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비자 설림과 세상공감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편 上(상) 21

by 길찾기91 2021. 8. 25.
728x90
반응형

張譴相韓病將死公乘無正懷三十金而問其疾居一月自問張譴曰:「若子死將誰使代子?」 答曰:「無正重法而畏上雖然不如公子食我之得民也。」張譴死因相公乘無正

 

()나라의 재상인 張譴(장견)이 병으로 죽게 생겼다. 公乘無正(공승무정)이 뇌물 30을 가슴에 품고 그에게 병문안을 갔다. 한 달 후 ()나라의 임금이 친히 張譴(장견)을 병문안하면서 물었다. “만일 그대가 죽으면 누구를 그대 후임으로 하는 것이 좋겠소?” 張譴(장견)이 대답을 하였다. “公乘無正(공승무정)이 법을 중시하고 상관을 잘 모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公子(공자)食我(식아)만큼 백성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 않지요.” 張譴(장견)이 죽자 ()나라의 임금은 公乘無正(공승무정)을 재상으로 앉혔다.

 

󰌚 전제 군주 중에는 어느 누구도 자기보다 백성들의 마음을 더 얻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래도록 재상의 자리에 있던 張譴(장견)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죽어가면서까지 뇌물을 챙긴 張譴(장견)은 결국 그 보상으로 뇌물을 준 公乘無正(공승무정)을 천거한다. 인간의 본성에는 막걸리 한잔이나 고무신 한 짝을 받고도 고마워하며 표를 찍어 주는 그런 면이 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張譴(장견)의 행동이다. 그리고 인간 탐욕의 본성은 죽음을 앞에 두고도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듯하다. 지금 이 사회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의 병든 사람조차 부동산 투기로 부를 쌓아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한다.

 

(): 죽다, 죽이다.

(살 바른 뼈 알)(사람 인)으로 이루어진 회의자(會意字).

 

(살 바른 뼈 알)은 뼈만 남은 모습. 사람들이 그 뼈만 남은 사람에게 절하면서 弔意(조의)를 표하는 모습. ()의 의미에 관해서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澌也人所離也(물이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이별하는 곳)”라고 하였다.

고대에는 사람이 죽으면 먼저 그 시체를 풀숲에 던져 놓고 시체가 풍화되기를 기다렸다. 후에 빈소에 안치하여 장사를 지내고 별채 등에 격리하여 안치했다. 그리고 풍화된 뼈를 거두어 장사를 지내는 이른바 複葬(복장-두 번 장례하는 것)의 형식을 취했다.
점치고 난 후 적은 글인 卜文(복문)生死(생사)에 관한 글자는 (가둘 수)로 썼는데 이것은 () 속에 사람이 있는 모습이다. 지금의 ()모양은 뼈 앞에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으로 명백하게 複葬(복장)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서 ()는 원래 生死(생사)의 글자가 아니고 시체를 의미하는 글자였음을 추론 할 수 있다.

金文(금문)에서는 ()(맡을 사), (다스릴 치)의 뜻으로 사용했다. 둘 다 ()의 뜻을 빌려다 쓴 글자다. (주검 시)(-주관한다)라던가, ()(맡을 사), (다스릴 치)로 사용해서 좋지 않은 것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生死(생사)의 뜻으로 사용한 것은 詩經(시경)이나 書經(서경) 등의 문헌에 이르러서부터이다. (장사지낼 장)(시체 시)가 풀숲에 있는 형상이다. 시체의 마른 뼈를 두는 곳은 (쑥 효, 볏짚 고)이고, 蒿里(효리-쑥이 난 곳)는 묘소를 말한다. 生死(생사)儒家(유가)에서는 논하지 않았고, 莊子(장자)에 이르러 이것을 초월하려는 사상적 노력이 있었다. 儒家(유가)는 장례의식을 주관하는 巫祝(무축)의 후손들이고, 莊子(장자)학파는 고대의 제사계급의 사람들의 후손들로 추측된다.

 

 

* 위 글은 김동택의 <한비자와 세상공감>(리체레, 2021)을 옮긴 것으로, 저자의 동의 하에 게시합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