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정부에서 완벽히 드러난 정치검찰의 민낯
많은 이들이 검찰을 '개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사실 대부분의 일선 검사들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불철주야 해악을 끼치는 범죄자를 잡아 처벌하고 나라의 치안을 지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들의 노고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나 특수통으로 알려진 일부 정치검찰은 정치권력의 충견 노릇을 하다가 지금은 스스로 권력이 되어 버렸다. '정의의 사도'가 되어야 할 검찰이 이 지경으로 타락하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조롱을 받으면 공권력 자체가 위엄을 잃고 국가의 기강이 흔들린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경고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검찰개혁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검찰이 나를 문 것은 그나마 이해가 간다. 그런데 누가 검찰에게 한명숙을 물라고 했을까? 실제로 한만호는 법정에서 증언했다. 한명숙의 정치자금법위반 사건의 수사가 본격화되기 이전에 검사실에서 법조브로커 남 모 씨로부터 한명숙 사건에 협조할 것을 부탁받았다고 했다. “이 사건은 아주 윗선에서 계획적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협조하지 않으면 당신은 무척 힘들어질 것”이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했다. 그 윗선이라는 것이 과연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어디의 누구일까?
검찰은 늘 하수인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지난 1, 2년 사이 '윤석열의 난'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정치검찰의 칼이 정치권력조차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우리는 여러 번 보아왔다.
민정수석으로 있던 조국 교수가 2019년 8월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윤석열 검찰총장 등 검찰주의자들의 발호를 남의 일 같지 않게 아프게 목도했다. 결국 조 장관이 견디지 못하고 물러난 뒤 뒤이어 임명된 추미애 장관에 대한 검찰과 언론 등의 총공격까지 목도하면서 나는 한 가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전직 총리 신분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죽은 권력이었다. 하지만 조국, 추미애 두 사람은 이른바 살아 있는 권력의 장관들이다. 더구나 검찰을 감독하고 지휘하는 상부기관인 법무부 장관이다. 그런데 어떻게 검찰이 지휘권을 가진 상관을 온 가족을 볼모로 이토록 무자비하게 도륙할 수 있는가? 어느 기관보다도 지휘권이 확실히 확립되어야 하는 기관에서 말이다. 의문은 깊어졌다. 지금까지 노무현 대통령 때를 제외하곤 단 한 번도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건드려 본 적이 없지 않나?
그러다가 나는 생각했다. 검찰 자체가 살아 있는 권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것! 권력의 속성대로 자신을 유지할 뿐 아니라 증식까지 하려는 무서운 권력으로 말이다. 자신과 같은 성향의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갈등을 일으킬 필요도 없이 한 몸이 되어 권력을 휘두르다가 민주정권이 들어서면 적대적인 입장으로 표변한다. 일단 자신의 권력이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면 감추었던 이빨을 드러낸다. 그런 사실을 조국 추미애 두 장관의 경우를 통해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이념으로 못 잡으니 뇌물로 잡다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혹독하게 탄압을 받았다. 독재정권은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종북으로 몰아 중형으로 다스렸는데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민청학련, 인혁당,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처럼 독재정권이 만들어 낸 시국 사건 피해자들만 아니라 북한에 납치되었다 돌아온 어부들까지 간첩으로 낙인찍혔고 그들의 가족까지 평생을 모진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수많은 조작사건의 피해자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정권 차원의 기획 사건들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사실 당시나 지금이나 민주화운동을 해 온 사람들은 종북좌파라는 낙인에 별로 위축되지 않는다. 군사독재 시대를 끝내고 민주주의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신념으로 가득해서 웬만한 고난 앞에서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대를 함께 살아온 사람들 중에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지 못해 그 시대에 대해 부채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나 역시 1979년 박정희 정권 말기에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으로 같이 일하던 동료들과 함께 혹독한 고문을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 당시 함께 수사를 받았던 동료들이 얼마나 모진 고문을 당했던지 그 야만적인 고문 앞에서 우리는 죽음을 각오해야만 했다. 출옥 후 한때 길을 걷다 정복을 입은 우편 배달부만 봐도 가슴이 떨려 도망친 적이 있을 정도로 트라우마가 깊었다. 그 혹독한 시련을 이겨 낸 힘은 진실에 대한 믿음이었다.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를 꽃피우겠다는 소명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고문으로 병들고 감옥에 갇히고 목숨을 잃었지만 우리는 마침내 세계가 부러워하는 민주화를 이루어 냈다. 2017년에는 1700만 명의 깨어 있는 시민들의 촛불 혁명으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도약시켰다.
대한민국 민주화운동 과정에는 수많은 사람의 눈물 어린 헌신이 자리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다시 세우고 주권을 국민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 10년 동안 민주주의는 한층 성숙해지고 적어도 공권력의 조작으로 만들어진 무고한 죄인은 발생하지 않았다. 언론은 잡혀갈 걱정 없이 기사를 쓰고 국민은 최루탄과 무자비한 곤봉의 두려움 없이 집회를 열었다. 또한 두 민주정부는 임기 내내 어떠한 정치보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민주세력이 힘겹게 쌓아 올린 민주주의를 완강히 거부했다.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수많은 공공기관 사람들은 없는 죄를 뒤집어쓴 채 쫓겨났다. 편파적인 언론을 양산하기 위한 미디어랩법으로 종편을 만들고, 국민은 인터넷에 올린 글로 인해 수사를 받고 처벌을 당해야 했다. 참여정부를 그렇게 헤집던 언론은 온순한 양으로 변해 불러 주는 대로 받아 적기에 급급하고 공권력은 명박산성을 세우고 물대포로 농민을 살해했다. 국가가 국민을 사찰하고 블랙리스트라는 이념의 칼날로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문화계 인사들을 잘라냈다. 열렸던 남북의 소통은 끊어졌고 분단은 고착화되고 한반도는 다시 전쟁의 공포에 휩싸였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반대세력을 죽이기 위한 기획을 시작했다. 그 첫 번째 타깃은 노무현 대통령이었으며 두 번째가 나 한명숙이었다. 그런데 이전 군사독재정권들이 우리를 잡아가던 빨갱이라는 이념적 명분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아무리 무리한 조작이라고 해도 대통령과 총리를 지낸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정권이 대신 꺼내든 무기는 '뇌물' 즉 뇌물로 도덕성을 훼손하는 것이었다.
평생 민주화를 위해 일해 온 사람들에게 도덕성의 훼손은 치명적이다. 도덕성은 민주화 운동을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대중을 설득하고 이끌어야 했기에 청렴과 도덕성이 더욱 필요했다.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믿고 따르겠는가. 그것이 전통으로 내려왔고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이라는 일반적 인식이 뿌리를 내렸다. 저들이 비수를 겨눈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수뢰! 민주화운동을 해 온 사람에게 이보다 더 큰 치명상은 없다. 평생 쌓아 온 도덕성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그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과 나는 바로 이 올가미에 걸리고 말았다.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전방위적 탄압
돈으로 사람을 무너트리면 평생 기둥으로 삼아 왔던 인생의 좌표가 흔들린다. 지금까지 보수를 자처하는 수많은 인사들이 돈 문제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당당하게 다시 얼굴을 들고 정계에 복귀했다. 그들에게 수뢰 따위는 정치를 하기 위한 불가피한 관례로 치부됐고 또 그것이 일반적 인식이 되었다. 심지어 이명박은 수차례 유죄 판결까지 받았어도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까지 됐다.
그러나! 반대로 진보 진영 사람들에겐 이 논리가 적용되지 않았다. 작은 도덕적 흠결이라도 나타나면 가차없이 공격 받았다. 사회적 파장도 국민의 분노도 컸다. 이것이 이명박 정권의 검찰이 노린 지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로 인한 국민적 분노와 함께 정권에 대한 저항이 심해지고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자 다급해진 이명박 정권은 반성하는 대신 서둘러 다음 목표를 찾았다.
시시각각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한 검찰의 포위망이 좁혀져오고 있었다. 주요 표적은 이해찬 대표와 한명숙이었다. 두 사람 다 재야 운동권 출신이었으며 금전문제로 단 한 번도 물의를 일으킨 적이 없었던 인물이었다. 실제 재산이 중산층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서민에 가까웠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총리를 지낸 참여정부 핵심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우리 지인들을 저인망으로 훑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긴장은 했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나도 그렇고 이해찬도 그렇고 돈 문제에서 깨끗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볼 때 우리는 검찰의 가공할 조작 능력에 대해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총리로 있을 때의 검찰과 이명박 정권의 검찰은 완전히 다른 조직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없는 사실을 기획하고 조작하면서까지 누구든 잡아넣을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존재로 변신해 있었다. 그리고 검찰이 조작해 낸 사실은 여과 없이 언론에 도배가 되었다. 손발이 척척 맞는 한 팀이 되어 검찰과 언론은 거대한 범죄 눈덩이를 만들어 냈다. 그 작전에 속은 국민은 심한 배신감을 느껴 우리를 비난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기대와 달리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나의 결백을 믿는 시민사회와 종교계, 학계와 촛불시민들까지 한데 힘을 모아 검찰과 정권의 음모에 맞서 나갔다. 나를 지지하는 팬 카페가 만들어지고 시민들은 서초동 법원 앞에서 촛불을 들었다. 언론의 가짜뉴스에 항의하고 블로그와 SNS를 통해 한명숙의 진실을 알리는 전령이 되어 주었다. 일반적으로 수뢰사건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다. 같은 진영이라고 해도 혹시 불똥이 자기에게 튈지 모른다는 생각에 애써 외면하거나 아예 모르는 척하는 것이 다반사다. 하지만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함께해 주었다.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내 결백을믿는 국민이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
수난의 시대에 힘이 되어 준 이해찬 총리
2015년 8월 20일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그날 나는 법정에 가지 않았고 변호인 등 몇몇 가까운 사람들만 모인 자리에서 재판 결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제일 먼저 비보를 듣고 나를 만나러온 분은 이해찬 총리였다. 그는 내 얼굴을 보는 순간 울먹였다. 강철처럼 단단해 보이는 그분이 내 손을 잡고 북받치는 눈물을 삼키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사실 이해찬 총리가 사건 내내 함께해 주지 않았다면 이 길고 외로운 싸움을 나 혼자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해찬 총리는 곽영욱 사건과 한만호 사건 모두가 정치적으로 기획된 재판이라는 심증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일보 곽영욱수뢰설이 터지자마자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 대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이해찬 총리는 정치권력의 음모라는 것을 단번에알아챘기에 망설이지 않고 민주진영을 결속시키고 강력하게 맞섰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도 검찰은 참여정부에 직간접으로 함께했던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신상털이를 시작했다.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관계도 없는 친인척과 지인들까지 가리지 않는 전방위적인 조사를 시행하고 있었다. 그 시절 사람을 만나면 누구누구가 조사를 받는다는 이야기로 안부를 묻곤 했다. 나는 나에 대한 검찰 조사와 조선일보의 보도를 정치권력의 기획이라고 확신했고, 생각을 같이했던 이해찬 총리는 한명숙으로 대변되는 정치보복을 막아내기 위해 선두에 섰다. 이 총리 덕분에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대오를 갖출 수 있었으며 정치검찰에 맞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준비하고 대비했다. 역사와 정치를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혜안과 상황 정세에 대한 해박함 그리고 불의에 굴하지 않는 올곧은 정신의 사람 이해찬 총리는 든든한 정치적 동지이자 정 깊은 친구 그리고 대한민국 민주진영을 지키는 큰 산이다.
<한명숙의 진실> 한명숙, 생각생각, 2021. 5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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