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평등
의외의 평등 (이 제목은 내 임의로 지은 것)
처음에 독신 남자 몇 명이 거처했던 47번 구역에는 2.7×3.6미터 크기의 방에 남자 세 명씩 구겨 넣어졌다. 첫째 방에는 사십 대 영국인 세 명이 있었다. 한 명은 천진은행 부행장, 다른 한 명은 로이드 보험 판매인, 나머지 한 명은 선박 회사 중역이었다. 다음 방에는 야구 선수 칼 바우어와 미국인 치과의사, 피부가 푸르뎅뎅한 마약 중독자 브릭스가 살았다. 그 다음 방에는 영국에서 제일 큰 광산회사 대표로 엄청난 부호였던 제이콥 스트러스가 있었다. 스트러스는 천진에 두 대의 롤스로이스와 여러 채의 저택을 두고 왔는데, 수용소에서는 두 명의 나이든 은행가와 한 방에서 살았다. 다음 방에는 두 명의 재즈 뮤지션(한 명은 폴리네시아인, 다른 한 명은 흑인)이벨기에인 마약 중독자와 함께 살았다. 그 다음 방에는 영국인 은행가, 엔지니어, 아시아 석유 회사의 중국 지사장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20개의 방이 더 줄지어 있었다. 마치 무자비하고 변덕스러운 운명이 권세가들을 낮추어 하류 인생들과 섞이도록 한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 생활한 후에는 누구라도 사회에 대한 생각이 바뀔 것이다. 바깥세상의 사회적인 굴곡이 이 수용소 안에서는 거친 방식으로 평평해졌다. 정상적인 삶에서라면 전혀 접촉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극도로 친밀하게 지낼 수밖에 없는 공간 속으로 함께 내던져졌던 것이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우리는 일상적으로 내리던 사회적 판단이 타당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보편적으로 통하는 지위의 상징 (돈, 가족, 교육, 지식)이 여기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귀족 혈통이든, 높은 학벌이든, 누구도 이웃 위에 군림할 수 없었다. 돈의 권세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누구도 새 옷을 살 수 없었으며 모두 자기 빨래는 스스로 해야 했다. 거기다가 아주 적은 양의 물과 그보다 더 적은 양의 비누만이 허용되었다(나도 이 일이 얼마나 싫었는지!). 몇 달이 지나자 트위드로 만든 옷은 모조리 닳아 올이 드러났으며, 셔츠는 더러운 누더기로 변했다. 바지도 비슷한 수준으로 구겨지고 헐렁해졌다. 남자들 중에는 여자 친구가 셔츠를 빨아주고 군복 반바지를 다려 주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남자들은 다른 이들보다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낭만적인 도움도 계급이나 학연 등등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모두가 똑 같이 배급을 받았고 똑같은 크기의 생활 공간을 배정받았다. 무엇보다도, 모두가 자신의 신체적능력에 따라 적절한 정도의 노동을 해야 했다. 영국인 은행가나 유라시안 혼혈 웨이터나, 몸이 약하고 병들었다면 둘은 모두 야채를 씻거나 빵을 자르는 일을 했다. 미국인 교수나 런던 토박이나, 건장하고 힘이 세다면 두 사람 모두 빵을 굽거나 불을 때는 일을 맡아야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인간의 기본적인 덕성이 갑자기 제자리를 찾고 평가되기 시작했다. 일하고자 하는 의지, 일하는 기술, 천성적인 쾌활함이 훌륭한 인품으로 인정되었다. 주방이든 제빵소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열심히 일하고 잘 웃고 동료에게 관대한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어하지. 돈 많고 교양이 풍부한 농땡이나 불평꾼과는 함께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여러 달 함께 일하고 나서라면, 누가 벨기에인인지 영국인인지 파시교도인지를 따지겠는가? 심지어 그런 것을 기억이라도 할지 수용소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다른 사람을 볼 때 그가 영국인인지, 유라시안인지, 미국인인지를 보았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가 유쾌한 사람인지 불쾌한 사람인지, 부지런한지 게으른지, 그의 성품을 보게 되었다.
우리 주방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일꾼으로는 다음과 같은 세 사람이 있었다. 둘은 전직 수병이었던 영국인들(한 명은 요크셔 농장 출신, 다른 한 명은 런던 토박이)이고 나머지 한 명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자란 미국인 담뱃잎 전문가(그는 스스로를 “신문도 제대로 못 읽는 사람이라고 했다)였다. 대조적으로 주방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은 "명문가" 출신으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선박 회사의 중역이었다. 수용소 생활을 따분해했던 이 남자는 협조적이지도 매력적이 지도 않았으며,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전쟁 경험이 모두 그러하듯, 수용소 경험을 통해 우리가 배운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이렇게 사회에서 통용되던 거짓된 가치관을 버리고 공통의 인간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마침내 우리는 이웃 사람을 보면서, 그가 무엇을 소유했는가가 아니라 그가 어떤 인간인지와 관련하여 볼 수 있게 되었다.
산둥 수용소 - 제2차 세계대전 중국의 한 포로수용소에서 기록한 인간 살존 보고서, 랭던 길키, 새물결플러스, 2013, 49-51.
'책과 세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단 저항 - 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0) | 2022.10.26 |
---|---|
나는 공사판 인부가 된 걸까 - 임계장 이야기, 조정진, 후마니타스, 2020 (0) | 2022.10.26 |
미국 역사상 최초로 주 방위군과 연방군이 대치한 사건 - <진격의 10년, 1960년대> 김경집 (0) | 2022.10.19 |
마거릿 생어와 경구피임약 - <진격의 10년, 1960년대> 김경집 (1) | 2022.10.19 |
'흑인 여성'이라는 차별의 이름 앞에 실력으로 맞서다 - <진격의 10년, 1960년대> 김경집 (1) | 2022.10.18 |
댓글