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이 민간인에게 벌인 극도로 난폭하고 잔인한 짓에 관한) 잔학 행위 이야기는 30년전쟁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에 너무도 심하게 묘사되었기 때문에 일부 역사가는 “모조리 파괴하는 분노의 신화” 혹은 “총체적인 파괴와 재난으로 꾸민 이야기”쯤으로 여기고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다. 잔학 행위에 대한 이야기가 당대에 이 전쟁을 전하는 보고 형식에서 독특한 소재가 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대표적인 예가 필립 빈센트가 쓴 『독일의 통곡』(The Lameritations of Germany)이다.
여기서는 순박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끔찍한 공포가 아이들을 먹는 크로아티아인, 모자 리본을 만들기 위해 잘린 코와 귀 등의 제목이 붙은 그림과 함께 나열되어 있다. 잔혹한 이야기가 선정적이긴 해도, 적어도 간접적이나마 실제로 사람들이 겪은 생생한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펠란트에서 나온 공식보고서는 두들겨 패고 집을 불사르고 강간하고 무자비하게 재물을 파괴한 수많은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브란덴부르크 동쪽으로 불과 2~3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플라우에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은 1639년 새해 첫날 제국군이 작센으로 행군하는 동안 벌인 만행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많은 노인을 고문하다 죽이고, 총을 쏘아 죽였다. 수많은 여인과 소녀를 강간한 다음 죽이고, 아이들의 목을 매달고, 때로는 불에 태워 죽였다. 또 발가벗겨서 극심한 추위에 얼어 죽게 만들었다.”
가장 끔찍한 회고 가운데 하나는, 세관원이자 포츠담 부근에 있는 벨리츠의 서기로 일하던 페터 틸레가 브란덴부르크에서 살아남은 뒤, 1637년에 제국군이 자신의 마을을 지나갈 때 벌인 만행을 묘사한것이다. 마을에서 빵을 파는 위르겐 베버라는 사람에게 강제로 돈을 숨긴 곳을 알아내기 위해 군인들이 “실례되는 표현이지만, 나뭇조각을 그의 성기에 손가락 반 정도의 길이만큼 찔러 넣었다”는 내용이었다.
틸레는 스웨덴 사람들이 고안했다며 '스웨덴식 고문'이라고 표현했지만, 모든 군인에게 널리 알려지고, 이후 대표적인 전쟁문학에 자리 잡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강도와 살인자 들은 나뭇조각을 들고 그것으로 가엾은 사람들의 목을 찔렀다. 그런 다음 그것을 휘젓고 물을 붓고 다시 모래를 넣었다. 심지어 인분을 넣기까지 했다. 그리고 인정사정없이 사람들을 고문하며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이것은 다비트 외르텔이라는 벨리츠 시민이 당한 이야기로 이 사람은 이런 고문을 받고 곧 죽었다.
또 크뤼거 필러라는 남자는 제국군에게 잡혀서 손발이 묶인 채, 돈이 어디 있는지 말할 때까지 불 위에서 봄을 그슬렸다. 그런데 이 고문자들이 돈을 갖고 사라지자마자 또 다른 제국군 약탈자들이 시내로 쳐들어왔다. 이미 동료들이 남자를 불에 그슬리며 100달러를 빼앗아갔다는 얘기를 듣자, 이들은 남자를 다시 불구덩이로 데려가 불길을 얼굴로 향하게 한 채, “피부가 도살한 거위 가죽처럼 되어 죽을 때까지” 남자를 불에 그슬렸다. 위르겐 뮐러라는 가축상인도 이와 비슷하게 돈 때문에 고문을 받다가 불에 그슬려 죽었다”
1638년에 제국군과 작센군이 베를린 북서쪽에 있는 프리 그니츠의 렌첸 마을을 지나갔다. 이들은 집집을 뒤지며 쓸 만한 목재와 설비를 뜯어낸 다음 불을 질렀다. 집주인이 불길에서 건져낸 것은 무엇이든 다시 강제로 빼앗았다. 제국군이 떠나자마자 스웨덴군이 쳐들어와 시내를 약탈했는데, “터키군도 그랬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할 정도로 시민과 여자,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다루었다. 1640년 1월에 렌첸 시 당국에서 발행한 공식보고서는 그 소름끼치는 광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들은 우리의 선량한 시민 한스 베트케를 장대에 묶고는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불에 그슬렸다. 한스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또 스웨덴 군인들은 걷지 못하게 하려고 한 노인의 종아리를 칼로 베었으며 나이 지긋한 부인을 끓는 물에 튀겨 죽였다. 그리고 추운 날씨에 아이들을 발가벗긴 채 매달거나 사람들을 강제로 찬물에 들어가게 했다. 약 50명의 남녀노소가 이런 식으로 죽임을 당했다.
선제후가 모집한 군인들도 침략군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었다. 더러운 차림에 굶주려 있었고 군기가 문란했다. 장교들은 부하들을 엄하게 처벌하며 잔인하게 다스렸다. 폰 로호 대령 휘하의 연대 병사들은 “사소한 이유로 맞거나 낙인 찍혔고, 집단 구타를 당했다” 때로 코와 귀가 잘리는 일도 있었다. 각 군대가 지역 주민을 대하는 태도 역시 똑같이 무자비했는데, ‘빈번한 강탈과 약탈, 살인, 강도에 대해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주민들의 불만이 너무도 빈발했기 때문에 슈바르첸베르크 백작이 1640년에 지휘관 특별회의를 열어 폭력적이고 무례한 행동으로 민간인을 괴롭히는 것을 꾸짖을 정도였다. 하지만 훈계의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2년 후에 베를린 부근의 텔토 지구에서 올린 보고서를 보면, 브란덴부르크의 폰 골트아커 사령관이 지휘하는 부대는 일대를 약탈하면서 보이는 대로 곡식을 타작하고 지역 주민들을 적군보다 더 악랄하게 “비인간적인 태도로 대했다.
잔학 행위가 얼마나 자주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개인의 주관적인 서술에서 지방 정부의 보고서와 청원서, 문학적 묘사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각종 자료에 나타나는 공통점을 보면 잔학 행위가 광범위하게 일어났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미 당대에 그런 사태를 심각하게 인식했다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극악무도함은 이 전쟁의 의미를 규정한다. 이는 심각한 흔적을 남긴 전쟁에 대해 말해준다. 그것은 총체적인 질서의 정지였고, 통제되지도 억제되지도 않고 마구 퍼지는 폭력에 마주한 사람들이 얼마나 취약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강철왕국 프로이센, 크리스토퍼 클라크, 마티, 2020. 71-75.
이 책은 고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은 아니다.
프로이센에 대한 아주 길고도 긴 역사와 배경, 해석 등을 담고 있는 책이다.
보는 중에 너무도 잔혹하고 아픈 잔학 행위에 대한 부분을 옮겼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건지, 그리고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잔학한 일들을 역사적으로 너무도 많았음을 생각하게 된다.
전쟁과 폭력은 죄없는 이들을 파괴하고 죽이는 결과를 낳는다.
내 한 몸 건사하며 일생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일이라고 해야하는건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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