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1월에 일어난 사건들을 조사해보면 히틀러를 권력의 자리에 올려놓은 일련의 사건에서 우연성이라는 강력한 요소가 발견되어 결정론에 큰 타격을 준다. 제3제국은 물론 말할 필요도 없이 독일 역사의 산물이었지만, 그것이 당시 그 나라에 열려 있던 유일한 가능성은 아니었다. 히틀러가 총리 자리를 건네받는 순간까지도 다른 정치적인 해결 방안들이 있었다. 나치 지도자의 성공은 어떻게든 권력을 잡으려는 노력이 성공해 얻은 결실이 아니라, 그의 운이 다한 듯 추락하고 있을 때 어찌해서 손에 떨어진 것이었다. 그가 총리에 취임하기 30일 전만 해도 경험 많고 박식한 정치 평론가들은 그의 정치적 사망 기사를 쓰느라 바빴다. 거의 이름도 없다 혜성처럼 나타난 그의 당은 추진력을 잃어 곧 해체될 것 같았다. 미래의 독재자는 그에게 성공을 안겨준 사건들을 계획하고 추진하기는커녕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뜻밖의 사건들에 의해 추락하기 직전에 구출되었다.
갑자기 히틀러의 운명이 역전되어 그가 권력의 자리에 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어떤 객관적인 힘들이 어떤 사건을 가능하게 할지는 몰라도 그런 사건이 일어나게 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한 나라의 운명이 한 줌밖에 안 되는 사람들 손에 달려 있었던 1933년 1월 독일에서 그랬다. 그것은 인간사에서 자주 일어나듯이 수많은 사람의 운명이 몇 사람의 손에 달려 있는 중대한 시점 가운데 하나였다. 이들 가운데 세 사람,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과 쿠르트 폰 슐라이허 총리, 전 총리인 프란츠 폰 파펜은 독일의 미래를 손에 쥐고 있었다. 물론 다른 세 사람, 오스카르 폰 힌덴부르크와 오토 마이스너, 알프레트 후겐베르크도 당시 일어난 일에서 그에 버금가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사람들의 역할에 비하면 히틀러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그들의 행위에 반응하는 것이었다. 히틀러는 그들이 아주 잔꾀를 부리며 나누어준 패를 가지고 놀긴 했으나, 그 패는 그들의 패였지 히틀러의 패가 아니었다.
<히틀러의 30일 : 그는 어떻게 단 30일만에 권력을 잡았는가> 헨리 애슈비 터너 2세, 수린재, 2005. 219-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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