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군 당시 중형을 선고받은 군인 가운데 구명된 케이스는 박정희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과연 어떤 사정으로, 누구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졌을까?
박정희가 김창룡팀에 의해 처음 끌려간 곳은 서울 충무로 입구 신세계백화점 인근 서울헌병대였다. 당시 헌병대 건물은 콘센트 막사였다. 그는 이곳 영창에서 1주일을 보냈다. 박정희와 육사 2기 동기생인 김안일(육군 준장 예편) 정보국 특무과장은 이 무렵 박정희를 불러 직접 신문한 적이 있다.
김 과장은 박정희에게 양면괘지 한 묶음을 건네며 '자술서' 를 쓰라고 했다. 그러자 박정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써내려갔는데, 그 속에서 좌익세포들의 명단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수사팀은 이 명단을 토대로 마치 '고구마 캐듯' 세포들을 색출해냈다. 김창룡 등 수사팀은 '박정희 리스트' 의 위력에 혀을 내둘렀다.
수사 실무책임자인 김안일 과장은 "박정희를 살려주자고 처음 말을 꺼낸 사람은 다름 아닌 그를 수사했던 김창룡 대위였다"고 증언한 바 있다. 박정희와 육사 2기 동기생이었던 김 과장은 김창룡의 구명 건의를 받아들여 직속상관인 백선엽 정보국장에게 박 소령을 한번 만나줄 것을 요청했다. 다음은 백선엽 씨가 자신의 회고록 <군과 나> 에서 밝힌 관련 내용이다.
숙군 5단계 작업이 완결될 즈음인 49년 초 어느 날 방첩대의 김안일 소령이 나에게 '박정희 소령이 국장님을 뵙고 꼭 할말이 있다고 간청하니 면담을 해주십시오' 라고 전했다. 김 소령은 아울러 박정희 소령이 조사과정에서 군내 침투 좌익조직을 수사하는 데 적극 협조했다는 점을 들어 꼭 만나봐줄 것을 요청했다. 김 소령은 나의 승락이 있자 곧 박정희 소령을 나에게 데려왔다.
내가 박 소령을 면담한 곳은 정보국장실이었다. 박 소령은 한참을 묵묵히 앉아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나를 한번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작업복 차림의 그는 측은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면담 도중 전혀 비굴하지 않고 시종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평소 그의 인품에 대해서는 약간 알고 있었으나 어려운 처지에도 침착한 그의 태도가 일순 나를 감동시켰다. "도와 드리지요." 참으로 무심결에 이러한 대답이 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박정희의 구명운동은 그를 체포하고 수사한 수사팀에서부터 출발했는데, 어쩌면 그래서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수사실무자인 김창룡과 김안일 과장이 박정희에 대한 신원보증서 겸 구명사유서를 만들어 백 국장을 찾아가서 결재를 받아낸 것이 사실상 구명운동의 시작이었다. 수사팀에서 그를 살리기로 결정이 내려지자 이후 일정은 수사팀 몫이 돼버렸다. 백 국장은 미 군사고문단에 양해를 구하고 또 육본에 재심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박정희 구명운동은 이밖에도 다양한 채널에서 진행됐다. 여기엔 만주인맥이 큰 힘이 됐다. 만주 군관학교 교의(중좌)를 지냈고, 박정희가 첫 부임한 춘천 8연대 시절 대장을 지낸 원용덕이 백선엽 국장을 움직였다. 백선엽이 평양사범 졸업 후 의무복무 도중 군관학교에 입학해 말썽이 됐을 때 원용덕이 나서서 도움을 줬는데, 이 일을 두고 백선엽은 늘 고마워했었다. 백선엽 역시 만주인맥의 일원(봉천군관학교 9기)이다.
같은 만주인맥의 일원이자 여순사건 가담자 토벌에 참여했던 고 송석하 씨(봉천 5기, 육사 2기, 육군소장 예편, 99년 작고)는 “여순사건 때 박정희가 남원까지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최남근과 박정희가 안 보이길래 우리는 지리산부대(김지회 부대)에 잡혀간 줄 알았지요” 하며 “그때 원용덕이 박정희를 붙잡아 살려면 남로당 조직표 내놔라' 라고 설득해서 서약을 받은 후 백선엽에게 구명요청을 했습니다” 고 지난 97년 필자에게 증언한 바 있다.
<실록 군인 박정희> 정운현, 개마고원, 2004. 15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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