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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설림과 세상공감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편 上(상) 27

by 길찾기91 202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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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人身善織屨妻善織縞而欲徒於越或謂之曰:「子必窮矣。」 魯人曰:「何也?」:「屨為履之也而越人跣行縞為冠之也而越人被髮以子之所長游於不用之國欲使無窮其可得乎?」

 

()나라에 자신은 수제 신발을 잘 만들고 그의 아내는 수제 모자를 잘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나라에 가서 살고 싶어 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 “그대가 월나라로 이사를 간다면 틀림없이 가난해질 것입니다.” ()나라 사람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왜 그렇지요?” 그 사람이 대답했다. “신발이란 것은 발에 신고 다니는 것인데 ()나라 사람들은 맨발로 다닙니다. 그리고 모자란 머리에 쓰고 다니는 것인데 ()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아주 헝클어진 봉두난발 상태로 다닙니다. 그대의 신발 만드는 기술과 아내의 모자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그것들이 별 쓸모없는 나라로 간다고 하니 가난하지 않으려 해도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삼이나 칡 등으로 엮어 만든 신발.

(): 명주실. 모자를 만들 수 있다.

 

󰌚 위의 이야기는 언뜻 들으면 이치에 맞는 듯하다. 하지만 요즘의 상황에 잘 맞지 않는 교훈적인 이야기다. 고대에는 물건을 만드는 것과 파는 것이 같은 개념일지 몰라도 다분화된 지금 세상은 신발이나 모자를 만드는 것과 판매하는 것은 각각 다른 일이다. 만드는 사람은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파는 사람은 그것을 잘 팔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에게 노나라인지 월나라인지 상관하지 않는다. 거의 맨발로 다니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신발을 팔고, 냉장고가 필요 없는 에스키모인들에게 냉장고를 파는 것이 현대의 상술이다. 한비자가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어떤 특별한 부분에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 능력이 제대로 쓰여 질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으란 말이다. 억대가 넘는 연봉을 받는 세계적인 축구선수 손흥민이 한낱 공장에서 물건을 조립하는 일로 일생을 마친다면?

() : 길다, 우두머리, 존경하다.

머리카락이 긴 사람을 형상화한 象形字(상형자). 씨족의 장로를 의미한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久遠也从兀从匕兀者高遠意也,久則變化亾聲 (장구하다는 뜻이다. (우뚝할 올)(비수 비)로 이루어진 글자다. (우뚝할 올)은 높고 원대하다는 뜻이다. 오래되면 변화한다. ()으로 발음한다)”라 하였는데 ()()을 뒤집은 모습이라 했지만 그 부분은 긴 머리카락의 모습이다. 篆文(전문)의 글자 모양은 글자 기원설에 따라 모양을 바꾼 것이다. 점치는 것을 적은 卜文(복문)이나 金文(금문)의 글자 모양은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사람의 옆모습으로 하고 있으며 글자의 뜻은 명백하다.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지은 許愼(허신)의 당시에는 ()馬頭人(말의 머리와 같은 머리를 가진 사람)으로 보는 俗說(속설)이 있고 許愼(허신)도 거기에 글자 모양을 합리화시켜 오히려 그 글자 기원설을 잘못 판단하였을 것이다. 긴 머리카락은 장로에게만 허락되었던 것으로 장로의 상징이었다. (징계할 징)’는 긴 머리의 사람을 두들겨 패는 형상으로 (징계할 징)의 가운데 부분의 높이 솟은 것은 긴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다. 포로가 된 적의 장로에게 徵罰(징벌)을 가하는 글자의 모양이다. ()長老(장로)의 뜻에서 長短(장단), 長久(장구) 또는 뛰어나다는 뜻이 되었다.

 

 * 위 글은 김동택의 <한비자와 세상공감>(리체레, 2021)을 옮긴 것으로, 저자의 동의 하에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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