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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걷기

Three Go(걷고읽고먹고) 시즌2 ep1-1. 시구문과 한양도성 순성길을 걷다

by 길찾기91 2020.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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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쓰리고(걷고읽고먹고) 모임의 걷기 방향은 시구문길.
공식적으로 이 이름의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 걷는 길의 중심에 시구문이라는 별칭의 광희문이 있을 뿐이다.

동대문역 6번 출구로 나가면 동대문(흥인문)이 있다. 오늘 걷기의 출발지점. 길벗들을 만나 걷기 시작. 동대문은 다른 문과 달리 적의 침범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모양을 조금 달리했다. 문 밖이 바로 평지여서 방어을 목적으로 그리했단다.

걷기 시작하면 금방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다. 두타 건너편에 있는.
이곳은 젊은 날 고교야구 경기를 보던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이렇게 많이 변한 곳.
일제시대에는 경성운동장이었다. 일본 왕세자의 생일을 기념하여 지었다던 그곳. 지들 왕세자 생일에 왜 여기다 운동장을 짓는건지 원. 우리랑 아무 상관없어 보이지만 근대사의 슬픔이 담긴 곳이다.

 

이간수문



초입에 보면 이간수문이 보인다. 물길이다. 과거에는 이게 땅속에 뭍혀 있었단다. 동대문역사공원을 조성하며 발굴하여 노출시켰다. 일제가 운동장을 지으며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감춘 것이다. 고증보다는 가리는게 더 우선이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이곳에 거대한 돔 모양이기도 하고 곡선으로 지은 건물이 있다. 전시도 하고 행사도 한다.

 


조금 더 걸어가니 모양이 아주 독툭한 건물이 보인다. 처음엔 산부인과병원으로 지었다는 곳이다. 성적인 부분을 상징하는 모양으로 지었다는데 이해가 충분히 되진 않았다. 지금은 인쇄 관련 회사가 있더라.

 



길 건너편에 그 유명한 광희문이 있다. 

광희문光熙門(시구문屍軀門)은 조선시대 사소문의 하나로 서소문과 함께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다. 태조 5년인 1396년 도성을 쌓을 때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인 남동쪽에 세운 것으로, 1711년(숙종 37)에 고쳐 쌓았다. 1719년(숙종 45) 석축 위에 문루를 짓고 '광희문'이란 현판을 걸었다. 그후 언제 무너졌는지 알 수 없으며 석축으로 된 기단부만 남아 있었는데 1975년 복원시 홍예석축을 해체해 남쪽으로 15m 옮기고, 문루 12평을 새로 짓고 주변의 200평을 녹지화했다.

 

광희문 바로 앞에는 천주교 순교자를 기념하는 건물과 광희문교회가 있다. 성 바로 밖에 순교자기념관이 있는 것은 종교적 이유로 죽임을 당한 이들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어서 나온 그 문 앞.

광희문교회는 남감리교에서 세운 첫번째 교회다. 남감리교, 북감리교, 남장로교, 북장로교 등이 선교지역을 분할하는 결정을 하기 전에 세워진 곳이란다. 이후 남감리교는 호남을 기반으로 하게 됐다. 그래서 광희문교회는 호남이 아닌 곳에 세운 첫번째 교회다.
굳이 시신이 나오는 문인 광희문 앞에 교회를 세웠을까 궁금했는데 당시의 사정상 그럴 수밖에 없었단다. 서양귀신이 옮을까봐 성 안에서는 땅이든 건물이든 살 수 없었던 것이 그 이유다. 결국 성 밖의 묘지들이 있는 곳에 교회를 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신들이나 나가던 그 문을 지난 왕이 있다. 바로 인조다. 급한 상황에서 강화쪽으로 갈 수 없어서 남한산성쪽으로 가려고 급히 나서는 길에 이 문을 지난 것이다. 이 역시 슬픈 역사다.

광희문을 지나 이제부터는 한양도성 순성길이다. 사대문을 한바퀴 도는 코스인데 부분적으로는 끊어져 있기도 하다. 그 가운데 남산 방향으로 잡힌 코스다. 가다보면 광희문 달빛로드라는 표식도 나온다. 밤에 걸어야 더 멋진가보다.

 

서민들이 사는 곳으로 보였는데 가다보면 으리으리한 집들도 꽤 된다. 한 필지가 한 채인 그런. 유명한 누군가가 산다더라만 관심은 없고. 한양도성 순성길이 쭈욱 이어진다.

 

가다가 쉬만한 정자가 나오는데 거길 사색의 공간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난 사색은 못했다. 어르신 한 분이 뽕짝을 매우 크게 틀어놓고 운동을 하시는 바람에. 뭐라하지도 못하고 몸은 쉬었지만 맘은 피곤한 상태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남산 순성길을 걷다보니 멀리 도로가 보인다. 엄청 막힌다. 자연 안에서 쉬며 걸어가다 본 도시의 모습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막힌 도로에 앉은 운전자는 얼마나 힘들까.

 

계속 진행 방향으로 가다보니 반얀트리호텔과 국립극장이 보인다.

 

국립극장 입구의 남산공원 표식 뒤에는 대표적인 민단 활동가인 지사 김용환 선생의 동상이 있다. 어떤 인연으로 이 곳에 세워졌는지는 설명이 없어서 알 수 없었다.

 

김용환 (金龍煥, 1918~1968) Kim, Yong-hwan
김용환은 1918년 경북 의성 출신으로 '재일본 대한민국 거류민단' 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재일본 대한민국 거류민단 은 1946년 설립된 재일동포의 권리 증진과 번영 및 친목 도모를 위해 설립한 재외국민 단체로서, 도쿄에 중앙본부를 두고 재일동포의 법적 지위 향상, 민생 안전, 문화 증진, 국제 친선 등을 도모하는 일을 해왔다.
광복 직후 좌우 대립의 과정에서 북한을 지지하는 조총련' 계에 대항하는 성격을 띠었으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이승만 정권이 재일동포 공인단체로 인정하였다. 1949년 '재일본 대한민국 거류민단' 으로 바꾼 뒤. 1994년 '거류' 라는 두 글자가 빠지고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 으로 변경되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김용환 지사는 일본 나고야(名古屋시 아이치(愛知현 거류민 단장으로 동포의 단결과 조직의 강화를 위해 힘썼다. 1968년 11월 13일 회의 중 일본도를 든 괴한으로부터 습격받아 5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김용환을 안타까워하는 재일동포들의 성금 모금과 정부의 후원으로 서울 남산에 김용환 지사의 동상이 세워지게 되었다.

 

남산길은 계속 된다. 인적도 드물고 가을의 정취가 어느 정도 느껴지는 길을 걷자니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이 좋은 정취를 소수만 누리고 있다는 미안함도 잠시 들었고.

 

남산에서 보는 소나무. 애국가가 떠오른다.

이제 예정된 저녁식사 장소인 곳으로 가는 막바지 내려가는 길이다. 참 조용하고 좋다.

 

 

* 쓰리고(걷고읽고먹고) 가운데 '읽고'와 '먹고'는 다음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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