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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걷다

터덜터덜 배낭여행 4 - 4/27(금) 남북정상회담, 꾸찌터널

by 길찾기91 2020.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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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덜터덜 배낭여행 4 - 4/27() 남북정상회담, 꾸찌터널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이기에 모든 일정을 오후로 밀어놓고 일단 방송에 집중한 아침.

한국보다 2시간 늦으니 여기선 이른 아침인 630분 정도부터 텔레비전 뉴스를 보며 여러 추정 및 기대를 나눴다.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을 향해 출발하고 자유로를 달리는 장면을 생중계를 통해 보면서 2007노무현 대통령의 방북 길이 떠올랐다. 그 분도 그렇게 평화의 길을 가셨지.

 

화면은 CNN으로 보면서 소리는 포털의 방송사 생중계를 이용. 이렇게까지 열심히 방송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나를 누가 보면 애국자인줄 알겠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남북 정상간 비공개 대화가 시작되고서야 조식을 먹는 정성. 마음은 이미 평화시대를 향하고 있다. 식당에서도 방송을 찾고 기사를 찾아보는 우리 두 사람.

 

호치민에 있는 동안 수시로 접하게 된 오토바이 행렬. 장관이다.

 

오전을 그리 보내고 꾸찌터널을 가기 위해 정류장으로 출발.

 

프랑스 식민지로 오래 있다가 일본이 밀고 들어왔고, 1945년 우리의 해방과 같은 시기에 베트남은 해방을 경험한다. 바로 그 시기 힘의 공백기에 프랑스가 다시 침입한다. 8년 여의 전쟁을 통해 프랑스를 몰아낸 베트남. 이 때 정전하며 17도선을 기준으로 북측은 북베트남이, 남측은 미군이 관리하며 총선을 통해 통합정부를 세울 계획이었으나 사회주의를 천명한 북베트남과 호치민의 승리가 예상되자 미국은 총선을 거부하게 만든다. 남베트남은 별도로 구성되고 결과적으로 분단된다. 이후 미국은 허약한 남베트남을 지키기 위해 20년의 전쟁에 돌입한다.

 

미국이 시작한 이 전쟁의 특이점은 선전포고도 없었고 공격은 없이 오로지 남베트남을 지키는 방어전이었다는 점. 내부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전쟁.

 

이 때 남베트남 지역에는 민족해방전선(베트콩)의 활약이 시작된다. 후에 휴전을 하며 휴전주체로 나선 4주체는 북베트남, 남베트남, 남쪽의 민족해방전선, 미국 등이다. 엄청난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남베트남은 부정부패로 자멸의 길을 가는 반면 민족해방전선은 정글의 지형을 이용하여 치열한 투쟁을 벌인다. 그들이 만들어낸 좁은 미로와 같은 땅굴들이 꾸찌터널이다.

 

회의실 조리실 육아실 벙커 등이 골고루 갖춰진 터널은 폭이 좁고 입구도 작아 미군은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들어갈 수도 없었다. 바로 그곳에 다녀온 것이다.

이후 민족해방전선과 북베트남이 협력하여 공격을 시작하자 미군은 전쟁을 포기한다. 그래서 베트남이 통일된다.

 

신투어리스트 앞에서 8명을 태운 25인승 버스는 거의 2시간을 달린다. 기사를 잘못 만났다. 난폭운전에 계속 클락션을 울리며 달린다. 잠들기도 어려울 만큼. 그리고 불안함 마음이 들만큼.

 

꾸찌터널을 안내해준 가이드. 열정적이다.

 

가는 길에는 매우 큰 불쾌감을 갖고 간 곳이지만 안내원은 매우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근데 영어다. . 아주 드물게 알아듣는 내용이 나오지만 미리 공부하고 간 덕에 이해가 상당히 되더라글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역시 다르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감탄보다는 그 시절의 그 치열함과 열악함이 떠올라 목이 맨다. 리사이클링의 대가들.

 

폐타이어로 샌달을 만들었다. 베트남전 당시에 그렇게 이용했단다. 리사이클링의 대가들이다.

 

프랑스 일본 미국 중국 등 세계 열강과의 전쟁에서 열악한 조건에도 승리하고 결국 독립된 국가를 만든 이들이기에 자부심이 대단해 보인다. 최소한 안내원을 통해 느낀 바는 그렇다.

 

35도까지 오르는 기온 덕에 땀은 비오듯 흐르지만 만족한다. 그리고 차 막히기 전에 데탐으로 오려는 취지로 바로 차는 달린다. 바로 그 기사가 운전하는. 할배인데 전화통화도 많이 하고 운전은 난폭하고 참.

 

베트남전 당시 사용했던 탱크란다. 저 아가씨는 저걸 어쩌자는건지. ㅋ
지하 땅굴에 공기가 유입되도록 만든 공기흡입구.
이렇게 작은 입구였으니 체구가 작은 베트콩은 출입이 가능하고 미군은 출입이 어려웠을 터. 미군은 이런걸 발견하면 폭탄부터 투하했다고.

 

 

차로 이동 중에 판문점 선언을 다 읽었다. 난 행복한 국민이 됐다.

 

데탐에 오니 엄청 배고프다. 먹어야 산다는 걸 알기에 먹을 데를 찾는데 적당한 게 없다. 결국 대충 볶음밥 비슷하게 생긴 걸 사먹고 숙소로 이동.

 

이게 이 날 내 저녁식사다.

 

여기서 한 가지.

숙소를 옮겼다는 점. 이틀을 묵었던 호텔도 등산인 걸 제외하면 아쉬운 건 없는 호텔이었는데 옮기고 보니 여기가 훨씬 좋다. 가격은 비슷한데.

심지어 103. 이 호텔은 반층이 올라간 위치가 로비이고 그 위층부터 1층이라 부른다. 하여간 등산 안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 좋다. 호텔이 데탐거리 복판에 있어서 시끄러울 걸 염려했지만 지낼 만 하다. 기쁘다.

 

기념으로 샤워 후 마스크 팩을 붙였다. 이뻐질지도 모른다.

 

 

데탐거리의 상징인 입구의 크레이지 버팔로.
이 때가 자정이 넘은 시간이다.
편의점에 가니 한국상품이 은근히 많다.

 

* 이 글은 2018년 4월 26일부터 5월 10일까지 베트남 자유여행을 다녀온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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