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가격
세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또 버려기는 상품은 뭘까? 21세기에 가장 싸고 가장 많이 쓰이다 버려지는 건 '사람'인 듯하다. 아이들은 특히 약하고 값싼 '생산 도구'이다. <리치스트>라는 사이트가 있다. 진지한 뉴스나 분석을 다루는 곳은 아니고, 세계의 '슬프고도 웃긴' 이야기를 코믹하게 소개한 글을 모아 둔 곳이다. 여기에 각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얼마나 받으며 일하는지를 다소 냉소적으로 정리한 자료가 있다. 여러 언론 매체나 통계 기구에 실린 내용을 짜깁기했지만 세계의 값싼 노동력이 착취당하는 단면을 보여 준다.
이집트에서는 시간당 0.8달러로 사람을 부릴 수 있다. 인구 8000만 명이 넘는 이집트는 오래전부터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산유국들에 저임금 노동자를 송출해 왔다. '아랍의 봄' 혁명과 군사 쿠데타 등을 거치면서 가뜩이나 높던 실업률은 더 높아졌다. 스리랑카는 이 사이트에서 '영어를 말할 수 있는 노동자를 시간당 0.62달러에 구할 수 있는 곳'으로 분류됐다. 인도의 노동력은 더 싸다.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이나 정보기술을 공부한 사람들도 콜센터에서 일한다. 시간당 임금이 0.48달러에 불과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가나 역시 영어가 공용어인데, 시간당 임금은 0.32달러에 그친다.
방글라데시는? 한 시간 일해 0.23달러를 받는다는 이 나라의 이야기를 들으면 '라나 플라자'의 참상이 떠오른다. 무너진 건물 사이로 삐져나온 젊은 여성의 발, 살려 달라고 외쳤지만 끝내 구조되지 못한 여공, 언니 동생과 한 공장에서 일하다 변을 당할 뻔한, 어느 소작농의 딸, 2013년 4월에 일어난 다카 근교 의류 공장 붕괴는 '이윤이라는 이름의 살인'이자 글로벌 경제의 노동 착취 사슬이 만들어 낸 참극이었다.
파렴치한 고용자들과 부패한 정부, 아웃소싱으로 저가 제품을 팔아 온 외국 기업들, 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한 세계의 소비자들 모두가 공범이었다.
인구는 1억 6000만 명이 넘지만 글 읽는 성인 비율이 60퍼센트에 못 미치는 방글라데시에서 못 배우고 돈 없는 여성들의 희망은 공장뿐이다. 다카 등지에 있는 5000여 개의 의류 공장에서 온종일 일해 한 달에 4만 원가량을 번다. 이 돈으로 가족들은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고, 오토바이를 사고, 장사 밑천을 삼는다. 이 나라에서는 해마다 30만~50만 명이 도시로 유입돼 값싼 노동력 공급원이 된다. 200억 달러 규모의 의류 및 섬유 산업은 방글라데시의 주요 외화 수입원이다. 벌집 같은 공장에서 여공들이 만드는 옷은 주로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지의 더 잘사는 나라들로 향한다.
<리치스트>의 씁쓸한 풍자가 '블랙 유머'에 그치지 않는건 이런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싸디싼 노동력이 넘쳐나고, 쓰다 버려지는 이들이 많다는 것. 그 덕에 나머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나머지 사람들은 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기 일쑤라는 것.
2015년 4월 네팔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규모 7.8의 강진과 뒤이은 여진에 8400명 넘게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유적들도, 농장들도, 집들도 무너졌다. 재난의 상흔이 가라앉기도 전에, 네팔 사람들이 겪는 또 다른 비극이 전해졌다. 인신매매였다. 인도 등지로 노예처럼 팔려 나가는 네팔 아이들이 구출됐다는 뉴스가 줄을 이었다. 구출된 사례들이 그렇다는 얘기다. 구출되지 않은 사람들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지진이 일어나고 한 달 뒤, 네팔과 접경한 인도 북부 비하르주에서 인신매매 조직에 팔려 가던 아이들 26명이 구출됐다. 지진 뒤 가뜩이나 취약한 경제가 더 무너지고, 인신매매가 늘어나리라던 국제기구들의 경고가 사실로 드러났다. 지진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살기가 막막해진 빈농 부모들이 아이들을 인신매매 조직들에 넘기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구출된 아이들의 부모는 대부분 인도 북부에서 이주 노동자로 일했다. 지진 탓에 인도 북부도 피해를 입자 이들의 일자리는 사라졌다. 부모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데려온 뒤 “인도에서 아이들에게 일자리를 구해 주겠다.”고 꾀는 인신매매범들에게 넘겼다. 8~14세 아이들은 인도 북부 락솔의 국경 경비소를 지나 입국하는 과정에서 당국에 구출되었다고 전해졌다. 아이들은 뭄바이의 가방공장으로 끌려갈 예정이었다. 공장에 넘겨진 아이들은 노예처럼 착취당하는 불법 아동노동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 직전에도 인도 북서부 루디아나에서 시민 단체가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어린이 28명을 구출했는데, 그중 여덟 명이 네팔 출신이었다. 이 아이들은 지진 발생 보름 전 인도에 와서 주급 150루피, 우리 돈으로 약 2600원을 받으며 티셔츠를 꿰맸다. 한 달 꼬박 일해도 1만 원 남짓 받는 전형적인 '스웨트숍' (노동 착취 공장)이었다.
인도와 네팔을 가르는 1751킬로미터 남짓한 국경의 경비는 느슨하다. 미 국무부도 네팔 당국이 인신매매를 근절하는데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고 비판해 왔다. 네팔 인권 단체인 환경보건·인구활동연구센터의 아난드 타망은 로이터통신에 “지진으로 아이들의 인신매매와 조혼이 두드러지게 늘었다. 고 지적했다.
비극 뒤에 숨은 인신매매는 네팔에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 미얀마를 떠나 말레이시아 등지로 가려던 소수민족 로힝야 난민 사태가 세계적인 인권 문제로 부상했다. 밀입국 브로커들에게 돈을 주고 낡아 빠진 배를 탔다가 표류하게 된 난민들뿐만 아니라, 인신매매범에게 속아 국경 지대를 떠돌거나 갇힌 채 죽임을 당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태국과 말레이시아 국경은 인신매매되는 이들의 주요 이동 통로다. 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 등에서 온 이주 희망자들이나 난민들의 주된 목적지는 소득수준이 높은 말레이시아다. 이들이 말레이시아로 가는 경로에 태국이 있다. 이 때문에 말레이시아 정부는 태국과의 국경 지대 경비를 강화해 왔으나, 여건히 감시망이 느슨한 곳이 적지 않다.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구정은, 후마니타스, 2018. 34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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