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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죽음일까?" <죽음을 배우는 시간>

by 길찾기91 2020.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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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오래 살게 된 인류

 

20세기는 인류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인간의 수명 연장이 일어난 시기다. 많은 사람들이 의료기술이 향상됨에 따라 수명이 늘어났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수명 연장은 사실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에 따른 영양 상태 개선과 근대사회로 이행하면서 발전한 공중위생 덕분이다. 의료기술의 발달도 물론 영향을 미쳤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질병의 원인이 되는 인자들을 찾아내는 예방의학의 발전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지방 식이와 운동 부족, 흡연이 중풍이나 심근경색증의 원인인 동맥경화의 주요 위험 인자라는 것을 밝히고 건강한 식생활, 금연 등 생활양식의 개선을 홍보하여 심혈관 질환 사망률을 끌어내린 것이 좋은 예다.

 

20세기 초반에 40세 정도였던 인류의 평균 수명은 20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석기시대에 20세였던 평균 수명이 수만년에 걸쳐 2배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불과 10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일어난 이런 변화는 정말 엄청난 것이다. 당연히 인간의 신체가 이런 급격한 수명 연장에 적응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나는 전문 분야가 관절염을 다루는 류머티스내과이기 때문에 이 방면의 연구를 해오면서 젊은 시절에는 완치제를 찾아보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 외국 학회에서 발표된 오래 사는 원숭이를 연구한 결과를 보고 머리를 세게 맞은 듯 잠시 멍해졌다.

 

원숭이는 자연 상태에서 평균 5년 정도 사는 데 반해 실험실에서 사육하는 원숭이들은 천적이 없고 식량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어 10년 이상을 너끈히 살게 된다. 부자 나라에서는 이렇게 원숭이 여러마리를 실험용으로 키우며 노화 연구를 한다. 키우던 원숭이가 죽으면 각 실험실에서 모두 달려와서 자기가 연구하는 분야의 조직들을 채집해간다. 연구 결과 중에 실험실에서 오래 사육된 원숭이의 관절염에 관한 데이터가 있었다. 이 데이터를 보면 말하자면 천수를 누리고 죽은 원숭이의 무릎에 관절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연구자가 그 이야기를 하려고 데이터를 제시한 것은 아닌데 내게는 노화에 의한 관절염을 완치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데이터로만 보였다. 퇴행성 관절염이란 40~50년 살도록 설계된 인간의 관절을 80년을 쓰게 되면서 생긴 진화 과정의 부적응일 뿐 얄팍한 약물이나 시술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후 연구비를 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퇴행성 관절염의 치료제를 개발하겠다라는 말을 쓰던 빈도를 차차 줄이고 관절염을 가지고도 최대한의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쪽으로 연구의 방향을 돌리게 되었다.

 

크게 보면 의료도 마찬가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제는 70세에 사망해도 요절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까지 생겼기 때문에 의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숫자상으로 환자의 수명을 늘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의료기술의 발달이 인류의 수명 연장에 기여한 바가 적기는 하지만 급성 질환 치료에서는 분명히 큰 향상을 이루었다. 항생제의 발달로 역사적으로 인류의 수명을 위협하던 대다수 감염 질환이 해결되었고 수술 기술, 생명보조장치의 발달로 과거의 전쟁에서는 사망했을 대부분의 부상병들을 이제는 살려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급성 치료에 중점을 두어온 의료기술이 전혀 다른 문제인 만성 질환자의 치료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 부상병, 사고 부상자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개발된 기술들이 아무런 기준 없이 삶의 마지막 길을 걷고 있는 환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심한 경우 의료소송의 빌미까지 제공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환자와 가족에게는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연장시키고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제한된 의료자원의 낭비를 초래한다. 또한 반드시 이런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치료의 기회를 박탈함과 동시에 의료비용의 천문학적인 증가를 가져왔다. 중환자실 자리가 없어서 병원을 전전하다가 사망하는 아이의 예는 상당히 많으며, 보건의료 통계로 보면 한 개인이 사망하기 전 한달간 쓰는 의료비가 그 이전 평생에 걸쳐 쓴 의료비보다 더 많다. 결국 선진국들에서는 이런 불행한 결과를 막기 위해 완화의료를 중심으로 하는 죽음의 질 향상에 관한 논의가 일어나게 되었다. 또한 국가는 그 구성원의 삶을 개선하는 데 힘쓰는 만큼 죽음의 질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는 데에 공감대가 이루어졌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인구 집단의 변화를 겪고 있다. 유사 이래 5세 이하 어린이의 수가 65세 이상 노인의 수보다 적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 현상은 역전되지 않고 더욱 심화될 것이다.” 세계완화의료협회의 회장 스티븐 코너는 죽음을 맞는 사람들에 대한 완화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죽음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복잡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종교, 문화, 사회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 개인적인 생각이 전문가의 의견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애 먼저 바람직한 죽음에 대한 정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 :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김현아, 창비, 2020. 8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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