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 즉 노화한다는 것은 우리 몸의 각 부품이 노쇠해진다는 의미다. 치아를 예로 들어 보자.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은 치아의 하얀 에나멜 층이다. 무척 단단함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면서 닳아 없어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밑에 있던 더 연하고 짙은 색을 띠는 층이 드러난다. 이와 함께 치아 속질과 뿌리에 대한 혈액 공급이 위축되고, 침 분비량이 감소한다. 이 때문에 염증이 생기면서 잇몸이 내려앉아 치아 아랫부분이 드러나게 되면 치아가 흔들리게 되고 더 길어 보이게 된다. 이런 현상은 특히 아래쪽 치아에서 많이 나타난다. 전문가들은 치아 하나만 검사해 봐도 오차범위 5년 내에서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치아가 하나라도 남아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꼼꼼히 관리를 하면 치아를 잃지 않고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이것도 쉽지 않다. 관절염, 수전증, 경미한 뇌졸중 등을 겪으면서 양치질과 치실 사용이 점점 어려워진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서 신경이 둔화되기 때문에 너무 늦기 전에 충치나 잇몸 질환을 자각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일생 동안 턱 근육은 40%, 아래턱뼈는 20% 정도가 손실되면서 약화된다. 이에 따라 씹는 능력이 떨어지면서 점점 더 부드러운 음식을 찾게 되는데, 이런 음식은 일반적으로 발효성 탄수화물 함량이 높기 때문에 충치를 일으킬 확률이 올라간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은 60세가 되면 평균적으로 치아의 3분의 1을 잃는다. 84세를 넘어서면 거의 40%가 치아를 모두 잃는다.
나이가 들면서 뼈와 치아는 물러지지만 우리 몸의 나머지 부분은 경화된다. 혈관, 관절, 근육, 심장판막, 심지어 폐마저 칼슘이 축적되면서 딱딱하게 굳어 간다. 현미경으로 보면 혈관과 연조직에도 뼈에 있는 것과 동일한 형태의 칼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인의 몸을 수술할 때 대동맥을 비롯한 주요 혈관들을 만지면 바삭거리는 느낌이 든다. 콜레스테롤 수치보다 골밀도 수치가 죽상동맥경화증으로 사망할 확률을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나이가 듦에 따라 마치 뼈에서 칼슘이 새어 나와 각 조직들로 옮겨가는 것만 같다.
더 좁아지고 뻣뻣해진 혈관으로 전과 같은 양의 혈액을 흐르게 하려면 심장이 더 힘들게 일을 해야 한다. 그 결과 65세 즈음에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고혈압이 된다. 압력을 더 높여서 펌프질을 해야하기 때문에 심장 벽이 두꺼워지고 격렬한 신체 활동에 반응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30세부터는 심장의 최대 출력이 꾸준히 감소한다. 점점 더 멀리 혹은 더 빨리 뛰기 어려워지고, 숨을 헐떡거리지 않고 오를 수 있는 계단 숫자도 줄어든다. 심장 근육이 점점 두꺼워지는 동안 다른 근육들은 점점 가늘어진다. 40세 정도부터 근육량과 근력을 잃기 시작해서 80세가 되면 근육 무게의 4분의 1에서 절반 정도를 잃는다.
이 모든 과정은 손만 봐도 알 수 있다. 손에 있는 근육량의 40%는 모지구근thenar muscles에 속한다. 노인의 손바닥을 자세히 살펴보면 엄지 아래쪽 부분이 통통하지 않고 평평하다. 엑스레이만 찍어도 동맥에 칼슘화된 자국이 점점이 보이고 뼈는 더 투명해 보인다. 50세 이후부터 골밀도가 해마다 평균 1%씩 떨어지기 때문이다. 손에는 29개의 관절이 있는데 모두 골관절염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관절염에 걸리면 관절 표면이 헤지고 많이 닳은 모양이 된다. 관절 사이의 공간이 없어져서 뼈와 뼈가 닿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관절염을 앓으면 관절 주변이 붓고, 손목의 움직임이 제한되고, 물건을 쥐는 힘이 떨어지고, 통증을 느낀다. 손에는 또 정식으로 명칭이 붙은 신경가지만 해도 48개나 있다. 손끝에 있는 피부 기계수용기(물리적 자극을 감각신호로 바꾸는 기관)의 능력이 저하되면 촉감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진다. 운동신경이 상실되면서 손놀림도 둔해진다. 글씨체가 나빠지고, 손놀림 속도와 진동을 느끼는 감각이 감소한다. 그래서 조그만 자판과 터치 스크린을 가진 일반적인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정상이다. 물론 건강한 식생활과 신체 활동 등으로 그 과정을 좀 늦출 수는 있지만 완전히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폐의 기능이 줄고, 장 운동이 느려지며, 분비선 기능이 멈춘다. 심지어는 뇌마저도 줄어든다. 30세 젊은이의 뇌는 두개골을 꽉 채우는 약 1360그램짜리 신체 기관이다. 그런데 70세가 되면 뇌가 줄어들어 두개골 안에 거의 2.5센티미터 정도 되는 공간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처럼 나이가 많이 든 사람들은 머리에 충격을 받으면 뇌출혈을 일으킬 확률이 훨씬 높다. 뇌가 두개골 안에서 덜거덕거리며 움직이기 때문이다. 뇌에서 가장 먼저 수축이 시작되는 곳은 계획과 판단 기능을 하는 전두엽과 기억에 관여하는 해마다. 그 결과 기억력과 다중작업능력(다수의 개념을 취합해서 비교·평가하는 능력)은 중년에 절정에 이르렀다가 그 이후부터 점점 쇠퇴한다. 정보 처리 속도는 40세가 되기 훨씬 전부터 떨어지기 시작한다.(그래서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이 주로 젊었을 때 업적을 세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85세에 이르면 작업 기억(정보를 일시적으로 저장해 각종 인지 과정을 수행할 수 있게 만드는 단기 기억)과 판단력이 상당히 손상되고, 그중 40%는 교과서적인 의미의 치매 증세를 보인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부키, 2015(2020.5.25 초판32쇄). 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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