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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생각하라
한 과학자가 계산을 통해 알아낸 바에 따르면, 한 인간이 살아있을 확률은 10분의 1의 2,685,000승이다. 이 과학자의 설명을 들어보자면, 이 확률은 1조 개의 면을 지닌 주사위를 200만 명이 동시에 던져서 전부 같은 숫자가 나올 확률과 같다. 동시에 550, 353, 279, 007이 나오는 식으로 말이다. 그만큼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이라는 뜻이다.
이 수치는 현대 선진국에서 태어난 행운이라는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100년 전만 해도 유럽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30~40퍼센트가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사망했다. 1900년대 전 세계인의 평균 기대 수명은 31세에 불과했다. 오늘날 세계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72세다.
그러나 현대 의학과 안락함과 편리함이 인간들의 삶을 늘려주긴 했지만, 죽음은 더 두려워하게 되었다. 서구인들의 10명 중 8명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답한다. 65세 이상인 사람들조차 절반 이상이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지 고민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듣는다.
“생각하려고 하지 마. 바쁘게 지내면서 그냥 잊어버려."
망자의 시신은 곧바로 수의에 감싸여 장의사에게 넘어간다. 그리고 화장을 거쳐 반들거리는 항아리에 담기거나, 최대한 깔끔하고 젊어 보이게끔 단장하고 지인들과 마지막 1시간의 대면을 마친 뒤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는 묘지 속으로 들어간다.
죽음의 역사를 연구해온 에모리대학교의 게리 래더맨 Gary Laderman 박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원래부터 죽음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은 죽음과 훨씬 더 친밀했고, 죽음은 가족과 공동체에 기반을 둔 일상생활의 일부라는 측면이 훨씬 강했습니다. 가족들은 집 안에서 손수 죽음을 처리했습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시신이 집 안에 그대로 있었죠.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건 에이브러햄 링컨의 사망과 장례식이었습니다. 링컨은 그때까지 방부 처리된 시신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고, 그 과정을 신문들이 자세히 보도했습니다. 이때부터 시신 방부 처리가 주류가 되었고, 장례산업은 성장과 확장을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들한테는 이것이 죽음과 거리를 두면서 죽음을 직접 목도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하죠. 이런 현상은 현대적인 병원의 증가와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장례식이 죽음의 과정을 넘겨받고, 병원이 시신을 인계받기 시작한 겁니다.”
아픈 사람이 병원으로 가고, 다음에는 장례식장으로 가고, 그다음에는 땅속으로 들어가는 모든 과정이 우리의 손을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병원은 소위 전문 지식을 이용해 사람들로부터 죽음에 대한 친밀함을 앗아갔습니다."
레더맨은 사람들이 의학의 발달과 함께 과학이 자신의 생명을 구해줄 것으로 믿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삶의 끝자락에서 오로지 죽음을 늦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위해 더 많은 통증과 괴로움을 감수하는 과잉 의료 행위를 자초하고 있다.
하버드 의과대학교 외과 교수 아툴 가완디 Atul Gawande 박사는 미국 노인의료보험 지출의 25퍼센트가 전체 환자의 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말기 환자들의 마지막 1년을 위해 쓰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중 대부분의 돈은 생명을 살리는 데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하고 환자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더 겪게 만들 뿐인 연명 치료에 낭비되고 있다.
사람들은 죽음을 며칠 늦추기 위해 이상한 보조제를 먹고, 불가능한 것을 믿으면서 기이한 절차를 밟는다. 나는 생명 연장이라는 미명 아래 외국 연구소에서 위험한 약품들을 불법으로 들여오고, 수천 달러를 들여 젊은 사람의 피를 자신의 몸에 주입하고, 젊음을 보장해주는 알약을 찾아낼 것이라고 믿으며 과학자들에게 수백만 달러를 지원한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반면 많은 사람들은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그러곤 결국 자신답게 살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한다. 임종을 앞둔 미국인들이 가장 흔하게 후회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실제로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사람들은 종종 단조로운 직장생활을 그만두거나 독이 되는 인간관계를 끊고, 자신의 꿈을 좇기 위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말했다.
"만일 내가 죽음을 나의 삶 속으로 끌어와 인정하고 정면으로 바라본다면, 죽음에 대한 불안과 삶의 하찮음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나는 자유롭게 나 자신이 될 것이다."
최근 켄터키대학교의 연구진이 하이데거의 말에 어떤 지혜가 담겨 있는지 실험했다. 연구진은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운치과 방문을 생각하도록 했고, 다른 그룹에게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보도록 했다. 실험 결과, 죽음을 생각했던 사람들은 삶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들은 이전보다 더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고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죽음은 심리적으로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막상 사람들이 그것을 깊이 숙고하면, 행복한 생각들을 찾게 만드는 자동시스템이 가동하기 시작한다.”
<편안함의 습격> 마이클 이스터, 수오서재, 2026, 292-296.
<사이콜로지컬 사이언스>에 실린 한 논문에 따르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던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쏟는 경향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자신의 시간이나 돈을 기부하고 혈액은행에 헌혈을 하는 것과 같은 일들을 했다. 이 효과는 가장 강경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일어났다. 미국과 이란의 종교 근본주의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했을 때 다른 종파에 대해 좀 더 평화롭고 자비로운 마음 상태가 되었다.
미국 이스턴워싱턴대학교의 한 연구팀은 죽음에 대한 사고가 감사를 증대시킨다는 사실을 바련했다. 이들의 보고에 따르면,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생각했을 때 자신이 “없을 수도 있음”을 깨달으면서 지금 경험하고 있는 삶에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죽음이라는 숙명을 온전히 인식하는 것은 겸손과 감사를 아는 사람이 되는 데 중요한 요인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식할 때, “인생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오히려 일종의 기이한 특권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감사는 불안은 물론 심장병 같은 질병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편안함의 습격> 마이클 이스터, 수오서재, 2026, 32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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