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세상이야기

조선문사부대의 낯뜨거운 글

by 길찾기91 2020. 10. 18.
728x90
반응형

 

삼천리194012월호에는 문사부대와 지원병'이라는 기획기사가 실렸다. 총독부의 총력동원체제 아래서 문인들이 글로 보국하기 위해 결성한 '조선문사부대' 38명이 양주 지원병 훈련소에 하루 입소하고 난 뒤 감상을 모아놓은 것이다. 대표적 인사 서너 명의 글을 인용해보자. 몇십 년이 지난 지금 읽어봐도 낯이 뜨거워진다.

 

| 이광수 | 소설가

지원병훈련소를 보는 것은 두 번짼데 볼 때마다 가장 많이 느껴지는 것은 신체와 정신의 개조입니다. 소화기의 개조, 근육의 개조, 피부의 개조, 이것은 지원병들이 공통으로 감사하는 바이거니와 습관의 개조를 통하여서 되는 정신의 개조는 그 이상인가 합니다. 그들이 군대 생활을 마치고 오는 날은 전혀 신인新人이 되는데 이 신인新人化야말로 2300만이 모조리 통과하여야 할 필연당연의 과정인가 합니다. 일언이폐지 왈 '천황께 바쳐서 쓸데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최정희 | 소설가, 김동환의 처

지원병! 당신들의 팔과 다리와 가슴은 구리쇠같이 강합니다. 앉고 서고 하는 동작은 무척 씩씩하고 민활합디다. 그 음성은 몹시 우렁찹디다. 당신들은, 쉬이 한 사람의 병사가 되기에 넉넉합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여러분께 꼭 한마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힘으로써만 남을 이기지 말고, 진실로서 남을 이겨달라는 것입니다. 진실 앞에는 누구나 머리를 숙입니다. 훈련소장이 여러분께 고향을 향해 무릎을 꿇게 하고, 부모님 사진 앞에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이 이 진실을 가르치고자 함에서입니다.

 

| 모윤숙 | 시인

여러분의 소리가 그처럼 우렁차서, 나는 가슴이 몹시 뛰었습니다. 처음으로 그렇게 질겁게 뛰었습니다. 반도 사람에게서 보지 못하던 굳센 팔, 힘센 다리, 당신들이 지금 붉은 태양 아래서 내게 보여주었습니다. 질서 있는 생활, 규칙적인 교련, 당신들만이 복 많은 반도의 남아였습니다.

 

| 정비석 | 소설가

육군지원병훈련소를 견학하고 나는 성덕聖德의 무궁함을 깨달으면서 다음과 같이 감상을 느끼었다.

1. 전 조선 청년들이 모두 한 번씩 훈련소 문을 거쳐 나오는 날이면 조선에는 새로운 광명이 비추일 것이다. 지원병제도야말로 성상聖上의 반도민초半島民草에게 베푸신 일시동인의 결정임에 틀림없다.

2. 스파르타식 교육이 없었던들 저 희랍의 개화開化가 그토록 찬란히 개화할 수 있었을까.

3. 고래로 문인은 약질인 것이 무슨 자랑거리처럼 삼아오던 그릇된 인식을 우리는 하루바삐 시정해야 하겠다.

잡지 발행인이었던 김동환은 자신이 10년만 젊었다면 4~5개월간 입소해 훈련받고 싶다고 말한 뒤, 한술 더 떠 간도특설대까지 언급했다.

듣건대 간도에는 조선인으로만 조직된 특설부대가 편제되어 있고, 만주국에는 징병제도의 실시가 곧 있게 되어 총 메고 나설 재만동포가 수만으로 헤아리게 될 것이며, 조선에는 이와 같이 지원병이 13000명씩 편성되어 가기로 됐으니, 내외 각방으로 조선 청년의 의기가 군국君國에 바치는 일념으로 이렇듯 높게 떨쳐가게 됐으니 진실로 기쁜 생각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간도특설대> 김효순, 서해문집, 2014. 179-181.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