늘 바쁘고 할 일이 넘쳐나는 현대인의 생활'과 '전자오락 도구들과 상호작용하는 시간의 지속적 증가'를 지목했다.

 

나쁜 소식이다. 특히 근력보다는 뇌를 쓰는 일이 훨씬 많은 오늘날의 경제에서 창의력이야말로 핵심적인 능력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생산성 전문가들이 사람들에게 심고 있는 믿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과 실적을 향상시키는 핵심은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화면 속으로 다이빙하지는 않는 것. '마음의 유랑' 상태는 우리를 색다르게 사고하도록 만들어 고유한 생각을 떠올릴 수 있게 해준다. 실리콘 밸리의 신도 여기에 수긍한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따분함을 신봉하는 쪽입니다.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모든 것이 대단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 역시 충분히 대단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발언이다. 그리고 대단히 보기 드문 발언이다. 오늘날 따분함은 좀처럼 흔치 않은 현상이라, 누군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은 거슬려 보이기 쉽다.

 

최근에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다. 저녁 때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때 아내가 방으로 들어왔는데, 나를 내려다보면서 괜찮냐고 하더라고. 내가 풍 같은 걸 맞았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티브이도켜지 않고 휴대폰이나 노트북도 없이 그냥 누워 있는 게 너무 이상해 보였던 거지.”

 

<편안함의 습격> 마이클 이스터, 수오서재, 2026, 171-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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