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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걷기

비밀의 화원(秘苑) 창덕궁 후원後苑을 거닐다

by 길찾기91 2020.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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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5대 궁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창덕궁 후원에 다녀왔다. 5대 궁 가운데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1997년 지정. 자연환경과의 조화와 배치가 탁월함을 인정하여 지정한 것이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상세하게 그린 동궐도.

 

결과적으로 지인찬스를 써서 창덕궁 후원을 거닌 것이다. 오늘 그렇게 특별한 자리인줄도 모르고 시간 있냐는 말에 따라나섰던 자리. 15시까지 오라길래 그런갑다 하며 갔는데 알고 보니 미리 예약해야 관람이 가능한 곳이며, 그것도 인원의 제한이 있는 곳이었다. 진작 알았으면 인사라도 잘 할 걸.

그저 늘 함께 걷던 길벗들의 호출에 따른 것이라 별 생각없이 참여했는데, 후원 입구에 도착해보니 주위의 관람객들이 다들 외국어를 쓴다. 알고 보니 외국인을 위한 영어 안내 시간이다. 못 알아들겠지만 일단 Go. 창덕궁 후원을 거닌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아주 특별한 기회였다. 내가 알았나 뭐.

종로3가역에서 내려 창덕궁 쪽으로 걷다 보니 첫사랑의 기억이 떠오른다. 둘이 가끔 가던 어딘가 클래식한 분위기의 카페가 있던 건물. 이제 기억도 희미할만큼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 장소를 지나니 느낌이 다르다.

 

창덕궁 앞에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지인들을 기다리는데 카메라를 든 젊은이들이 잔뜩이다. 가만 보니 어떤 아이돌 멤버들이 한복을 입고 창덕궁에 입장하려는 순간이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창덕궁 후원 관람에서 우리 바로 앞의 순서였던 일행들이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돈화(敦化)임금이 큰 덕을 베풀어 백성들을 감화시킨다는 의미로, 덕치를 숭상한 조선 임금(왕조)의 의지를 담고 있다돈화문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때 복원되었다월대라고 하는 돌로 쌓은 높은 대 위에 올려 있고, 그 한가운데 임금의 길인 어도가 길게 뻗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다른 궁궐의 문은 모두 세 칸짜리인 데 반해 돈화문만 다섯 칸이라는 점이다옛날에는 중국 황제만 다섯 칸짜리 대문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중국을 의식해 양쪽 끝에 문을 닫아 막아 놓았지만 외관만은 크고 장중하게 만들려고 했던 의도를 엿볼 수 있습돈화문은 임금의 출입이나 국가의 큰 행사 때만 사용되는 상징적인 문이었고, 평소 신하나 군사들은 좌우 담장에 있는 금호문이나 단봉문, 경추문 등의 작은 문으로 출입했다궁궐 출입에는 엄격한 법도가 있었고 반드시 궁에서 발급하는 출입증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 국가문화유산포털

 

일행이 다 모여 입장했다. 아주 널찍한 공간과 길게 늘어선 낮은 건물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푸르른 나무들도 많고.

 

 

인정문
인정은
어진 정치라는 뜻이다. 어진 정치를 베풀기 위해 임금은 스스로 인격을 도야하고 완성해야 했다인정이라는 현판 앞에 서면 임금은 백성들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 얼마나 어진 정치를 펼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았을 것이다. 이 문과 문 안의 전각에 모두 인정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왕실이 존재하는 의미를 나타낸, 대표적인 장소임을 보여주는 것이다이러한 의미에서 치러졌던 가장 중요한 의식은 임금의 즉위식입니다. 임금의 즉위 장소는 선왕이 승하한 궁궐의 법전 정문에서 하는 것이 관례였다선왕이 창덕궁에서 승하하면 다음 임금은 반드시 창덕궁의 법전인 인정전 정문에서 즉위하게 되는 것이다. 대개 선왕이 승하하고 엿새째에 즉위식이 이루어지는데, 상중에 이루어지는 즉위식이라 간소하게 치렀다인정문은 또한 매 5일마다 조정의 모든 관리들이 모여 임금에게 예를 올리는 조참의식을 치르는 장소이기도 했다. - 국가문화유산포털

 

 

후원에 들어가기로 예약을 한 터라 두루 둘러볼수는 없었고 후원 방향으로 가며 구경만 조금.

이제 후원으로 들어갈 시간.

입구에 모이니 한복을 곱게 입은 안내하는 분이 온다. 따라 나섰다.

 

후원 입구.
이 길에서 뱀도 봤다.
저 위의 건물이 규장각이다.

안내에 따르면 주합루(宙合樓)는 정조 원년(1776)에 창건된 2층의 누각건물이다. 아래층에는 왕실 직속 기관인 규장각(奎章閣), 위층에는 누마루를 조성했다. 규장각은 정조의 개혁정치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책 개발과 이를 위한 도서 수집 및 연구기관으로 설립되었다. 정조는 세손시절부터 정적들로부터 끊임없는 질시와 위협에 시달렸는데, 이에 굴하지 않고 학문연구와 심신단련에 힘을 써 위대한 계몽군주가 될 수 있었다. 주합루로 오르는 길에는 작은 어수문(魚水門)이 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격언과 같이 통치자들은 항상 백성을 생각하라는 교훈이 담겨진 문으로, 정조의 민본적인 정치 철학을 보여준다.

 

 

 

청의정은 왕이 직접 벼를 심어 백성들의 땀과 수고를 몸으로 체험하고자 했던 곳이란다. 성종은 가을이 되면 자신의 심은 벼를 수확해서 '춘당벼'라는 이름으로 신하에게 하사했다고.

 

 

 

 

 

 

안내자는 영어로 계속 안내를 하며 시크릿 가든을 엄청 여러번 말한다. 일반에게 개방하지않는 아주 특별한 곳이며, 왕이 거닐던 곳이라 그렇게 설명하는 모양이다. 미리 공부하고 간 곳이 아니라서 다녀와서 찾아 봤다. 창덕궁에 대해서.

 

창덕궁
사적 제122호. 창덕궁은 1405년 태종 때 건립된 조선왕조의 왕궁이다. 처음에는 법궁(法宮)인 경복궁에 이어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지만, 이후 임금들이 창덕궁에 머무는 것을 선호해왔고 특히 임진왜란 이후 법궁인 경복궁이 복구되지 못하면서 창덕궁은 고종 때까지 법궁의 기능을 하였다.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사용되면서 다양하고 복잡한 왕실 생활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창덕궁은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하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왕가의 생활에 편리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창덕궁의 공간 구성은 경희궁이나 경운궁 등 다른 궁궐의 건축에도 영향을 주었다. 궁의 동쪽에 세워진 창경궁과 경계 없이 사용되었으며, 두 궁궐을 ‘동궐’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창덕궁 후원
본래 창덕궁의 후원으로 후원(後苑) 또는 왕의 동산이라는 뜻에서 금원이라고 불렀으며, 비원(秘苑)이라는 명칭은 일제 때 용어이다. 태종실록1406(태종 6) 4월 창덕궁 동북쪽에 해온정(解溫亭)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정원은 이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459(세조 5)에는 후원 좌우에 연못을 만들고, 열무정(閱武亭)을 세웠다.
1463년에는 후원을 확장하여 경계가 거의 성균관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창덕궁과 함께 후원도 불타버렸으나 광해군 때 복원되었다. 이때의 모습이 왕조실록의 주해에 기록되어 있는데 "기이한 화초와 괴석들을 늘어놓고 원유의 꽃과 돌 사이의 곳곳에 작은 정자들을 만들어 그 기교하고 사치스러움이 예전에 일찍이 없었다"라고 했다. 1636(인조 14)에 지금의 소요정(逍遙亭)인 탄서정(歎逝亭), 태극정(太極亭)인 운영정(雲影亭), 청의정(淸漪亭) 등을 세웠고, 청의정 앞쪽 암반에 샘을 파고 물길을 돌려 폭포를 만들었으며 옥류천(玉流川)이라는 인조의 친필을 바위에 새겨놓았다. 1642년에는 취규정(聚奎亭), 1644년에는 뒷날 관덕정인 취미정을, 1645년에는 희우정(喜雨亭)인 취향정(醉香亭), 1646년에는 청연각(淸讌閣)인 벽하정(碧荷亭), 1647년에는 취승정(聚勝亭)과 관풍정(觀豊亭)을 세웠다. 1688(숙종 14)에는 청심정(淸心亭)과 빙옥지를, 1690년에는 술성각 옛 자리에 사정기비각(四井記碑閣)을 세웠다. 1704년에는 대보단을 축조했고, 1707년에는 택수재(澤水齋)를 세웠다. 1776년에는 왕실의 도서를 두는 규장각을 세웠는데 이는 주합루(宙合樓)라 부르는 중층 누각이며, 그 아래 연못 남쪽에 자리잡고 있던 택수재를 지금의 부용정(芙蓉亭)으로 고쳤다. 1828(순조 28)에는 사대부들의 생활을 알기 위해 후원 안의 개금재 자리에 연경당(演慶堂)을 지었다.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는 선원전을 지었다. 후원은 크게 네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영역은 부용지를 중심으로 부용정·주합루·영화당(暎花堂사정기비각·서향각(書香閣희우정·제월광풍관(薺月光風觀) 등의 건물들이 있는 지역이다. 둘째 영역은 기오헌(寄傲軒기두각(奇斗閣애련지(愛蓮池애련정·연경당이 들어선 지역이다. 셋째 영역은 관람정(觀纜亭존덕정(尊德亭승재정·폄우사(砭愚榭)가 있는 지역이다. 넷째 영역은 옥류천을 중심으로 취한정(翠寒亭소요정·어정(御井청의정·태극정이 들어서 있다. 그밖에도 청심정·빙옥지·능허정(陵虛亭) 등이 곳곳에 있다. 후원의 구성은 낮은 야산과 골짜기 그리고 앞에 펼쳐진 편평한 땅 등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꼭 필요한 곳에만 인공을 가해 꾸며놓았다. 따라서 우리나라 조원(造苑)의 특징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예이다. -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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