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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이야기

본분을 잊은 사람들, 임은정 검사의 검찰정신 - 추미애의 깃발, 한길사

by 길찾기91 2021.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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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분을 잊은 사람들

 

추미애 아직도 그 과정을 다 말씀드리기는 힘들지만 감당하기어려운 고비가 있었지요. 총장 직무배제를 했을 때 그것도 법원이 효력정지를 해서 총장이 일주일 만에 복귀를 했지요. 그 일주일 사이에 조남관 총장대행이 고검장회의를 열었습니다. 고검장들의 입을 빌려, 장관의 수사지휘가 너무 잦았다. 징계청구가 과했다, 남용이다. 이런 집단 성명을 내는 거였지요. 조남관 대행 본인도 이프로스에 장관이 한 걸음 물러서야 한다는 내용으로 글을 올려요. 그러나 저는 흔들리지 않고 조 대행에게 업무에 관해 지휘를 했어요. 그 첫 번째는 대검 감찰부가 제대로 감찰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었어요.

 

김민웅 조 대행이 장관 지시를 잘 따랐나요?

 

추미애 그가 대검 차장으로 나갈 때 총장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잘 보좌하고, 일선에서 검찰개혁을 잘 전파하라고 거듭 당부했고 그 역시 장관 뜻을 잘 받들겠다고 했지요. 그러나 나중에 겪어보니 그는 그저 윤 총장의 부하였을 뿐이었어요. 모해위증 교사는 검사 상대로 하는 감찰이라 조직 내부를 사심 없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요. 그런 사람이 바로 임은정 검사입니다. 임은정 검사는 9월부터 인사발령을 받아서 계속 조사를 해왔어요. 그런데 대검연구관이기 때문에 수사권은 없었어요. 그래서 수사권을 가질 수 있게 중앙지검 직무대리 발령을 하라고 합니다. 직무대리 발령은 총장권한인데 총장이 공석이니까 직무대리하는 대검 차장이 할 수 있는 거지요. 그 자리에 있던 조남관 대검차장이 저에게는 알았다고 했어요. 이게 참, 말이 좀 우스운데 따르겠습니다""" 이고 "아니다" 또는 상황 보고하겠습니다""알았습니다예요. 속을 보이지 않는 답이지요.

 

김민웅, 그런 게 있군요. 그럴 땐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겠네요.

 

추미애 그렇지요.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보고를 들으니까 조남관 차장이 임은정 검사에게 사건에서 손 떼면 직무대리 발령해준다고 했다는 거예요. 상관인 저도 기만하고 전달도 엉터리로 한 거지요.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버리면서 임은정 검사는 수사를 못 하게 됐고 또 배신을 당한 거였어요. 아무도 믿을 사람 없게 만들어버리는 거지요. 그것도 하나의 책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야 검찰개혁 할 사람을 고를 수 없을 테니까 말이지요. 검사의 모해위증교사 사건이 대검 감찰부에서 인권부로 편법배당될 때 조남관은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상황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총장이 잘못이라는 것도 알았고 시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바로잡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는 거예요.

 

김민웅 그렇지 않아도 임은정 검사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치자금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의혹 무혐의 처리가 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조남관 대검 차장에게 역사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지요.

 

 

임은정 검사의 검찰정신

 

추미애 그럴 만도 하지요. 장관 지시로 내려보낸 감찰사건을 맡아서 여러 달 조사했고 공소장까지 작성해서 새로 온 장관에게 보고도 마쳤어요. 그런데 윤·(윤석열·조남관) 투톱이 새삼 사건을 다른 검사에게 배당해버리는 일이 대명천지에 일어난 거지요. 검사의 비위로 인해 불법 수사와 중대한 인권 침해가 발생했다면 당연히 이를 감독하는 것이 총장이나 차장의 본분 아니겠어요?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그 직권을 남용해 철저하게 은폐해버린 것입니다. 임은정 검사가 한명숙 전 총리 재판의 모해위증교사 사건에 대해 가장 오래 조사하고 연구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2021226일 임은정 검사가 여러 달에 걸쳐 직접 조사한 방대한 기록과 수사 결과를 토대로 위증을 교사한 검사에 대한 공소장을 써서 박범계 법무부장관에게 보고했거든요. 그 사이 조처를 내리기도 전에 조남관 차장이 32일 허정수 감찰과장에게 사건을 배당해버립니다. 수사를 다 마치고 공소장 초안까지 작성된 사건을 검찰총장의 직무이전 · 승계권을 남용해 탈취해간 것이지요. 한 총리 사건을 법정에서 위증했다고 고백한 증인 최00에 대한 공소시효가 6일로 끝나는데, 허정수 과장은 방대한 기록을 볼 시간 여유도 없이 배당받은 지 3일 만인 35일이었습니다. 임은정 검사도 없는 가운데 위증을 교사한 혐의를 받는 검사에 대해 증거부족을 이유로 무혐의 결정을 했거든요. 그런데 아직 한 건이 더 남아 있었던 겁니다. 또 다른 증인 한의 위증에 대해서는 322일 공소시효가 끝나는데 아예 대놓고 임은정 검사의 사건을 탈취한 것이지요.

 

김민웅 그래서 박범계 장관이 317일 수사지휘권을 발동해서 대검 부장회의에서 한 전 총리 재판 모해위증의 혐의 유무와 기소가능성을 심의하고, 임은정 대검 감찰연구관의 의견을 청취하라고 지시했던 것이지요?

 

추미애, 그러나 다음 날 18, 조남관 대검 차장은 고검장회의를 덧붙여 회의하겠다고 우회적으로 반박하고 이를 박범계 장관이 수용해줍니다. 19일 금요일, 대검 부장 7, 고검장 6명이 참석한 회의 결과는 불기소 의견 10, 기권 2, 기소 의견 2명이었어요. 혐의를 받는 엄희준 창원지검 형사3부장에게는 참석해서 모해위증교사 혐의를 부인하는 진술 기회도 제공했지요. 그냥 면죄부회의가 된 거예요..

 

김민웅 그런 결말이었다면 박범계 장관이 내린 수사지휘권 발동은 조남관 대행의 법기술 한방에 속절없이 무너져내린 거로군요. 당사자로서는 달리 할 말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추미애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은 수감 중인 증인들에 대한 협박 회유 등이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심각성이 드러났습니다. 우리나라 검찰 특수부의 원조인 일본 특수부 개혁, 나아가 전체 일본 검찰조직 대수술의 불을 당긴 사건은 바로 '검사에 의한 증거날조 사건'이었어요. 그런데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보다 심각했던 수준도 아니었는데 전격적인 개혁조처가 발동된 겁니다.

 

11년 전 일본 오사카 지검 특수부 검사가 후생성 전 국장의 플로피디스크를 압수해 조작하는 수법으로 증거를 날조 후 기소했다가 들통나 무죄가 선고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어요. 당시 간부 검사들은 이를 알았음에도 덮어주었다는 것이 드러났지요. 일본의 검찰개혁은 바로 이 전대미문의 검사에 의한 증거날조에서 시작되었어요. 일본의 대검은 이런 검사들을 비호하지 않고 바로 구속시켰어요. 이와 비교하면 한 전 총리 수사 검사의 혐의는 단순히 물적 증거 조작이 아니라 인적 증거를 날조한 매우 엄중한 혐의인 것이지요..

 

김민웅 아직도 몹시 통탄스러워하시는군요. 검찰 스스로 개혁할 수 있었던 큰 계기가 되는 사건인데도 그걸 확실하게 다잡을 기회를 갖지 못한 거니까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위증교사를 덮은 사건을 얘기하다 보니 20213월까지 훌쩍 건너왔군요. 다시 그 12월 중순 징계의결서를 대통령이 재가한 이후로 돌아가 보지요.

 

추미애, 징계의결로 총장의 비위가 세상 바깥으로 나간 셈이지요. 그러나 언론은 이상하게도 징계의결서에 담긴 비위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직무배제도 법원에서 효력정지당해 총장이 복귀했으니 겁을 먹은 것이지요. 그러자 기가 막힌 일이 벌어져요. 반격이 들어오는 거예요. 감찰을 담당했던 검사를 상대로 고소하고 관할도 수사권 없는 서울고검에 사건배당을 하는 거예요. 12월 하순은 끔찍한 순간이었어요. 순간순간이 끔찍한 날들이었어요. 내가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구나, 나는 무너질 팔자도 못 되는구나 했어요. 제가 무너지면 전부 도로아미타불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김민웅 판사사찰 문건에 대해 수사의뢰를 하셨잖아요? 그게 장관 퇴임 이후인 20212, 서울고검에서 무혐의 처분됐지요??

 

추미애 제가 20201126일 판사사찰 문건에 대해 누가 그런 지휘를 하고 정보탐지를 하고 수집하고 어떻게 활용됐는지 수사의뢰를 했지요. 그 후 대검 한동수 감찰부장이 수사하고 있는데 대검이 또 꼼수를 부려 서울고검으로 재배당을 했어요. 2021121일 김진욱 공수처장이 취임하고 공수처가 발족됐으니까 판사사찰 문건에 대해서는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인 만큼 공수처로 이첩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런데 공수처로 이첩하지 않고 서울고검이 바로 무혐의 처분해버립니다. 제 식구 감싸기를 못하게 하려고 공수처법을 만들었는데 정면으로 위법을 저지른 겁니다.

 

<추미애의 깃발> 추미애, 한길사, 2021. 27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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